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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닥쓰담 Sep 07. 2020

판단형과 인식형이 뭔가를
‘제대로’ 하려고 할 때

#19   나는 어떤 성향인가? : 판단형/인식형


판단형은 모든 것이 질서 있게 통제된 상태에서 딱딱 맞아떨어질 때 ‘제대로 되고 있다’라고 느낀다. 중간에 뭐 하나라도 어긋나거나 돌발변수가 생기면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에 판단형은 뭔가가 변경되거나, 취소되거나, 예정에 없던 일이 생기는 것을 싫어한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모든 일은 ‘제시간’에 맞춰야 한다. 판단형에게는 이런 것이 ‘제대로 된 것’이다.


반대로, 인식형은 뭔가가 저절로 그렇게 될 때 하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인식형이 볼 때는, 정해진 대로 한다고 해서 정말로 그게 되는 것은 아니다. ‘2시부터 4시까지는 공부하는 시간이니까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그 시간 동안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인식형이 느끼기에는 ‘공부가 될 때’ 한 것이 진짜 공부한 시간이다. 실제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인식형은 대단히 견디기 어려워한다. 


인식형에게는 ‘자발성’이 중요하다. 보통 ‘자발적으로 하라’는 말은 ‘시키기 전에 자기가 먼저 알아서 하라’는 말로 쓰이곤 하는데, 여기서의 ‘자발’은 ‘저절로(自) 터져나오는(發)’ 것을 말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안되던 것이 어느 순간 ‘막힌 게 뻥 뚫리듯’ 저절로 술술 잘될 때가 있다. 인식형은 이럴 때 쭉 이어나가서 끝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판단형들이 짜놓은 계획은 이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이제 막 잘 되기 시작했는데 ‘땡! 시간 지났으니까 그만’하라고 하고, 아무것도 된 게 없는데 ‘마감시간 다 됐으니까 마무리해서 내라’고 하고…. 인식형은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는 동안 일상 속에서 이런 좌절을 매일 경험하며 산다.       



조기착수 vs. 임박착수


만약 15일이 과제 제출 마감일이면 판단형은 다이어리에 ‘12일 제출’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12일부터 역산해서 스케줄을 짠다. 12일까지 검토와 마무리를 마치려면 10일까지는 1차 완성이 돼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전에 적어도 7일까지는 자료수집이 되어 있어야 하고… 하는 식으로 계획을 짠다. 그리고 중간에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 스케줄을 조금씩 초과달성해 놓는다. 그래서 10일이 되기도 전에 완성을 하고, 정말로 12일에 제출을 한다. 기한 마지막날인 15일에 제출하는 법은 없다.  


인식형은 제출 기간이 12일부터 15일까지라는 소리를 들으면 일단 ‘15일’이라는 마지막 날짜를 기억에 넣어둔 다음, 마감시간이 18:00시인지 아니면 그날 자정까지인지를 확인한다. (판단형은 마감시간을 굳이 눈여겨보지 않는다. 마지막날 제출할 일이 없기 때문에 마감시간까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식형에게는 마감시간이 아주아주 중요하다). 


인식형은 과제에 대해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다가 ‘오케이, 됐어!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을 때 비로소 손을 댄다.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마감 이틀 전쯤인 13일쯤에야 착수를 한다. 그리고 막바지에 불이 붙는 바람에 미친 듯이 몰아쳐서 마감시간 1분 전에 제출 버튼을 누른다. 


시작을 늦게 했으니 시간이 부족한 건 당연한 일일 테고 어차피 완성도를 기대할 수 없을 테니, 최소한 마감 한 시간 전쯤에는 포기할 건 포기하고 대충 마무리를 해서 제출을 할 수는 없을까? 

인식형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게’ 나오기 시작했고, 가속도가 붙어서 정점을 향해 가고 있을 때의 한 시간은 그냥 한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그냥 버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 속력으로 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지막 1분 전까지 사력을 다하고 미친 듯이 제출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랙이 걸려서 마감시간을 넘겨버린다.) 인식형은 이렇게 간발의 차로 제출 기한을 놓치고,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하고, 눈앞에서 셔터가 닫히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단정적 vs. 개방적


판단형의 일처리는 정해진 목표가 먼저 있고 거기에 과정을 맞추는 방식이다. 일처리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답이 있고 거기에 맞게 근거와 이유들을 짜맞추는 방식으로 생각한다. 


판단형은 인식기능과 판단기능 중에서 판단기능을 우위에 두는 타입이다. 즉, 어떤 사안이나 대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지’를 먼저 정하고 난 다음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식이다. 

‘어떻게 처리할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를 먼저 정하고, 그 입장에서 보고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어떻게 생각할지를 정해놓은 상태에서 알아보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뭘 알게 되더라도 ‘결론’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와 달리 인식형은 결말을 열어놓는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된 것인지’를 알려고 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가다 보면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식형은 딱 잘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즈니스에서 의사결정권자들이 아무리 치밀하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실행계획을 세워도 막상 현장에서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고, 계획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돌발변수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일단 이 정도로 해두고 나머지는 상황 봐서 되는 대로 합시다”라고 여지를 두고 융통성 있게 처리해야만 일이 제대로 될 수가 있다. 예정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큰일났다’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인식형의 성향은 변수가 많고 변화의 속도가 빠른 환경에서 살아남기에 유리하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은 어떤 사안이나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뜻밖의 일을 했을 때 인식형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어떨 것이라고, 또는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한 사람에게 이런 측면도 있고 동시에 다른 측면도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인식형은 사람이나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폭이 넓고 유연한 편이다.  


반면에, 판단형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식의 모호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분명하게 판별되는 것을 좋아한다. 분명하게 결론이 나야 목표가 확정될 것이고, 그래야만 계획을 고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정적으로 결론짓고 확고하게 유지하는 판단형의 성향은 목표를 성취하는 데 유리하다. 판단형이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 것은 조기착수와도 관련이 있다. 미리미리 차근차근 쌓아왔던 모든 준비와 대비책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면서까지 목표점을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단형은 이미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확고하고 완고하다. 또 이렇게 확고하기 때문에 조기착수를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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