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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닥쓰담 Aug 10. 2020

인간관계 관리가 어려운 건 사고형일까, 감정형일까?

#14  나는 어떤 성향인가? : 사고형/감정형

감각과 직관은 세상을 ‘인식’하는 인식기능이고, 사고와 감정은 그 인식한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판단’하는 판단기능이다. 


감각을 통해서든 직관을 통해서든 뭔가를 인식했으면 그다음엔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움직이는 물체가 맹수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가만히 숨어 있을지, 빨리 달아날지를 결정해야 한다. 열매라고 인식했으면 따서 먹을지 아니면 그냥 놔둘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처럼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하여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판단이라고 하고, 이러한 판단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사고형과 감정형으로 나뉜다.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이나 관념을 어떤 법칙에 따라 연관짓는 작용’, 즉 사고를 통해 판단하는 타입을 사고형이라고 하고, 주어진 것을 ‘수용하느냐/거부하느냐’로 판단하는 타입을 감정형이라고 한다.



사고형은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을 판단하려고 한다. 여기에서의 옳고 그름은 ‘정의’나 ‘진리’ 차원에서의 옳고 그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합리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옳은지 그른지, 즉 손익이나 유불리도 옳고 그름이다. 각자의 가치관이나 입장,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른 것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경영자는 경영자 입장에서의 옳고 그름이 있고, 노동자는 노동자 입장에서의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사고형은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을 따지고, 그 기준이 되는 규칙이나 원리원칙을 중요시하고,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리는 것을 좋아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분석적이다. 


반면에, 감정형은 좋으냐 싫으냐, 마음에 기꺼이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마음을 먹을지를 결정한다. 사고형처럼 근거들을 논리적으로 꿰어맞추는 것이 아니라 ‘수용 아니면 거부’, 마음에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감정형은 진심, 사람, 가치…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옳고 그름이나 맞고 틀림보다는 그 대상에게서 느끼는 정서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판단한다.



스포츠판 vs. 소꿉놀이판


사고형과 감정형의 차이는 스포츠와 소꿉놀이(또는 친목모임)로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사고형의 세계는 스포츠판이고 감정형의 세계는 소꿉놀이판이다. 스포츠에는 룰이 있고, 승패가 있다. 어떤 이유였든, 어떤 사정이 있었든 간에 어쨌든 룰을 어겼으면 패널티가 주어진다. 이에 반해 소꿉놀이는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그 자체’를 위해 하는 일이다. 기분이 상하거나 다투지 않고 좋게 좋게 놀이를 이어나가는 게 목적이다.


스포츠에서는 ‘뭔가를 해내는’ 게 중요하다. 골을 넣어야 하고 그걸 또 막아야 하고, 같은 편끼리 협력해서 상대편을 이겨야 한다. 예를 들어, 축구 골대 앞에서 슛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동료와 부딪쳐서 동료가 넘어졌다면, 스포츠에서는 당연히 슛이 먼저다. 

같은 상황이 소꿉놀이판에서 벌어졌다면 “어이쿠! 안 다쳤어?” “괜찮아?” 하고 쓰러진 친구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러나 스포츠판에서 만약 이랬다가는 “뭐하는 거야!” 하고 욕을 한 바가지는 먹을 일이다. 쓰러진 친구조차도 욕을 할 것이다.  


이처럼 사고형은 과업중심적이다. 서로 경쟁할 때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공동의 과업을 수행할 때는 힘을 합쳐 과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된다. 그래서 팀 안에서의 우열을 인정하고 ‘잘하는 녀석’에게 몰아준다. 상대 팀을 이기고 우리 팀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사고형은 ‘구성원 모두가 돌아가면서 한 번씩 슛을 해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득점을 낼 수 있는 에이스에게 전원이 합심해서 슛 기회를 몰아준다. 

사고형은 과업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과업을 이루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으로서의 ‘우열에 따른 위치와 역할’을 싫든 좋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우열을 가리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고 민감한 일일 수밖에 없다. 사고형이 모든 관계에서 우열과 승부를 가리려고 하고, 그 룰이 공정한지 아닌지, 룰을 어겼는지 안 어겼는지, 즉 시시비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뭔가를 함께 할 때, 사고형은 함께 ‘한다’는 것에 초점이 있는 반면, 감정형은 ‘함께’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같이 게임도 하면서 즐겁게 놀 때, 그 게임은 이기려고 하는 게임이 아니다. 게임을 너무 잘해서 한 번도 술래가 되지 않는 멤버가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기분 좋게 다 같이 어울려 노는 게 목적이다. 이처럼 감정형은 과업중심이 아니라 관계중심적이다. 감정형에게는 해야 하는 일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감정형이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곧 감정형이 인간관계에 능숙하다는 뜻은 아니다.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인 관계를 견디면서 뭔가를 해야 할 때 사고형은 ‘일은 일이고 사람은 사람’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있지만, 감정형에게는 사람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과 사람을 분리하기가 어렵다. 사고형은 필요하다면, 또는 피할 수 없다면 적대적 공생관계도 유지하려고 하는 반면, 감정형은 좋은 관계는 계속 좋은 관계로 유지하려고 하고, 관계가 나빠지면 그 관계는 깨졌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사고형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판단할 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져보고 그럴 만한 이유나 정당성이 분명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감정형은 대상을 수용할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의 방식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면 통째로 받아들이고 내치면 통째로 내친다. ‘일은 일이고 사람은 사람’ “일에 좋고 싫고가 어디 있어” 이런 말들은 감정형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조직 내 역학관계에서의, 또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비즈니스에서의 인간관계 관리는 감정형이 사고형보다 더 힘들어하고 미숙한 경향이 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느슨한 관계나 친목 자체를 위한 관계에서는 반대로 감정형이 관계의 중심이 되고 윤활유 역할을 한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사귀는 친구들은 친교 그 자체를 위한 관계였기 때문에 감정형들이 중심에 있었다. 잘 놀고 명랑하고 유쾌한 외향-감정형 아이들과 따뜻하고 친절한 내향-감정형 아이들이 친구들을 하나로 모으고 이어주는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감정형 아이들이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학교는 이제 천진난만하게 친교를 나누는 놀이터가 아니라, 우열을 가르고 경쟁을 하면서 각자 개인이 성과를 내야 하는 개인 종목 선수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선수촌의 언어와 규칙에 익숙지 않은, ‘나이브한’ 소꿉러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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