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 듣는 잔소리의 대부분은 일상생활 관리에 관한 것이다. “왜 이렇게 꾸물대냐” “숙제 먼저 하고 놀아라” “미리미리 챙기랬지” “방이 이게 뭐니”….
판단형 아이들은 처음에는 서툴더라도 한번 습관으로 자리잡고 나면 그다음부턴 잔소리 할 일 없이 알아서 잘하게 된다. 보통 부모들이 ‘처음에 습관을 잘 잡아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판단형 아이들에 해당하는 얘기다. 인식형 아이는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나고 아무리 반복되는 일이라도 매번 일깨워주고 잔소리를 해야만 한다.
어렸을 때 생활습관을 잘 들이는 데 실패해서 인식형이 된 것일까? 누구나 처음에 습관을 잘 들이면 판단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습관이라는 것은 한번 들고 나면 몸에 배어서 저절로 되는 것이니까 오랜 기간 철저하게 훈련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시간과 공간 관리가 가장 철저한 곳은 아마도 군대일 것이다. 그 정도의 엄격함과 철저함으로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냈으면 습관이 몸에 배어 완전히 자리잡을 만도 하다. 그런데 전역하고 나면 한 달 만에 입대 전 상태로 돌아가버리게 되는 건 왜 그런 걸까? 이미 스무 살이 넘어버려서, 습관을 고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서 그런 걸까?
그러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총 12년 동안이나 아침 8시 반에는 어김없이 학교에 가 앉아 있었는데, 직장 다니는 내내 아침 9시 출근이 그토록 힘든 건 왜 그런 걸까?
아무리 어려서부터, 아무리 철저하게, 아무리 오랜 시간 통제한다고 해도 인식형이 판단형으로 고쳐지지는 않는다. 판단형과 인식형은 전반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이지 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활습관이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뒤따라오는 것일 뿐이지 본질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상을 바꾼다고 해서 본질이 바뀔 리가 없다.
만약 인식형인 어떤 사람이 어려서부터 부모의 철저한 통제와 훈육의 결과로 일상생활 관리를 빈틈없이 해내고 있다면 훈육 덕분에 판단형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다만 성장기간 내내 온힘을 다해 ‘병영생활’을 해왔던 것뿐이다. 그래서 통제가 사라지는 순간, 바로 본래의 성향으로 돌아간다.
물론 외부 통제가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통제하며 판단형과 같은 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순간에 에너지를 들여 노력하는 것이지 성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질서 있게 시간/공간 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힐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판단형 위주로 이미 돌아가고 있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방식에 따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만, 사람을 아예 고쳐놓으려고 드는 훈련과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하기 위한 훈련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해야 한다.
어쨌든 판단형이 보기에는 인식형의 생활방식은 불안해 보이고 못마땅해 보인다. 가장 속 터지는 건, 꼭 해야 될 일이 있는데도 계속 미뤄놓고 빈둥거리는 모습을 볼 때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 내야 될 과제가 있는데 일요일 점심 때까지도 시작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있을 때가 있다. 만약 판단형에게 이렇게 하라고 시키면 할 수 있을까?
판단형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인식형은 거의 매번 이런 식으로 한다. 판단형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인식형은 단지 게으르거나 책임감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보기에는 그저 해야 될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터지기를’ 또는 ‘잡히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됐다!’ 싶게 뭔가가 터져나오면, 후다닥 일어나 앉아서 순식간에 몰입으로 들어간다. 마치 이전에 완성해놓았던 것을 재연하듯이 단번에 완성된 상태로 풀어내서 끝마쳐버린다. 때로는 거기서 더 깊은 몰입으로 들어가서 의도치 않았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기도 한다. 이런 것이 터져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남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인식형에게는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사냥이나 낚시와 같다. 세팅을 해놓고 매복해서 기다리고 있다가 최고의 사냥감이 포착되면 최적의 거리와 움직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순간에 방아쇠를 당겨서 잡는 것이다. 일주일 전부터 시간 정해놓고 하루에 두 시간씩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해서 사슴이 잡아지는 건 아니지 않냐고 인식형은 반문한다.
‘진짜’를 만들어본 경험
인식형이 기다린다고 하는 ‘그분’이란 ‘활성화된 필요한 요소들이 통합돼서 비로소 터져나오는 순간’을 말한다. 바로 그 터져나온 흐름을 잡아 타고, 그동안 세팅해 놓고 있었던 자원(지식, 정보, 생각)과 에너지를 순식간에 쏟아부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식형은 이것을 포착하는 능력 그리고 통합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진짜’, ‘오리지널’일 수밖에 없다. 그럴듯하게 흉내만 낸 게 아니고, 어설프게 따라해본 수준이 아니고, 진짜 자기 것이 터져나온 것이다. 이런 맛을 본 사람들은 ‘진짜가 아닌 것’을 하기가 오히려 어렵다. ‘진짜가 아닌 것’이란,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도록 과정과 내용을 끼워 맞춘 것, 실제로 일어나는 일과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계획대로 수행하는 것 등이다.
물론 인식형의 방법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그분’이 늘 마감시간 전에 와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마감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제출하지 못하거나 또는 마감에 쫓겨 미완성인 채로 제출하거나 아니면 아예 ‘사슴 뒤꽁무니’도 못 본 채로 끝나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될 때마다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불이익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길게 봤을 때는 이렇게 ‘진짜’를 산출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분명 다른 결과물을 내게 된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행복의 조건 중 하나인 몰입 경험을 ‘flow’라고 이름붙였는데 flow는 흐름이라는 뜻이다. 스케줄에 맞춰 수행하는 판단형 방식이 적합한 분야도 있지만, 더 깊이 파고들어 엄청난 연습량, 엄청난 분량의 축적이 필요한 분야도 있다. 그것에 빠져들어 거기에 미쳐야만 섭렵할 수 있는 엄청난 절대량이 있고, 그 양을 채워야만 어느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몰입이 아니면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일들이다. 인식형은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또 인식형이 잘할 수 있는 일인데, 학교를 비롯한 모든 조직에서는 이런 몰입을 막고 방해하고, 몰입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게 한다. 흐름을 타고 가야 하는 인식형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흐름이 끊기고, 몰입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번번이 중단되는 상황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 이렇게 계속 방해받다 보면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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