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
너무 일찍 거리로 나온 작은 영혼

인공눈물이 마른자리엔 7화

by 노리스 부인

희주가 빠른 걸음으로 걷는 정휘의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간다.

희주는 이 근처 가요주점을 돌아다니며 일을 한다. 자기 말로는 20대 중반이라 하지만 마담에게 듣기론 이제 갓 스무 살로 간신히 미성년자 나이를 넘겼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집을 나와 오랫동안 밖에서 살아온 탓인지, 꽤 거친 성격으로 손님들과 종종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정휘는 업주들의 요청으로 싸움을 중재(?)해주며 일정 금액을 보호비로 받고 있다.

희주가 뛰어와 정휘의 팔짱을 낀다.


“오빠, 우리 어디 가서 해장국에 소주나 한잔할까?”


정휘가 희주가 감싸 안은 팔을 뺀다.


“지금도 많이 취했어. 빨리 가서 자. 맞은 데, 술 마시면 내일 더 아프다.”

“그래도 오늘 오빠가 와줘서 치료비 명목으로 돈도 받았는데, 내가 미안하잖아. 마담 언니가 그러는데 오빠 보호비도 안 받았다며?”


정휘가 아무 말 없이 걸어가자 희주가 두 팔을 벌리고 그 앞을 가로막는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저기 편의점에서 내가 음료수라도 하나 살게, 그건 괜찮지?”


희주가 앞장서서 지수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지수가 정휘를 보고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어? 정휘구나. 집에 간 줄 알았는데, 아직 안 갔네.”


희주의 눈이 동그래진다. 처음 보는 편의점 직원이 정휘에게 반갑게 말을 놓다니! 이 골목에서 정휘 오빠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정휘가 음료 매대에서 숙취해소제 한 병을 꺼내 희주에게 준다. 희주가 지수를 바라보며 묻는다.


“뭐야? 오빠 아는 사람이야?”


정휘가 대답 대신 숙취해소제의 뚜껑을 딴다.


“마셔, 술 좀 깰 거야.”


희주가 정휘가 내민 숙취해소제를 받아 마신다. 그리고는 음료 매대로 가 정휘 몫으로 블랙커피가 든 캔 하나를 골라온다.


“정휘 오빠는 항상 블랙커피 마시지?”


정휘는 희주가 내민 캔 커피를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진열대로 가 다른 음료로 바꿔 가지고 온다. 희주가 신기한 듯 정휘가 들고 온 음료수를 본다.


“아이스티? 오빠 아이스티 마셔?”


정휘가 아무 말 없이 지수에게 음료수와 카드를 내민다.


“육천팔백 원이야.”


정휘와 지수를 번갈아 보던 희주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뭐야? 오빠, 저 언니랑 정말 친구인 거야?”

“피곤하다. 나 먼저 집에 간다.”


정휘가 편의점 문을 나서자 희주가 부리나케 뒤를 따라나선다. 지수가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본다.



‘치,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 정휘의 뒷모습을 보며 희주가 중얼거린다. 새벽 세 시, 이제 희주도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희주는 편의점 근처 투룸에서 친구 자영과 함께 살고 있다. 고등학교 때 집에서 뛰쳐나온 희주는 한동안 가출팸 무리에 끼여 생활했다. 그곳에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희주는 미성년자 딱지를 떼자마자 유흥업소에서 일을 했고, 거기서 번 돈으로 자영과 집을 얻었다. 친구 자영은 희주가 가출했을 무렵부터 알고 지낸 가출팸 출신 친구이다. 자영 역시 희주처럼 근처 가요주점이나 노래방에서 일을 한다.

희주는 이 골목에서 일하면서 정휘를 알게 됐다. 정휘는 낮에는 사채업을 하고, 밤에는 이 골목의 유흥업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봐주고 있었다. 희주가 하는 일이 술 취한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니만큼, 일하면서 곤란한 일도 참 많이 생겼고, 그럴 때마다 정휘에게 여러 번 도움을 받곤 했다. 일이 있을 때마다 좀 가깝게 다가가려 했지만, 정휘는 희주에게 아무 곁도 내주지 않았다. 고마움에 작은 선물을 주거나 밥을 먹자고 해도 정휘는 돈 받고 한 일이니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다가오는 희주의 손길을 거부했다.


