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 평등론

by 마리폴네르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을 본다
거의 안 보이던 일부분이 보이던 사진을 찍은 사람이 정상인이었다면
그 사진은 사진을 찍은 사람이 보았던 장면 그대로 일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 정확하게는 그 사진은 내가 보았던 장면이 아닐 수도 있다
보이는 대로 의도는 했지만 내손 끝의 결정은 그와 맞지 않아서 찍힌 사진은 본 것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한 장면이 카메라에 담기고 그게 다시 인화지나 스크린에 보이면서 이제 내가 두 눈으로 보고 의도적으로 찍은 장면이었다고 포장돼버린다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은 분명 정상의 눈으로 찍지 않았다는 전제가 깔린다
그리고 이 전제는 정상의 눈을 가진 사진가가 받을 수 있는 우연히 또는 의도지 않게 찍혔을 것이라는 의심은 갖지 않게 된다

인간의 눈을 연구해 카메라가 개발되었고 볼 수 없는 이들에게 카메라는 사진이라는 잔인한 기록을 남기는 장치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개발품이다

시각장애인 주변에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고 있고 그 풍경을 보는 정상인들의 감탄사가 흘러나오는데 아쉽게도 시각장애인은 볼 수 없고 어떤 풍경인지 물어봐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카메라를 든 시각장애인은 그 감탄의 소리와 자신의 감각으로 주변에 묻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그 카메라에 담긴 풍경을 보여주고 자신이 보지 못했지만 봤다면 어떤 풍경이었는지를 묻는다
당연 시각장애인이 카메라가 있어도 사진을 얘기해 줄 정상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상인의 역할은 시각장애인의 눈을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그가 봤을 시선을 대신해주기게 역할도 틀리고 의미도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나를 주체로 그 사람보다 잘할 수 있거나 그런 재능을 기부할 때보다 도움을 받을 사람을 주체로 나의 재능이 사용될 때 서로 부담 없고 진정한 더불어라는 것이 이루어진다
나는 볼 수 있다 그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난 그의 눈이 되어준다 이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도움과 배려의 관점이고
그는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본다는 가정하에 셔터를 누르고 자기가 본 것을 볼 수 있는 나에게 물어보고 우리는 마침내 같이 보게 된다

한편 시각장애인이 다른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을 알아본다 여러 가지 방법과 이유를 갖겠지만
내가 정상인이 찍은 사진들 속에 누가 찍은 사진을 알아본다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실제 그 사진을 찍을 때 옆에 있었기도 하고, 찍은 사진을 바로 보여줬을 수도 있고 누군가 멋진 사진을 찍었다고 귀띔해 줬을 수 있다 남이 찍은 사진은 잘 보이는 나도 그 사람이 뭘 찍는지 정확히 볼 수 도 또 알 길도 없다
결국 셔터를 누르는 순간 모든 이가 인화된 사진으로 참으로 공평해진다는 얘기이다

사진은 볼 수 있기 때문에 찍는 것이 아니라 보이든 안보이든 남겨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찍고 그런 사진에는 시각장애인이나 정상인이나 상관없는 작품의 가치를 갖는다

음악을 듣는다 어떤 음악은 부르는 가수가 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음악만 좋다면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누군지 꼭 안 봐도 그리고 평생을 안 봐도 만족한다
스틸하트를 부른 밀젠코는 복면가왕에 자기의 얼굴을 알리고자 나왔다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스틸하트를 부른 가수를 봐서 좋기는 했지만 스틸하트 음악 자체가 달라질 건 없다
그리고 스틸하트를 좋아한 이유는 그 가수 때문이 아니라 음악자체였다는 것을 지금도 누구나 잘 안다

시각장애인의 사진이야 말로 진정한 오디오 가수의 음악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진짜 눈으로 봐서 찍은 사진이든 아니든 우리는 내 눈에 보이는 사진에 작가가 진심으로 그때를 담은 장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시각장애인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순회전인 'Sight Unseen: 보이지 않는 이들의 시각'의 작품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 그리고 찍힌 사람 모두 보지를 못하고 찍었을 것 같은 이 사진을 보면 흔히들 말하는 공평함이 느껴진다. 나는 상대던 풍경이던 늘 보고 찍지만 파사체는 늘 나를 보지 않는다, 그러면 찍는 나는 꼭 보면서 찍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우리는 거기서 잘 못 벗어난다. 하루는 밖에 나와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소리만 듣는다. 그동안 듣지 못하던 소리가 보인다. 하루는 해드폰을 끼고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장면이 들린다. 그렇게 세상은 공평하고 평등해진다.


이전 11화시간 관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