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길

by 그럼에도

밤 열 두시쯤 잠들었는데 갑자기 눈이 떠졌다. 시간은 새벽 5시였다.


평소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는데 갑자기 새벽형 인간이 된 걸까?


밤 12시 반에 집주인의 문자가 와있었다. 큰돈이 오고 가는 거래인만큼 돈을 받으려면 은행 영업일이 평일에 만나야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뒤척이다가 기차표를 예매했다. 어제까지 하행선 표가 안 보였는데, 오늘 오전은 SRT 하행선은 몇 자리 남아있었다.


어제 이분 가량의 통화에서 변호사는 말했다. 과거에 집주인이 어땠는지는 상관하지 말고 일단 만나보고 해 달라는 대로 해주라고. 그럼 한 달 월세는 아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일단 짐은 빼고, 안되면 소송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남은 짐을 모조리 빼면 '대항력' 상실을 걱정하고, 그동안 집주인이 언행에서 느낀 불신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마음 같아서 몇 번이고 법정에서 싸우고 싶었다. 그간의 괴로움과 고통을 집주인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


현실은 꿀 같은 휴가를 '소송 접수'나 '집주인, 법률 관련 단체' 통화와 검색을 했고, 휴가가 끝나면 한동안 업무 폭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소송에 쏟을 시간도 에너지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행복회로를 돌려서 그런 조건을 다 들어주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의 거짓말과 폭언으로 집주인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또한 아무리 연세가 있는 분이라고는 하지만 집상태를 둘러보는 와중에 어떤 행동을 할지도 예측 불가였다.


만나기는 해야 하는데, 만날 자신이 없었다. 거기다 잠시 들릴 근처 부동산 역시 집주인과 한 팀이었다. 여긴 한국이지만 외국처럼 나에게는 어려운 동네였다.


부산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마침 연락이 닿지 않거나 다른 도시에 계셨다. 만날 시간은 앞으로 세 시간이 남았다. 당근마켓에 단기알바로 2시간 동행할 사람을 찾을까도 했지만 시간이 없었고, 뭔가 찜찜해서 아무도 지원할 것 같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찾았다.


그건 바로 심부름센터라고 하는 업체였다. 대부분의 탐정과 같은 역할이 주 업무라고 하는데, 이번처럼 집주인과의 만남에 '동행'도 가능했다. 물론 금액은 비쌌지만, 나는 안전을 돈으로 사기로 했다.


집주인의 예측 불가 행동이나 송금하겠다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 옆에서 있을 사람이 필요했다. 금액은 컸지만 소송을 하게 되면 '변호사 선임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오늘 나는 무사히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종교적 메시지가 인생 명언으로 보이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삶이 나에게 신 레몬을 주었지만 나는 무사히 레모네이드로 변신시키는 그런 지혜가 살아나길 바란다.


어제 나름 노력했던 서류는 취하하면 되니까.


너무나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이상한 세상. 지금 나는 부산행 기차에서 초조하게 앉아있다.


부디 보증금을 돌려받기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길 마음 깊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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