‘치, 다른 데 가 봐라. 다른 남자들, 나랑 술 한잔하고 싶어서 돈까지 들고 안달 났는데 말이야.’


희주는 조금 전 정휘와 같이 들어간 편의점의 분위기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편의점 직원이 반갑게 정휘에게 말을 놓은 것도, 항상 쓴 커피만 마시던 정휘가 아이스티를 마시는 것도 평소와 다른 모습이다.


‘뭔가 있어, 나중에 다시 한번 가봐야지.’


*


며칠 뒤, 저녁때가 돼서야 일어난 희주가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편의점으로 간다.


“안녕하세요. CS 24입니다.”


다행히 그 직원은 희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다. 잠시 서성이던 희주가 음료 매대로 가 정휘가 집었던 아이스티를 골라 계산대로 간다.


“천육백 원입니다.”


희주가 카드를 내밀며 지수에게 말을 건다.


“혹시 정휘 오빠하고 아는 사이예요?”


갑자기 정휘를 언급하는 희주의 말에 지수가 흠칫 놀란다.


“아, 정휘요, 네, 그냥 친구예요.”

“혹시 언제 때 친구예요? 중학교 아님, 고등학교?”


처음 보는 여자의 등장도 어색한 마당에 집요하게 심문하듯 던진 질문이 지수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지수가 짧게 대답한다.


“그냥… 친구예요.”

“에이, 세상에 그냥 친구가 어디 있어요? 고등학교 친구 아님, 혹시 대학교 친구? 아, 맞다. 정휘 오빠는 대학교는 안 다녔다고 했지! 참, 그런데 언니 혹시 대학교 다녔어요?”


희주의 폭풍처럼 몰아치는 질문에 지수의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어떤 대답부터 해야 할지 순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수가 손을 흔든다.


“잠시만요. 하나씩 물어보세요. 그리고 그전에 자기가 누구인지 먼저 밝히고 묻는 게 예의 아닌가요?”


희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맞네요. 전 오희주라고 해요. 정휘 오빠 아는 동생이고요. 저기 골목 노래주점에서 일하고 있어요. 언니는요?”


지수는 희주의 당돌한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정휘의 아는 동생이라고 하니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려고 한다.


“음~, 저는 안지수라고 해요. 대학은 신성여대를 3학년까지 다녔어요. 그리고 정휘랑 같은 학교에 다닌 적은 없고요. 그냥 여기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됐어요. 둘이 동갑이거든요.”


희주의 눈에 의뭉스러운 빛이 떠오른다. 냉정하고 누구에게도 틈을 보이지 않은 정휘가, 단지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연히 만난 여자와 친구가 됐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니, 대학 나왔다고요?”


희주는 마치 자기가 갖지 못한 걸 지수가 갖고 있는 듯이 묻는다. 지수는 계속되는 희주의 질문이 마뜩치 않았지만, 상대방이 정휘의 아는 동생이라고 하니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 나온 건 아니고 3학년에 중퇴했어요.”


희주의 눈에 장난스러운 표정이 나타난다.


“중퇴면 고졸이겠네요. 그럼 나랑 같은가? 아니지, 난 고등학교 중퇴니까 중졸이니 언니가 나보다 더 낫네요.”

“……”


지수는 정말이지 이 난처한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더 사실 물건 없으시면 이만 나가주세요. 저도 일 해야 하거든요.”


희주가 갑자기 쓰고 있던 까만 모자를 벗고 멍든 얼굴을 지수에게 당돌하게 들이댄다.


“며칠 전, 어느 술 취한 놈한테 맞아서 눈에 멍이 들었거든요. 이거 없애는 약 있나요?”


지수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입술을 앙다문다. 희주의 계속되는 무례함에 화가 난 것이다. 잠시 희주를 노려보던 지수가 계산대 밖으로 나가 삶은 달걀 두 개가 들어있는 팩을 가지고 와 희주에게 내민다.


“이천 원이에요.”


지수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놀란 희주가 달걀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극큭큭.”


웃음을 참던 희주가 골목을 돌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한다.


'저 언니 재밌네.'


