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환경 'M.E (Me & Environment)'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어린이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달랐다면 지금의 어린이들이 아닐 수도 있었다.
유럽 대륙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며칠 지나지 않은 날, 몇 년째 다니는 중인 동네 수영장에 갔다. 익숙한 향을 맡으며 편안하게 수영을 마치고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그때, 듣고 싶지 않은 대화가 귀에 꽂혔다. 외국에서 불어와 영어만 듣다가 오랜만에 만난 모국어여서인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엿들으려고 노력한 건 절대 아니었다. 모녀와 다른 어머님의 대화가 탈의실에 라디오처럼 울려버렸다. 기억하는 대화는 이러했다.
“ ⃝⃝이 수영을 정말 잘하네요.”
“아니에요, 못해요. 확실히 막내라.. (어쩌고 ••• 저쩌고 •••)”
대충 대화의 흐름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자기 자녀는 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며, 자기 주도적이지 못한 아이이고 수영도 못 한다며 어린이의 자존감을 타인 앞에서 깔아뭉개고 있었다. 엄마 곁에 있던 아이는 못 들은 채 한 건지, 옷을 갈아입는 것에 집중해 안 들렸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공기는 고요했다, 참으로.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로 청자가 된 나는 당황스러웠다. 감히 필자가 다른 모녀의 관계에 끼어들어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며 논할 수 없지만, 두 어머님의 대화에 대한 의견은 말할 수 있다. 어머니는 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었고, 완벽을 요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욕구를 딸에게서 당연시하게 채우려 하였다. 적어도 난 그렇게 보고 듣고, 느꼈다.
프랑스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계속 프랑스랑 한국에서의 삶을 비교를 하던 때이다. 몇 달 만에 방문한 동네 수영장 탈의실에서만큼은 비교할 수 있는 두 시야를 가진 스스로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프랑스에서 이러한 상황이 똑같이 발생했다면, 칭찬받은 어머님은 고마움을 표현하며 자녀의 노력을 더 칭찬해 주고 아이를 높이 세워주지 않았을까라고 쓸쓸히 입맛을 다시어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받은 칭찬에 대한 고마움을 기쁘게 표현했을 테다.
어른들이 기억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환경에 따라 '나'라는 인격체도 쉽지 않지만 조금씩 바뀌어 갈 수 있듯이 어린이도 우리가 만들어가는 환경에 따라 성장한다는 걸 말이다. 어린이는 스펀지처럼 주변의 영향을 더 잘 흡수하고, 반영한다는 것도. 또한, 어른이 된 우리는 경험이라는 재산을 지니고 있지만, 어린이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환경이 처음이자 기본 재산이 된다. 그래서 필자의 바람은 지금도, 훗날도 어린이 앞에선 좀 더 건강하고, 밝고, 순수한 인격체로 받아들여지는 어른으로 비치는 것이다.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채 넓은 자연을 가까이하며 성장할 수 있기를. 곁에는 그늘이 되어주어 쉼을 선물해 주는 든든한 나무와 같은 건강한 어른들이 존재하기를.
이탈리아에서는 양육자가 피양육자를 이렇게 부른다.
미아 스텔라 Mia Stella, 우리말로 하면 나의 별!
미오 아모레 Mio Amore, 나의 사랑!
미아 조이아 Mia Gioia, 나의 기쁨!
미아 테조로 Mio Tesòro, 나의 보물
[장명숙,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밀라논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