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

인공눈물이 마른자리엔 6화

by 노리스 부인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은 참 이상한 음식이다.

맨밥에 참치만 넣어 김밥을 싼다면 아마 뻑뻑하고 비린 맛이 날 것이다. 또 맨밥에 마요네즈를 넣어 비벼 먹는 것도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다. 하지만 참치와 마요네즈 그리고 김과 밥이 만난다면 아주 특색 있는 맛을 내는 음식이 된다. 단맛과 짠맛이 어우러진 마요네즈의 상큼함이 참치와 만나 그 안에 숨어있는 새로운 맛을 끌어낸다. 통조림 안에 잠자고 있던 참치살이 마요네즈를 만나 바닷속을 헤엄치는 커다란 참치로 다시 태어난 듯한 맛이다.


늦은 밤, 정휘가 카운터에 기대 손에 든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을 보고 있다.


“난 이것도 다 폐기로 나온 건 줄 알았지.”


지수가 고개를 흔든다.


“내가 친구한테 폐기로 나온 거 주겠냐. 물론 폐기로 나온 거 먹어도 상관없지만, 점장님이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고. 하루에 만 원 정도는 여기서 먹고 싶은 거 그냥 먹어도 된다고 하셨어.”

“……”

“우리 점장님 좀 멋있지 않냐?”


정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삼각김밥 중간에 있는 빨간 비닐 끈을 조심스레 당긴다. 빨간 끈이 천천히 내려오며 김밥을 싸고 있던 투명한 비닐을 반으로 가른다. 다음으로 정휘가 반으로 갈라진 비닐을 양쪽에서 잡아당긴다. 한쪽 비닐은 잘 빼냈지만 다른 한쪽 비닐 안에는 아직 검은 김이 붙어있다. 정휘가 아쉬운 듯 탄식을 내뱉는다.


“삼각김밥을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 이걸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니까.”


지수가 삼각김밥을 들고 자기가 하는 것을 잘 보라는 눈빛을 보낸다. 먼저 빨간 끈을 천천히 내려 비닐을 반으로 가르고 김밥의 한쪽 끄트머리를 잡고 비닐을 잡아당기다가, 비닐이 반쯤 벗겨진 순간 김밥의 반대쪽 귀퉁이를 잡고 위로 들어 올리듯 비닐을 벗겨낸다. 그리고 나서 반대쪽 비닐도 같은 방법으로 깔끔하게 떼어낸다. 벗겨낸 비닐에는 조그마한 김 조각 하나 남아있지 않다. 정휘가 지수의 완벽한 기술을 보고 감탄한다.


“이런 건 어떻게 알았냐?”


지수가 어깨를 으쓱한다.


“편의점 매니저는 아무나 하는 줄 아니? 적어도 여기서 파는 물건의 특성 정도는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거라고!”


지수가 새삼스레 정휘의 얼굴을 바라본다. 확실히 얼마 전부터 정휘의 얼굴에 긴장이 풀린 표정이 나타나곤 한다. 처음 만난 날, 굳은 얼굴로 피를 흘리고 있던 정휘와 지금 옆에서 삼각김밥 비닐 벗기기에 관심을 보이는 정휘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사실 요즘 지수는 정휘가 오는 시간이 기다려지곤 한다. 처음에는 정휘와 동갑인 것을 알고 장난 삼아 친구로 지내자고 했지만, 어느새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오면 정휘가 오는 것을 기다리게 된 지수다. 그렇다고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정휘를 이성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엔 아무도 없는 새벽녘에 홀로 있을 때면 가끔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정휘를 안 뒤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혼자 있어 무서운 기분이 들더라도, 언제든지 저 어두운 골목 속에서 정휘가 불쑥 나타나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이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지수는 다시 새 삼각김밥 하나를 들고 가르쳐준 대로 비닐을 벗기는 정휘의 표정이 천진난만하다고 느낀다.


순간 정휘의 핸드폰이 울린다.


“응, 승환아, 내가 곧 갈게. 그래 얼마 안 걸린다.”


