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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Oct 08. 2022

알 수 없는 창을 넘어


     시는 처음에는 조금 알 것 같다가 끝무렵에 다시 알 수 없는 것이 됐다. 무언가 모여서 어떤 형체를 이뤄가고 있었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 그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 같았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면 그것의 흔적만 간신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온기나 향, 시원한 바람으로 남은 흔적만 멀거니 바라봤다. 무엇 때문에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건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채로 다음 시를 읽었다. 이제 겨우 한 권의 시집을 읽었으니 당연한 감상이었다.

     사서 쌓아두기만 했던 시집을 완독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처음으로 완독했던 시집은 한강 작가님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였고, 3-4년전의 일이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시작으로 시집을 샀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완독한 시집은 최초의 것을 제외하면 최근의 한 권이 유일했다.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었다. 시와 시의 문장을 동경했다. 그 마음과 별개로 시집을 펼쳐서 시를 한, 두 편 정도 읽고 나면 졸음이 쏟아졌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어의 뜻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시에서 내어주는 이미지와 색감이 전부였다. 나는 이미지와 색감을 생명줄처럼 붙잡고 시를 읽었다. 오? 뭔가 좀, 알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들어 반가워질 즈음 돌아보면 길을 잃은 채였다. 고작 해봐야 한, 두 편 읽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때는 “알 수 없음”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가끔 시집을 사는 사람이 됐다. 사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시집이 열손가락을 겨우 넘겼을 때 쩡찌 작가님의 《땅콩일기 1, 2》와 문보영 시인님의 《일기시대》를 만났다. 우연이었는데, 운명으로 포장하고 싶은 만남이었다.

     인스타에서 처음 본 《땅콩일기 1, 2》는 눈을 맞추고 천천히 읊어주는 시 같았다. 아름다운 일러스트 위에서 박스 단위로 구분되는 문장은 시의 행이었다. 자연스럽게 시를 읽듯이 한 구절, 한 구절씩 읽게 됐다. 그리고 하얀 박스를 따라 한 구절씩 천천히 읽다보면 반드시 마음에 깊게 울리는 문장을 만나게 됐다. 일기였는데도 시가 연상됐기 때문일까. 작가님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땅콩일기 1, 2》가 아름다운 그림과 어우러지는 세세한 다정의 문장으로 시를 영업했다면, 《일기시대》는 시의 재미와 매력을 어필했다. 《일기시대》는 알라딘 매대에 진열돼 있었다. 주황 배경에 푸른 박으로 그려진 그림이 근사했다. 홀린 듯 집어든 《일기시대》는 제목 그대로 문보영 시인님의 일기를 엮은 책이었다. 시인의 일기 - 몹시 흥미롭게 들렸다. 내게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일기를 쓸까. 이전에 올린 〈남의 일기〉에서도 얘기했지만 - 짱. 내 일기는 재미없는데 남의 일기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땅콩일기 1, 2》가 마음을 한 구절, 한 구절 가져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면, 《일기시대》는 마치 별세계 사람이 들려주는 현실의 이야기 같은 재미가 있었다. 어떻게 자기 방에서 그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을까. 특히 2부에서 시인님이 시를 배우게 된 경위와 시를 알아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냐면 이 책을 다 읽고 병아리 감별사처럼 시를 읽어야지, 마음먹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부터 병아리 감별사처럼 시집을 읽을 수는 없었다. 최근에 겨우 한 권을 완독했는데, 이현호 시인님의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라는 시집이다. 〈ㅁㅇ〉이라는 시 덕분에 알게 됐다. 시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던 부분은 아래와 같다.



새벽에 ㅁㅇ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그런 것보다는

자음(子音)만을 떠나보냈을 모음(母音)의 안부가

어쩐지 궁금했다


그게 마음이었다면

ㅁㅇ이 떠나가며 버린 자리엔 ㅏㅡ만 남아서

아으: [감탄사]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심하게 아플 때 나오는 소리.

명치끝에 얹힌 녹을 닦으며 쭈그려

앉아 있지는 않을까


마음의 미안으로

미안의 마음으로


(후략)



인용한 구절 하나하나가 마음에 콕콕 박혔다. 처음 봤을 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감탄하기 급급했다. 외출할 일이 생기자마자 서점에 들러 시집을 샀다. 자기 전에 3-4편씩, 이따금 일과중에 시간이 나면 1-2편씩, 글을 쓰다가 막히면 또 1-2편씩 읽었다. 시집은 소설이나 에세이와 다르게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게 좋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얇은 책을 며칠씩 붙들고 있는 것이 지겨워 몇 편의 시를 겨우 읽고 시집을 방치하다가 잊어버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반대였다. 시는 나를 환기하기에 적절했다. 창을 열어놓고 바람이 솔솔 드나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시는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다. 그간 몰랐던 것을 알아가느라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엊그제 도착한 문보영 시인님의 《배틀그라운드》를 읽고 있다. 나는 해본 적 없는 게임이 시의 배경이라서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되게 신기했다. 우선 서로 죽고 죽여 살아남는 게 목적인 게임을 배경으로 쓴 시라는 것부터 화자가 나, 너로만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등장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 이런 시가 또 있을까?


     여전히 알 것 같은 시보다 알 수 없는 시가 더 많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한 편씩, 한 편씩, 느리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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