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될 수 있을까

by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이 너무 많아서 글을 못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나의 감정은 활화산처럼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고 있으며 너무 많은 글감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라서 허덕이고 있다. 글을 잘 쓰기 이전에 내 안에 쌓인 감정 하나하나를 분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구조조정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의 감정 파노라마(생업의 문제), 새로운 일(취미 및 자기 계발)을 시도하면서 발견한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무의식,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소개팅남의 질문), 언제나 어려운 인간관계라는 카테고리가 뒤섞여 버렸다. 특히 최근 2주 사이에.


구조조정이라는 부분은 아마도 이 시기가 지나가야 감정의 회오리가 멈추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에 쓰는 것은 좋아도 일기를 쓰는 건 여전히 어려웠는데 요새는 일기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 낙서 같은 메모가 더 쌓여나간다면 언젠가 정리해서 브런치에 옮겨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밤이 되니 더 선명해진 생각은 나의 무의식이다. 3년간 이런저런 취미와 자기 계발의 코스를 이수하면서 나는 과거보다 달라졌다고 자부하는 글을 썼던 나였다. 작은 성취에 스스로 만족하며 뿌듯해했다. 그런 내가 진짜 나의 속마음을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사실 내 마음을 점령했던 생각은 '이생망'. '이생망'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이번 생은 망했어. 난 뭘 해도 안돼'라는 문장으로 덮여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망설이는 마음을 두려움이나 내향적인 나로만 간단히 여겼었다.


최근 강연자 과정의 원서를 적었을 때에도 두려움은 컸다. '너무 부족한 내가 원서를 내도 될까'로 시작한 마음. 그럼에도 '일단은 저질러보자'라는 다른 마음으로 시도했다. 운 좋게 합격했다. 수업을 듣는 기쁜 마음 뒤에는 나의 허술한 존재가 드러나서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토요일 수업이 오기 전, 금요일 밤은 잠이 오지 않았고, 토요일 아침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평소 알람 소리도 잘 못 듣던 나였음에도 토요일 아침은 눈이 번쩍 떠졌다.


언제 창피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업 시간 내내 초긴장 상태였다. 3개월이 흐르고 그 과정이 끝나는 마지막 수업에서야 마음이 누그러지고 주변 사람들과도 편안하게 대화를 했다.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나는 사춘기 시절의 그때 그 모습처럼 심각하게 떨고 있었다.


과정 중에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면 '역시 나는 안돼, 난 왜 이렇게 무모할까, 왜 이렇게 일을 벌이고 다닐까, 이런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나?' 등등의 말들로 나를 원망했다. 나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3개월이 지나서 무사히 지나갔음을 환호했다. 그런데 돌아서고 보니, 뜻밖에 진짜 나의 모습, 밝은 빛 뒤에 진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는 말했다. '이번 생은 망했어, 뭘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그 나이 먹도록 한 게 뭐가 있어?'라며 차갑게 말했다.


몇 달 전 '커리어 패스'라는 글을 읽다가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질문에 거의 다 해당되는 나의 결과에 놀랐다. 난 대표적인 가면 증후군 환자였다. 단순히 내향성으로서 시작이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나의 텅 빈 모습이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는 겁쟁이였다.


조금만 힘들어지면 가면 속의 다른 얼굴이 찾아와서 말한다. 과거에도 난 못했고, 못했던 경험을 꺼내서 보여준다. 그리고 별로였던 감정 속에서 갈팡질팡하던 모습, 주변 사람들에게 휩쓸려 다니던 모습을 CCTV 화면처럼 또렷하게 비추어 준다.


난 전형적인 가면 증후군 환자였다. 이번 도전은 성공적이었다면 반대로 회사에서 나의 위치는 불안함 그 자체가 되었다. 감원이라는 파도 속에 놓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초조하고 우울해졌다. 그리고 다시 가면 속 다른 얼굴이 '넌 그동안 뭐했어? 그 나이 먹도록?'이라는 말들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스스로 병명을 찾았다는 것, 물론 영상 매체의 도움도 컸다. 나만 알고 있던 가면 속 내 얼굴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신드롬이었다는 것을 영상으로, 책으로 알았으니까.


그럼에도 발견한 나의 무모함, 가면 속 다른 내가 그만하라고 말렸음에도 한 번은 질러본 그런 작은 시도가 새로운 나를 조금씩 만들어가지 않을까? 이번 생은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얼마 전 읽었던 이어령 선생님의 글에서 정의한 '럭셔리'의 조건이 나였다. 선생님은 스토리가 많은 인생이 럭셔리라고 정의하셨다. 비록 빛나지는 않을지언정 스토리가 많아진 나는 분명 럭셔리한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물론 그 길이 외롭고, 독특하지만.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살아내고 있다.


나는 이번 생을 살아내자. 다음 생이나, 지난 생을 생각하지 말고, 눈앞의 오늘을 살아내야만 한다. 더하여 부디 내 옆에 있는 동기와 선배 그리고 내가 이 파도 속에서도 살아남기를 바란다. 종교는 없지만 오늘은 많은 신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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