순식간에 긴장한 표정으로 바뀐 정휘가 먹던 김밥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간다. 정휘의 그림자가 짙은 어둠이 깔린 골목으로 사라진다. 지수는 정휘의 그림자를 삼킨 그 어두운 골목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


서울 경찰청 행복동 지구대, 김상욱 경위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파트너인 박민규 순경을 기다리고 있다.


“박 순경, 순찰 나가는데 뭐 그리 멋을 부려, 어디 선보러 나가는 것도 아닌데.”

“경위님, 잠깐만요, 머리 한 번만 더 보고요.”


민규가 모자를 벗어 머리를 쓸어 올리고 다시 단정하게 모자를 덮어쓴다.


“아니 아까랑 똑같은데,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야?”

“다르죠, 아까는 앞머리가 조금 보이게 모자를 썼고, 지금은 앞머리가 보이지 않게 썼거든요.”


민규는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체격, 환하게 웃을 때마다 보이는 흰 치아는 자기가 생각해도 정말 여심을 끄는 매력 포인트다. 민규는 정말 정말 마지막으로 거울 속의 모습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정문 쪽으로 몸을 돌린다.


“자, 가시죠. 순찰! 오늘도 행복동은 저 박 순경이 지키겠습니다.”


들뜬 모습으로 앞장서는 민규를 김 경위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따라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택 단지였던 행복동 일대에 유흥가가 들어서면서 우범지역과 순찰 구역이 꽤 많이 늘어났다. 김 경위와 민규가 순찰차를 타고 행복동 일대를 돌기 시작한다.


“박 순경, 별 이상 없는데? 아마 월요일이라 그런 거 같아. 이만 서로 복귀하지.”


운전대를 잡고 있던 민규가 머리를 긁적인다.


“김 경위님, 오늘 고생하셨는데, 제가 커피라도 한 잔 사겠습니다.”

“아냐, 서에 가면 커피 있는데, 뭐 하러 비싼 돈 주고 사 먹어. 그냥 가지.”


민규가 김 경위의 눈치를 본다.


“그래도 제가 커피를 맛있게 하는 데를 알고 있는데…”


민규의 표정을 본 김 경위가 웃음을 터트린다.


“혹시 그 커피 맛집이 안지수 씨가 있는 CS 24 편의점 아닌가?”


민규가 깜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한다.


“아니, 선배님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김 경위가 주먹으로 민규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한다.


“아니 그렇게 티를 내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 매일 순찰만 끝나면 거기 편의점에 가서 커피 마시는 척하면서 안지수 씨 훔쳐보는 거 모를 줄 알아?”


민규가 머리를 긁적인다.


“하하, 아셨어요?”

“아니 오죽하면 우리 지구대 사람들이 CS 24 편의점 안지수 씨, 이름까지 외울까!”


민규가 순찰차를 돌려 편의점 쪽으로 간다. 김 경위가 웃으며 놀리듯이 말한다.


“그렇게 좋으냐?”


민규가 씩 웃으며 말한다.


“아직 몇 마디 해본 적도 없는걸요. 근데 어두운 밤에 순찰하다가 지수 씨가 있는 환한 그 편의점에 가면 뭔가 마음에 안정이 느껴져요. 마치 어두운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가다 저 멀리 한 줄기 등대를 본 것처럼요. 아직 지수 씨를 잘 모르지만 참 밝은 사람 같아요. 마치 그 밝은 빛처럼 말이에요.”


민규가 순찰차를 편의점 앞에 세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편의점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에 코트를 입은 정휘가 문을 열고 나온다. 민규의 눈이 정휘와 마주친다. 민규를 잠시 바라본 정휘가 이내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다.


“김 경위님 저 사람 누구죠? 낯이 좀 익은데…”


김 경위가 정휘의 뒷모습을 보며 말한다.


“저기 골목에 있는 골드금융 장정휘 팀장인 거 같은데…”


민규가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기억나네요. 근데 저 사람, 뭐 문제 있는 건 아니죠?”


김 경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든다.


“뭐 아직까진 딱히 일을 저지르거나 하진 않았는데…, 알잖아 저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거, 일단 지켜봐야지.”


