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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닥쓰담 Aug 01. 2020

감각형이 멘붕에 빠질 때

#12  나는 어떤 성향인가? 감각형/직관형


쓰레기봉투 묶어놓은 것만 봐도, 빨래 널어놓은 것만 봐도 감각형이 해놓은 것인지, 직관형이 해놓은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직관형이 빨래 널어놓은 것을 감각형이 본다면 ‘이 사람이 빨래를 널려고 여기 갖다가 척척 얹어놓고 어딜 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쓰레기봉투 묶어서 내놓은 걸 보면 ‘더 채워서 버리려고 임시로 묶어놨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감각형과 직관형의 차이는 손의 기능에서 유독 많이 나는 것 같다. 직관형이 손으로 뭘 해놓으면 예외없이 허술하다. 그런데 그게 허술해보이는 건 감각형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직관형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개인마다 꼼꼼하다고 하는 기준이 다 다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감각형은 꼼꼼하고, 세세한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오고, 끝마무리가 야무진 편이다. 



감각형은 ‘지금 손에 잡고 있는 것’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 한다. 보통 ‘장인정신’이라고 말하는 특성, 즉 세밀한 정성과 숙련된 기술에 의한 완성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완벽함의 추구, 만족할 만한 퀄리티가 나올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근성 같은 것들은 감각형이 가진 장점이고, 감각형 스스로 높이 평가하고 추구하는 특성이기도 하다.     


감각형은 종종 ‘답답하다’ ‘꼼지락거린다’는 소리를 듣는데, 특별히 행동이 느리거나 재주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자기 성에 찰 때까지 손보고 다듬고 마무리하느라 오래 붙들고 있다 보니 그런 소리를 듣게 된다. 

또 간혹 ‘쪼잔하다’는 험담을 듣기도 한다. 별것 아닌 것, 그냥 대충 넘어가도 될 것까지 일일이 다 따지고 문제 삼기 때문이다. 남이 볼 때는 괜찮아 보이고 다 똑같아 보여도 감각형 눈에는 여기 저기 잘못되고 불완전한 것들이 보인다. 감각형은 그런 걸 참고 그냥 넘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찰 때까지 갈고 닦고 맞추고 어떻게든 해결을 해서 완벽에 가깝게 만든다. 완벽한 회전 기술을 위해서 빙판 위에서 같은 점프를 수천 번 하고, 일반인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발톱이 다 빠지도록 뛰고 또 뛴다.      



장인정신     


이렇게 어느 경지에 올라서 ‘이것만 해결하면 되는’ 단계에 이르면 감각형의 장인정신은 무서운 힘과 집중력을 발휘해서 큰 성과로 이어지게 만들어준다. 문제는 이 장인정신이란 게 장인의 경지에 올랐을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거다. 목표가 막연해서, 또는 해야 할 게 너무 많고 광범위해서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는 장인정신이 아무 쓸모가 없다. 이럴 때 감각형은 허둥대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한다. 

일단 손에 잡으면 완벽하게 될 때까지 그것만 붙들고 있는 감각형의 특성상, 해야 될 게 너무 많이 펼쳐져 있으면 아예 엄두를 못 낸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는데, 이거 제대로 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럼 저건 언제 하나, 그다음 것도 해야 되는데… 충분히 잘할 수 있는 것도 제대로 못 하고 걱정만 한다. 그러다가 해야 될 게 너무 많이 쌓이면 그냥 포기하게 된다. 감각형 입장에서 그 많은 걸 다 완벽하게 한다는 건 이제는 불가능한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의 범위와 수준이 정해지고 구체적인 과제가 주어졌을 때 감각형은 훨씬 편안해하고, 실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래서 감각형은 자기가 리더나 부모가 되었을 때 부하직원이나 자녀에게 구체적인 수행 과제를 주고 꼼꼼히 점검을 한다. 해야 할 일 첫째, 둘째, 셋째... 주의해야 할 것 첫째, 둘째, 셋째... 자기 경험으로 볼 때, 리더가 막연하게 목표를 제시하면 일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테일을 중시하고 꼼꼼하게 살피는 감각형의 특성상, 감각형 리더는 아랫사람들이 하는 일이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것도 마음에 안 들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간여하려고 한다. 이게 지나치면 자기 경험 안에 자기도 갇히고 다른 사람들까지 그 한계 이상 나가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감각 편향 학교교육


감각형은 주어진 조건 내에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물이나 상황 그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직접 받아들이고 해석하기보다는, 지금까지 배운 대로, 자기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적용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한 생각(정확하게 말하면 배운 것의 적용)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얼마나 정답에 근접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어렸을 때는 이런 특성 때문에 감각형 아이들은 직관형 아이들보다 훨씬 영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초등 시기에는 주로 “이렇게 하면 돼요, 안 돼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야, 저렇게 하는 게 맞는 거야?” 하고 둘 중 하나를 맞히는 식으로 교육받는데, 이게 감각형 아이들에게는 아주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에 직관형 아이들은 잘 대답하지 못하거나 질문에서 벗어난 엉뚱한 답을 말하곤 한다.) 


