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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14. 2024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나

나와 환경 'M.E (Me & Environment)'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나

나를 둘러싼 환경이 달랐다면 지금의 내가 아닐 수도 있었다. 붓을 자발적으로 손에 쥐고, 물감을 풀어 흰 종이 위에 색을 입히던 '아비뇽(Avignon)'에서의 나처럼. 성격, 생각, 취향 등 각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요소들은 살고 있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주변의 사람들은 누구인지, 주변의 환경은 어떤지에 따라서 말이다. 즉, 무엇 하나 바뀌었다면 현재와 정반대인 사람이 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 잦았던 한겨울을 프랑스 북부 '안시(Annecy)'에서 보내던 때가 있었다. 하루는 복잡한 영혼과 지친 몸을 남부로 내려오는 기차에 실었다. 남부 도시 ‘아비뇽'에 도착한 저녁, 골목 곳곳에 감각적인 아뜰리에 구경으로 여행을 열었다.  구경 중, 작은 상점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인 엽서 진열대에 눈길이 갔다. 첫날부터 마음에 드는 엽서를 발견하였고, 엽서가 이끄는 실내로 발을 들였다. 밖에서 보기엔 매우 아담해 보였던 내부가 알고 보니 깊숙하고 널찍한 공간으로 구성된 미술학원이었다. 마치 동굴 같았던 공간에서 프랑스 학생들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선생님께 이상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경기도의 한 작은 지역의 평범한 직장인인 본래의 필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혹시, 저도 미술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프랑스 선생님의 포용적인 마음 덕분에, 곳곳에 예술가들의 깊은 고민과 정성이 묻어진 아비뇽에서 첫 예술 수업을 접하였다. 10년이 넘게 교육의 열기가 샘솟는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받았음에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술이 예술 행위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미술을 자발적으로 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술을 안 좋아하는 학생이 아니라,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줄곧 다닌 학교에서는 미술사를 암기하고, 유명한 작품 또는 원과 투시도 등을 정확하게 그려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했다. 미술교과는 학교급별로 난이도만 달라졌을 뿐 수업과 평가 방식은 비슷하기만 하였다. 내게 미술이란 그저 정답을 맞혀야 하는 시험공부의 일환이었다. 시험에 대한 압박감은 자유롭게 색을 만나고, 칠해보고, 상상을 작품으로 펼쳐보는 행복한 예술 행위를 없앴다. 그렇게 수년동안 미술과 나는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해오며 마음의 문을 닫고 아름다운 색 없이 지내왔다. 다행히도 지금의 삶은 알록달록해졌다. 이는 아비뇽의 작은 미술 학원에서 깨달았다. 그날 그 순간의 환경은 아래와 같았다. 


-자유로운 선택 (도안, 색상 등)

-타인의 평가 없음

-서로 주변에 불필요한 시선을 주지도, 의식하지도 않음

-칭찬과 격려 등 긍정적인 분위기


위 4가지의 환경은 두 시간 동안 다채로운 물감, 여백이 색으로 채워지고 있는 종이, 움직이는 팔에만 집중하게끔 도와주었다. 그리고 어떠한 기준과 편견 없이 서로의 소중한 그림을 바라봐주는 현지인들과 공간의 따뜻한 분위기는 능동적으로 손재주를 기르도록 이끌어주었다. 덕분에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안시’의 겨울을 표현하는 필자만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밖에서 진열된 엽서가 나의 시선을 유혹했던 이유였을까. 


학생일 땐 미처 몰랐다. 본인에게도 어린 예술가의 모습이 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건축 및 디자인 양식, 장신구 등 아기자기한 소품을 보고 느끼며 점차 어린 예술가가 깨어나, 마음이 열려있다. 무엇보다도 예술가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어 기쁘다. 열린 마음에 소중한 나만의 작품을 꼭 안고 숙소로 돌아가던 캄캄한 밤, 온몸에 작은 빛들이 하나둘 켜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 뇌, 팔, 손가락 등 여기저기서 환한 빛이 켜지며 잠재웠던 꿈들이 신이 나서 깨어나는 듯하였다. 불이 켜지며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의 영감과 꿈이 무언가에 의해 잠재워지지 않는 땅에서 살아왔다면, 오히려 잠에 들지 못하도록 오감 구석구석을 일깨워주는 땅에서 살았다면 나의 어린 예술가는 어떻게 성장하였을까?'라고. 답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야 열린 어린 예술가는 10년도 한참 전에 열려 좀 더 빠르게 알아차렸을 테고,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고 순수하게 바라보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었을 거라고. 더불어, 방 한 구석에 흰 캔버스와 물감이 언제나 필자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이처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던 거라면 다음 생엔 어린 예술가가 일찍 깨어나 어른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땅을 선택하고 싶다. 이 글을 읽은 독자는 자신을 구성하는 환경 중 무엇을 바꿔보고 싶은가.


2024.02  In Avignon



2024.02  In Avig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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