민규가 편의점 문을 열고 명랑한 소리로 인사를 한다.


“안녕 안녕 지수야, 이 지역의 안전을 책임지는 박민규 순경이 행복동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왔습니다.”


문 앞에 서 있던 지수가 민규를 보고 고개를 돌린다.


“아, 민규구나. 김 경위님도 오셨네요.”


민규가 지수의 표정을 보고 의아한 생각을 한다. 평소 같으면 카운터에 앉아 자신이 쏟아내는 말에 두 손을 들며 ‘네, 네, 박 순경님 오셨어요. 오늘도 따뜻한 아메리카노죠.’라고 외치던 지수였다. 하지만 오늘 지수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심각해 보인다. 지수가 카운터가 아닌 문 앞에 서서 짙은 어둠 속의 골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것도 평소와 다른 점이다.

지수가 원두커피 두 잔을 내린다. 평소와 달리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만드는 지수에게 민규가 다가가 말을 걸어본다.


“요즘은 술 취해서 행패 부리거나 그런 사람 없지?”


지수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민규가 방금 나간 남자를 떠올리며 다시 말을 걸어본다.


“방금 나간 손님 말이야.”


지수가 커피머신에서 내린 뜨거운 커피 두 잔을 민규에게 내민다.


“응, 왜?”

“여기 단골이야? 지수 네가 그 사람 나가는 걸 한참 동안 쳐다보길래.”


지수가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그냥… 친구야.”


지수의 뜻밖의 대답에 민규가 당황한다.


“방금 나간 사람이 지수 네 친구라고?”


지수가 밖을 내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친구지만… 서로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그런 친구야.”


지수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정휘의 그림자가 사라진 어두운 골목을 바라본다.


*


희주가 가게 밖 계단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전자담배를 빨고 있다.


“카악”


침을 뱉자 입 안에 고여 있던 피가 침과 함께 섞여 나온다.


“변태 같은 새끼.”


어둠 속, 발소리가 들리더니 정휘와 승환의 모습이 보인다. 정휘가 희주에게 다가간다.


“무슨 일인데?”


희주가 시퍼렇게 멍든 한쪽 눈을 정휘에게 내민다. 정휘의 얼굴이 굳어진다.


“몇 호 실이야?”


정휘가 ‘노래주점’이란 간판이 달린 지하로 내려간다. 정휘가 지하로 내려간 얼마 뒤, 정휘의 전화를 받은 승환이 희주를 데리고 룸으로 들어간다. 룸 안에는 옷을 풀어헤친 중년의 남자가 정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앞 소파에 앉은 정휘가 손짓으로 희주와 가게 마담을 부른다.


“사과해!”


중년 남자가 정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나 말고 저 아가씨한테 하라고!”


중년 남성이 무릎으로 기어 희주 앞에서 다시 고개를 숙인다.


“아가씨 내가 잘못했어요. 술이 너무 취해서…”


입을 앙다문 희주가 손을 들자 정휘가 희주의 팔을 잡는다.


“됐어, 때리지는 마. 문제 커지니까.”


희주가 이를 앙다물며 소리를 지른다.


“오빤 내가 이 새끼한테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기나 해!”


정휘가 턱 끝으로 남자에게 일어나란 신호를 한다.


“어떻게 할 거야?”


남자가 당황하며 뒷걸음친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아가씨 얼굴 봤어? 이 얼굴로 한동안 일 못 할 텐데,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그제야 정휘의 말을 알아들은 남자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남자가 나간 후, 마담이 남자에게 받은 돈의 절반을 정휘에게 준다. 희주의 멍든 얼굴을 떠올린 정휘가 받은 돈을 다시 마담에게 돌려준다.


“오늘은 됐으니까, 희주 다 줘요. 저 얼굴로 당분간 일 못 할 텐데. 그리고 앞으로 너무 취한 사람은 받지 말고요.”


새벽녘이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정휘가 코트 깃을 세우고 가게를 나선다. 가게 앞에서 기다리던 희주가 날 듯이 따라가 정휘의 팔을 붙잡는다.


“오빠, 같이 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5화아직 내겐 커피가 너무 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