조직에 적합하고 체계와 순서를 중시하는 감각형의 특성 또한 학교 시스템에 잘 맞는다. 암기와 반복훈련을 통해 주어진 하나하나의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단계적으로 수행능력을 향상시켜가는 식의 학습모델은 감각형 아이들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다. 학교교육은 직관보다는 감각을 사용해 배우고 익히고 평가하도록 개발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교육에서는 이보다도 더 감각형 위주의 훈련을 시킨다. 수준별, 단계별로 잘게 나누어져 있고, 그 단계에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있고,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시가 있고, 그 예시대로 잘 따라서 반복훈련을 할 수 있는 연습문제들이 있고…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문제를 비틀고 꼬아서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경우의 수까지)를 총동원한 연습문제를 되도록 많이 풀고 정답을 확인하는 방법을 통해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하는 기술이 숙련에 이르도록 하는 주입식-훈련식 교육은 감각형을 위한 맞춤 학습방법이다.      


이처럼 학교교육이 전적으로 감각 편향인 것은 학교라는 것이 애초에 산업화시대의 요구에 맞는 감각형 일꾼들을 길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요구에 맞도록 학교교육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모두 20세기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어서, 실제로는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채로, 달라져야 한다는 필요성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 단적인 예로,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교사와 부모로부터 이런 말들을 마치 당연한 말인 것처럼 듣고 자란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문제의 의도와 유형을 파악해야지”

“덤벙대지 말고, 뭘 하라는 건지 정확히 보고 하란 말야”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답을 하라는 말이다. 이런 식의 훈련과 피드백은 학생으로 하여금 대상으로부터 자기가 직접 발견하고 알아낸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무시하도록 만든다. 직관은 점점 끼어들 틈이 없게 된다. 


학교교육에는 직관기능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학습모델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 학생 개인이 타고난 직관을 사용해서 학습에 도움이 되면 좋은 일이고, 그게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직관형 학생들에게 감각기능을 익히게끔 하는 학습모델(직관형 아이들에게는 대단히 견디기 힘든 과정이지만)은 너무나 많이 개발되어 있는 반면, 감각형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직관기능을 향상시키게 할 수 있을지는 학교교육 프로그램에 거의(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가 대학 갈 때쯤 되면 ‘통섭’이니 ‘융합’이니, ‘틀을 깨라’느니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느니 하면서 직관기능을 갑자기 요구한다. 10년 넘게 ‘잘한다 잘한다’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색하고 “너 이런 건 잘 못하는구나? 아이고, 어떡하냐” 하는 식이다. 감각형은 이때쯤에 그야말로 멘붕에 빠진다. ‘통합적 사고’니 ‘창의적 문제해결’이니 ‘발상의 전환’이니 이런 건 배운 적도 없고(배워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당황하고 좌절한다.     


교육이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균형이 잡혀 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냥 가만히 놔둬주기만이라도 했다면 감각형과 직관형 아이들이 모두 각자 자기 성향을 먼저 성장시키고 그 뒤로 자연스럽게 반대 기능이 따라서 성장해나갔을 텐데,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교육으로 감각형과 직관형 모든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하고 나서 나중에 갑자기 청구서를 들이미는 식이다.      



감각형은 조직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점차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결정을 하고 방향을 잡고 선택을 해야 하는 위치에 올라가면 직관기능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직관형의 경우에는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남자의 경우는 군대생활을 통해서 더 강도 높게) 싫든 좋든 감각기능을 익혀왔기 때문에 최소한이라도 어쨌든 감각기능을 사용할 수 있지만, 감각형은 직관기능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꺼내 쓰려고 보면 너무 미숙해서 쓸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


어른이 되고 나서, 자기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직관기능을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감각기능을 오히려 더 밀어붙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사람도 있다. 더 정확하고, 더 세세하고, 더 경험에 의지해서, 더 안전한 쪽으로… 이렇게 갈수록 점점 더 한쪽으로만 치우치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어른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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