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無說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다.
성선설은 인간이 본래 선하다고 보고, 성악설은 인간이 본래 악하다고 본다.
이 두 관점은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선한 사람은 잘못을 해도 반성하며 윤리적 죄책감을 느낀다.
반면 악한 사람은 선한 행동을 해도 자신의 이익이나 위선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이런 구분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행동뿐 아니라 그 의도를 판단하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치는 인간은 이 두 범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또 하나의 유형이 존재한다
나는 이를 ‘무뇌의 인간’이라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무뇌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만의 논리, 철학, 가치 판단 기준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무뇌의 인간은 목적은 있지만, 그 목적을 뒷받침하는 사고 체계나 윤리적 성찰이 없다. 행동은 하지만, 그 행동의 의미를 스스로 분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할머니가 있고, 그 뒤에서 어린아이가 힘겹게 밀고 있다.
성선설 인간 : 바로 꼬마아이 옆을 돕는다고 생각해 붙어 뒤에서 밀다 아이가 넘어져 버립니다. 이런~
선의로 아이를 돕다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성악설 인간 : 할머니를 보고 인사를 하고 할머니와 함께 앞에서 끌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주 잘 보여집니다. 실제는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ㅜㅜ
할머니와 주변에 잘 보이기 위해 앞에서 돕는 척하지만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이미지 관리에 집중한다.
무뇌의 인간 : 할머니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고 아이한테 가더니 몇 살이냐고 하고 귀엽고 참 효자라 하고 지갈길 다시 갑니다.
도움도, 방해도, 성찰도 없다.
이 유형의 특징은 선악의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의도가 없으니 평가 기준도 없다.
그래서 책임감도, 죄책감도, 반성도 작동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는 가장 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계란 의도와 피드백, 공감과 조정을 통해 유지되는데, 무뇌의 인간은 이 구조 자체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뇌한 인간은 주변에 정말 생각보다 참 많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누구는 착한 사람이라 하고 누구는 정말 못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뇌한 인간 스스로는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 보고, 뇌가 없어서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책이나 책임감을 못 느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설득을 하고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상대는 끊임없이 이유를 찾는다.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실제 철학이나 논리도 없다 보니 주변에 상담을 하고 설명을 해도 악인으로 분류도 거의 안되고 오히려 내 문제라 한다.
그러나 애초에 논리와 철학이 없는 행동에는 설명할 수 있는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선악의 틀로 해석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마침내 자신을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의심하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심하면 우울증까지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무뇌의 인간을 만나면, 분석하지 말고 피하라.
그들은 악인도 선인도 아니라, 판단 불가능한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판단 불가능한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일방적인 소모로 끝난다.
인생에서 만날 사람은 많다.
모든 사람을 이해할 필요도,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