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할 때 목표를 정해놓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워서 해나가는 게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흐름을 타고 가는’ 방식이 더 잘 맞는 사람이 있다.
목표지점을 미리 정해놓고 가는 사람은 모든 선택의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면 영판 다른 데로 가게 되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까딱 잘못하면 먼 길을 돌아서 가게 되든가, 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수도 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출발점부터 목표점까지의 모든 경로를 미리 정해놓고 가야 한다.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언제 어느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지 시간계획도 미리 짜놓고 그 계획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목표와 계획이 정해져 있으므로, 경로에서 벗어난 길은 ‘다른’ 길이 아니라 ‘잘못된’ 길이고, ‘틀린’ 길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 앞에서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차질없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가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이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요?”
이처럼 판단을 주로 하려고 하는 사람은 ‘판단형’이다. (이어질 행동, 즉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하여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판단’이다. #14 인간관계 관리가 어려운 건 사고형일까, 감정형일까 참조) 이 사람들은 인식기능(감각/직관)보다 판단기능(사고/감정)을 우선적으로 쓴다.
반면에, 흐름을 타고 가는 사람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를 알아차리고, 이 모든 게 어찌된 일인지를 알았으면 그걸로 된 거다. ‘알게 된 그것’을 ‘어떻게 어떻게 해서’ 기어코 수행해야 할, 정해진 일이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다가오는 저 파도가 탈 만한 파도면 올라타고, 그렇지 않으면 보내고 다음을 기다린다. 가장 적당한 바람이 불 때 돛을 올리고, 열리는 문을 열고 나간다.
이렇게 하려면 ‘무엇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느 문이 열리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어떤 문제든 일단
‘이게 무슨 일인지’
‘어떻게 된 일인지’
를 알고자 한다.
이처럼 인식을 주로 하려는 사람은 ‘인식형’이다. 이 사람들은 판단기능(사고/감정)보다 인식기능(감각/직관)을 우선적으로 쓴다.
목표를 고정값으로 놓고 그 목표에 맞게 과정을 통제하는 방식에서는 짜임새 있는 계획이 중요하다. 그리고 계획대로 실행될 수 있으려면 시간과 공간, 모든 요소들이 통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판단형은 일상생활에서 시간과 공간이 통제되고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시간이나 공간이 흐트러지면 불편해한다.
반면에 정해진 목표가 없거나, 상황에 따라 목표가 변경될 수 있으면 한결 여유가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고, 가는 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으면 거기에 머물러도 된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가 있다.
목표에 맞게 꽉 짜여진 계획은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인식형은 집중할 만하면 중단시켜버리곤 하는 ‘정해진 시간표’에 좌절감을 느낀다.
판단형은 시간 관리와 공간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반면, 인식형은 대개 시간에 대한 관리가 느슨하고 주변 공간을 질서 있게 관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느냐 못 하느냐, 주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느냐 어수선하냐만 가지고 판단형인지 인식형인지를 판가름하려고 하면 잘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판단형인 것 같기도 하고 인식형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판단형인데 또 어떤 면에서는 인식형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판단형으로 사는 게 너무 지치고 답답한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해서 인식형처럼 살아보면 그건 또 그것대로 불안하고 마음이 영 불편하다. 인식형의 생활방식이 무작정 즐겁고 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걸 보면 판단형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제대로 판단형처럼 살지도 못한다.
왜 이런가 하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어쨌든 학업을 마쳤고, (남자의 경우는) 군대도 갔다 왔고, 직장 다니면서 일을 해왔고, 열심히 사회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판단형의 생활방식으로 훈련이 돼 있다.
산업사회 이후로는 사회의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판단형이 되어야만 한다.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고, 시간과 공간을 관리한다’라는 건 ‘훌륭하다’ ‘유능하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뜻 자신있게 “나는 판단형이야” “나는 인식형이야”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 ‘판단형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라고 생각하기가 더 쉽다.
직장 일에서는 누가 봐도 판단형으로 보이는 사람이 집안 살림은 인식형처럼 하는 경우도 있고, 부모님 집에서 자랄 때는 판단형이었는데 독립해 나와서는 인식형처럼 사는 경우도 있다. 원래 인식형인 사람인데 공적인 영역에서만큼은 철저히 판단형으로 살도록 훈련된 것일 수 있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자기 본래의 인식형 특성대로 사는 것이고….
아니면 원래 판단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너무 과도하게 관리하고 있을 경우 그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개인적 공간에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인식형에 적합한 직업을 갖고 자기 일의 영역에서는 인식형으로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린 자녀에게 생활습관을 교육시킬 때는 판단형 중에도 그런 판단형이 없어 보일 만큼 빡빡하게 구는 경우도 있다. 대개 부모에게서 받은 대로 자녀에게 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현재의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도, 유독 자녀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자기도 모르게, 어린 시절 자기 부모가 자기에게 했던 대로 똑같은 장면을 재현하는 경향이 있다.)
정리정돈이나 시간 관리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습관의 차이만을 가지고 판단형과 인식형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마치 입고 있는 옷차림만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려는 것과 같다.
판단형과 인식형의 차이는 특히 ‘통제’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성향이고 어디서부터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강박인지 분명하게 가려내기 어렵다. 판단형과 인식형의 차이는 단순히 생활습관에서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와 방식의 결과로서 생활습관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