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는 어떤 성향인가?
공부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감각이나 직관 어느 한쪽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어떻게 타고났더라도, 자라면서 감각기능도 발전시켜나가야 하고 직관기능도 발전시켜야 한다. 실제로 누구나 이 두 기능을 다 가지고 적절히 사용하면서 살아나간다. 어떤 사람은 감각기능을 훨씬 더 잘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직관기능을 더 잘 사용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을 성장시켜야 할까? 타고난 쪽은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성장할 테니 반대쪽 성향을 열심히 키워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에도 왼손잡이/오른손잡이 예를 들어보자.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아이가 어느 한쪽 손으로만 그림 그리고 밥 먹다가, 더 자라서 양손을 다 써야만 하는 일을 하게 되면, 예를 들어 피아노를 치거나 컴퓨터 자판을 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양손을 다 잘 쓴다. 그때까지 오른손을 주로 썼다고 해서 피아노를 칠 때 왼손을 못 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주로 쓰는 손이 아닌 손이라고 해서 기능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른손잡이 아이가 활쏘기를 잘하게 된다는 것은 활시위를 당기는 오른손만 개발된 게 아니라 그만큼 왼손도 활등을 잡고 지지하는 힘과 제어력이 생겼다는 뜻이다. 감각과 직관도 이와 마찬가지다. 가만히 놔두면 자기가 잘 쓰는 기능을 먼저 성장시키고 그 뒤를 쫓아서 반대 기능이 성장하게 돼 있다.
그런데 타고난 성향이 충분히 성장하기도 전에 반대편을 개발하려는 것은 타고난 성향이 성장해야 할 시기에 성장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이 된다. 왼손잡이 아이에게 오른손을 쓰도록 강제하는 경우에, 그것을 시키는 어른 입장에서는 ‘오른손을 쓰라’는 것이지만, 실제 아이가 하게 되는 노력은 ‘왼손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노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노력의 본질은 계발이 아니라 억압이다. 만약 왼손을 아예 쓸 수 없다면 오른손을 쓰려는 노력은 도전이 되겠지만, 저절로 잘할 수 있는 왼손이 있는데 그걸 쓰지 않고 오른손으로 해보려고 애쓰는 노력은 ‘일단 자기를 부정하고’ 그 위를 딛고 일어서는 ‘극복 시나리오’다.
이렇기 때문에, 타고난 성향이 아직 충분히 성장하기 전이라면, 반대편을 키우려는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잘하는 것을 그냥 잘하도록 놔두는 것이, 그래서 일단은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타고난 성향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안정된 뒤의 얘기다.
타고난 성향은 오랫동안 억눌려 있었더라도 나중에 억압이 사라진 환경이 되면 물 만난 고기같이 단숨에 성장될 수 있다고 하니(#3 타고난 성향이 환경 때문에 바뀔 수도 있나요?) 지금 당장은 억제되더라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본래 성향은 나중에 언제든지 회복될 수 있으니, 어쨌든 반대 성향을 먼저 개발시켜놓는 것이 효율적인 일이 아닐까?
이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이렇게 비유해볼 수 있겠다. 어렸을 때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고 다른 집에서 자라면서 꿋꿋하게 여러 기능과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 결혼해서 잘 살다가 자기 친부모를 만나 그동안 못 받았던 사랑을 받게 된다면? 이것은 분명 해피엔딩이다.
그러면, 어려서부터 자기 부모에게서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결혼해서 좌충우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은?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엄청나게 훌륭할 것도 없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삶일 것이다.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인 일일까를 따져본다면, 남의 집에서 자란 덕분에 눈치도 빠르고 집안일도 잘하고 자립심 강하게 잘 자랐고 결국 나중에 부모까지 만났으니 다 얻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당사자에게 충만하고 행복한 삶이었을까를 따져본다면? 그냥 자기 부모 슬하에서 철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경우일 것이다.
감각-직관뿐 아니라 외향-내향, 사고-감정 등 다른 기능들에서도 다 마찬가지다. 일단은 자기가 타고난 성향을 충분히 성숙시킨 다음에, 그 기능을 자유자재로 쓸 정도가 되면 그때 반대편을 탐색하여 성장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 본래 성향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성장시켜 성숙에 이른 사람은 가만 놔둬도 자연스럽게 반대편 탐색으로 나아가게 돼 있다.
정리하자면, 문제는 두 가지 경우에 발생한다. 하나는 이미 자기 성향이 충분히 개발된 뒤에도 그 한계에 갇힌 채, 반대편에 대한 탐색 없이 계속 한쪽으로만 달리는 경우, 다른 하나는 자기가 타고난 성향이 충분히 개발되기도 전에 반대편 기능을 훈련하는 바람에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양쪽 다 미숙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남게 되는 경우다.
두 가지 다 성숙한 인격에 도달하지 못하고 미성숙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어서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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