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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닥쓰담 Aug 17. 2020

사고형이 못 알아듣는
감정형의 말 (2)

#16  나는 어떤 성향인가? : 사고형/감정형


“뭘 잘못했는지 정말 모르겠어?”


사고형에게 부탁을 하거나 양보를 구할 때는, ‘내가 힘든 걸 알 테니까 당연히 해주겠지’라고 기대하거나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를 어필하는 식으로 해서는 별로 효과가 없다. “힘든 거 안 보여?”라는 식으로 접근했다가는 반발만 불러일으킨다. 그보다는 ‘니가 이걸 해주면 나는 이걸 해주겠다’ 또는 ‘이렇게 했을 때는 이런 이득이 있고 저렇게 했을 때는 저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하는 식으로 타협이나 협상을 하는 게 잘 먹힌다. 

사고형이 ‘상대방과의 관계의 문제’인 배려보다, ‘분별의 문제’인 협상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스갯소리로 말하자면, 사고형에게는 “청소기 좀 돌려줘”라고 말하는 것보다 “설거지 할래, 청소기 돌릴래?”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사고형에게 중요한 얘기를 할 때는, 감정을 섞지 않고 최대한 ‘뽀송뽀송’하게 말해야 한다. 조금만 축축해도 사고형은 ‘이 사람이 감정적으로 나오는구나’ 하고 자기도 모르게 차단막을 쳐버리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접근했는데도 사고형이 반발하고 충돌이 일어났다면 그건 아마도 말하는 사람이 감정을 먼저 터뜨리고 그 감정을 논리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얼마든지 ‘감정적이면서 논리적’일 수 있다. 감정에 북받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에도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따지면서 화를 낼 수 있다. 이렇게 감정이 앞서고 그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들이댈 경우, 사고형은 거기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스탠스를 취하게 된다.


사고형이 이처럼 감정적인 접근을 꺼리거나 피하려고 하는 것은 감정기능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돼 있어서, 감정을 알아차리거나 처리하는 데 미숙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잘 대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접근해오는 뭔가를 피하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다. (감정형이 복잡한 사고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사고형은 남의 감정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감정에 휩싸이게 됐을 때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몰라서 난감해하다가, 결국 자기가 가장 원치 않았던, 세련되지 못한 형태로 표출하고 만다. 



이렇게 사고형은 공감이나 배려, 감정에 둔한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정형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사고형과 감정형이 서로 상대방의 말 자체를 못 알아들어서 생기는 문제도 많이 있다. 사고형과 감정형이 연인이나 부부, 친구처럼 서로 아주 가까운 관계일 때 특히 이런 의사소통의 문제를 많이 겪는다. 


감정형은 타협이나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자식 간에, 형제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꼭 계산적으로 주고받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그래야 한다는 게 너무너무 불편하고 못마땅하게 느껴진다. 원칙이 어떻든, 약속이 어떻든 간에 서로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하고, 상대방이 힘들까봐 살피고 걱정해주는 게 사랑이라고 감정형은 생각한다.


이런 차이 때문에 사고형과 감정형의 관계에서는, 감정형은 서운한 일이 많을 수밖에 없고 사고형은 그럴 때마다 어리둥절해진다. 감정형이 서운하다고 화를 낼 때 사고형은 ‘혹시 내가 무슨 경우에 어긋나는 일을 했나?’ ‘내가 부당한 일을 했다고 상대방이 오해할 만한 게 있었나?’ 하고 계속 이유를 찾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일이 없으면 ‘뭐가 문제인지를 말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감정형은 

“뭐가 문제인지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라고 한다.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감정형은 답을 말해주지 않고 계속해서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보라’고 한다. 



사고형들은 이게 정말 궁금하다. 왜 답을 말해주지 않으면서 계속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보라’ ‘뭘 잘못했는지 너의 말로 얘기해보라’고 하는 걸까? 뭐가 문제인지를 알려줘야 해결을 할 게 아닌가... 이 ‘뭘 잘못했는지 알아맞히기 퀴즈’를 사고형들은 정말 힘들어한다.


사고형은 절대 이 답을 알아맞힐 수 없다. 왜냐하면 서운함을 느끼게 했다는 것, 바로 그게 답이기 때문이다. 


답을 말해줬는데 계속해서 ‘답을 말해달라’고 하는 것은 시비를 따져보자는 것이지 화해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운하다고 말했는데 뭐가 서운했냐고 물어보는 것, 상처받았다고 말했는데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냐고 물어보는 것, 감정형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말문이 막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그만 말하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감정형에게 서운하다고 말했으면, 그 말을 들은 감정형은 바로 자책하면서 미안해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게 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미안하고 잘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그런 걸 표현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자책할 일이다. 

감정형은 당연히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서운하다’고 말했는데, 사고형은 여기다 대고 대뜸 ‘무엇 때문에’ 서운했냐고 묻는 것이다. 바로 ‘자기가 뭘 서운하게 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게 잘못인데 사고형은 이걸 받아들이지 않고,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얘기해달라’ ‘말을 해줘야 알 거 아니냐’ 하면서 계속 ‘잘못’을 추가한다. 



사고(thinking)란 ‘둘 이상의 사실이나 관념을 어떤 법칙에 따라 연관시키는 작용’이다. 당연히 사고형은 ‘서운함’이라는 감정과 이 감정을 일으키게 된 ‘어떤 일’을 연관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감정형은 나의 서운한 감정을 상대방이 받아들이느냐 밀쳐내느냐가 문제다. 감정형 입장에서는, 내가 서운하다고 했을 때 상대방이 깜짝 놀라며 미안해하면 ‘나의 서운함’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뜻이고, ‘이유가 뭔지 말해달라’고 하는 것은 내쳐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서운함을 느끼며 힘들어했을 나’보다 ‘그 이유가 타당한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s. 

(여기까지 읽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고형이 분명히 있을 것이어서^^) 비유를 덧붙이자면, 이런 것이다. 

남편이 다리가 부러져서 몹시 아파하고 있다. 아내가 부축을 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갑자기 더 고통스러워하며 ‘당신이 잘못 건드려서 너무 아프다’고 한다. 아내는 건드린 적이 없는데... 이 순간에, 아내가 남편의 고통에 집중해서 “아, 어떡해 어떡해!” 하며 마음 아파해준다면 남편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내가 ‘나는 정말로 건드리지 않았다, 당신이 오해하는 거다, 나는 분명히 이쪽에서 잡았고 그쪽에는 닿지도 않았다’ 하고, 계속해서 ‘건드렸냐 아니냐의 팩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남편의 마음이 어떨까. 무엇 때문이든 간에 어쨌든 지금 아프다는데...


‘무엇 때문’이냐고 묻는 말이 감정형에게 상처가 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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