저 편의점… 왠지 앞으로 자주 올 것 같은 기분이 든 희주다.


*


난데없이 들이닥친 희주의 등장에 기분이 상한 지수가 때 이른 청소를 한다. 컵라면이며 떡볶이 국물이 묻은 빨간 스탠드 테이블을 물티슈로 힘을 줘 박박 닦는다.


딸랑


“반갑습니다. CS 24입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교 남학생 둘이 들어와 음료수 진열대로 간다. 지수가 하던 일을 멈추고 계산대로 간다. 한참 동안 음료수 냉장고 앞에 있는 두 학생이 의심쩍어 CCTV를 보니 한 학생이 망을 보는 사이 다른 한 학생이 가방 안에 무엇인가를 빠르게 집어넣는다. 두 학생이 계산대 앞으로 와 콜라 두 캔을 내민다. 지수가 학생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조용히 말을 꺼낸다.


“가방 안에 든 것도 꺼내서 계산하셔야 해요.”


학생의 얼굴이 붉어진다.


“무슨 말이에요?”


지수가 한숨을 쉰다.


“여기 CCTV로 다 보이거든요.”


순간 두 학생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가방을 들고 문 쪽으로 질주한다.


“저, 저, 야! 계산하고 가야지!”


카운터에서 나온 지수가 문밖까지 따라 나갔지만 두 학생은 이미 어두운 골목 안으로 사라져 버린 후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골목 안에서 정휘가 양손으로 두 학생의 귀를 잡은 채 편의점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아, 아, 아, 이것 좀 놓고 하세요. 따라갈 테니까요.”

"아저씨, 잘못했어요. 말로 하세요. 말로."


학생들을 끌고 오던 정휘는 편의점 문 앞에 서 있는 지수 앞에 와서야 두 학생의 귀를 놓아준다.


“니들 여기 편의점에서 왜 도망쳤어?”


두 학생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지수가 한 학생의 가방을 열어 그 안에 들어있는 소주 두 병을 꺼낸다. 정휘가 손을 들어 두 학생의 뒤통수를 한 대씩 때린다.


“아, 이 새끼들. 한다는 짓 좀 봐라.”


잠시 뒤, 정휘에게 잡힌 두 학생이 편의점 앞 골목을 청소한다. 파라솔 의자에 앉은 정휘의 시선이 따라다니니 요령도 피울 수 없다.


“그쪽에도 담배꽁초 하나 있네. 구석구석 잘 쓸라고.”


한 시간이 지나자 남학생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이제 그만, 이 정도면 됐으니까, 이리 와서 이거 마셔.”


청소가 끝난 학생에게 정휘가 바나나맛 우유 두 개를 내민다. 목이 마른 듯 두 학생이 바나나맛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맛있냐?”


정휘의 말에 두 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소주보다 더 맛있을 거야. 앞으로 술 마시고 싶으면 운동하고 우유나 마셔. 그게 제일 상쾌할 거다.”


그때 지나가던 경찰 순찰차가 편의점 앞에 멈춘다. 차에서 내린 민규가 정휘와 앞에 서 있는 두 학생을 번갈아 쳐다보고 무슨 일이냐고 지수에게 묻는다.


“안녕, 지수. 근데 이 학생들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지수가 학생들이 술을 훔치다 걸려서 그 벌로 여기 주변을 청소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으면 먼저 경찰에 신고해야지. 그럼 내가 먼저 CCTV 영상으로 증거를 확보하고 사건을 조사했을 텐데...”


민규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정휘를 본다. 민규의 시선을 느낀 정휘가 두 학생을 보고 말한다.


“너희들은 이만 가 봐.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고.”


민규가 정휘에게 항의한다.


“아니, 저 학생들을 그냥 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잘못했으면 정식으로 서에 가서 조사하고 벌을 받아야지요.”


정휘가 싸늘한 눈빛으로 민규를 본다.


“쟤들 벌, 받을 만큼 받았습니다. 가도 돼요.”


정휘가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돌아서 걸어가자 민규가 정휘의 등에 대고 다시 큰 소리를 낸다.


“그렇게 마음대로 할 거면, 그럼 경찰은 왜 있는 겁니까!”


민규의 말에 정휘가 가던 걸음을 우뚝 멈춘다. 몸을 뒤로 돌린 정휘가 다시 돌아와 민규 앞으로 온다. 당황한 민규가 뒷걸음을 친다. 정휘가 민규의 눈을 노려보며 목 메인 소리로 말한다.


“그러게요. 경찰이 왜 있을까요. 정작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할 때… 경찰은 어디 있었는데요. 그렇게 도와달라고 했을 때는 모른 척했었으면서…”


정휘가 흥분해 토해놓는 말에 놀란 민규가 당황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정휘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초점 없이 먼 곳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몸을 돌려 어두운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경찰 아저씨 도와주세요. 우리 아빠 죽어요.”


어린 정휘가 경찰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한다. 정휘 집에 온 중년의 경찰관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일단 서에 가서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아직 뭐 뚜렷한 물증도 없고…”


정휘 아빠는 보증을 잘못 서 친구의 빚을 대신 떠안게 되었다. 친구가 잠적하자 사채업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휘 아빠를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행패를 부렸다.


“아니 원금의 두 배도 넘게 돈을 갚았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사채업자들은 아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밀린 이자를 더 내놓으라며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빠를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 몰래 방으로 들어간 정휘가 경찰서로 전화를 한다. 경찰이 온다면, 경찰 아저씨가 온다면 이 모든 상황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집으로 온 경찰 아저씨는 어린 정휘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런 일은 민사소송으로 해결하셔야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네요. 그러기에 사채는 처음부터 쓰면 안 되는데… 쯧쯧.”


경찰은 정휘의 집을 한번 둘러보더니 폭행당한 물증도 딱히 없다는 말만 남긴 채 돌아갔다. 남은 건 사채업자들의 다시 시작된 폭행과 비웃음뿐이었다.


“요 꼬마 녀석이 경찰에 신고를 해?”


그리고는 경찰에 신고한 정휘를 끌고 나오려다, 말리려고 덤벼드는 아빠를 다시 폭행하기 시작했다. 경찰을 마지막 희망으로 여겼던 정휘는…, 무너졌다. 그날 정휘는 결심했다. 이제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겠다고.


*


철산동 유흥가 골목의 한 빌딩, 스마일 금융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아니 그래서 정휘 그 어린놈한테 그렇게 당하고 그냥 왔다는 거냐.”


스마일 금융 임경식 사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 앞에 서 있는 천식이 고개를 숙이며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형님도 잘 아시면서 그럽니까. 정휘 그 새끼가 나이는 어리지만, 한번 눈 돌아가면 보이는 게 없는 놈이라는 거…”

“아니 그렇다고 거기서 모양 빠지게 돌아오면, 한수 애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알겠어.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임 사장의 스마일 금융은 이 거리에서 끝도 모를 고율의 이자와 악질적인 행태로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기에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행복동에 있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정휘에게 막히고 있었다. 화가 난 임 사장이 옆의 유리잔을 들어 천식에게 던지려다 숨을 크게 한번 쉬고 다시 내려놓는다. 천식이 몸을 움찔하더니 실눈을 뜨고 임 사장의 눈치를 본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그리고 그 정휘라는 놈 없애버릴 해결책 가져오기 전에는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고.”


사장실 밖으로 나온 천식이 분을 참지 못하고, 밖에 앉아있는 부하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풀이한다.


“니들은 밥 처먹고 하는 일이 뭐야. 빨리 그 정휘라는 놈 없애버릴 약점 들고 오라니까.”


직원들의 천식의 눈치를 보다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버린다. 천식이 소파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구석 책상에 앉아있던 비쩍 마른 청년이 일어나 천식 쪽으로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해 ‘고졸’로 불리는 남자다. 주로 천식과 직원들이 수금해 온 돈을 관리하는 작업을 한다.


“고졸, 넌 또 왜?”


고졸이 천식의 눈치를 보며 누런 종이 하나를 내민다. 천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뭔데?”

“이게, 되게 오래전에 있었던 장부에서 나온 건데요. 거기에 아는 이름이 있는 거 같아서요.”


의아한 표정으로 고졸이 들고 있던 종이를 낚아채서 보던 천식이 늑대 같은 웃음을 띤다.


“여기 재미있는 게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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