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환경 'M.E (Me & Environment)'
안전한 나라에 사는 복
낯선 나라를 탐험할 때마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도착했을 때 맡는 공기와 공기를 통해 사로잡히는 분위기이다. 첫 발을 디디는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공항 밖에서, 차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하거나 국경을 넘는 순간에서 우리는 그곳에서 풍겨오는 정취를 맡는다. 이는 새로운 나라, 도시에 대한 첫인상으로 이어지기까지도 한다. 첫인상으로 무엇을 단정 짓는 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때로는 첫인상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긍정적인 성격이 타고난 필자는 여행할 때면 더더욱 나라를, 도시를, 사람을 호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첫인상부터 거칠다고 느껴질 때는 더욱 온몸에 경계 태세를 지닌다. 여행이라고 해서 언제나 맑고, 화사하고, 활기찬 풍경만 펼쳐지진 않는다. 나의 여행에선 대게 마음속엔 좋은 기억이 스며들어있지만, 머릿속엔 충격적으로 각인된 어두운 흔적도 있다. 물론, 사전 정보를 꼼꼼하게 챙기지 않고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라는 이유로 여행지를 결정해 버리는 필자의 무모함이 한몫했을 테지만 말이다.
하루는 유명한 벨기에 수도 'brugge(브뤼셀)' 기차역에 발을 디뎠다. 해가 맑게 뜬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줄지어있는 시끄러운 노숙자들과 정돈되지 않은 기차역에 바짝 긴장하며 도심으로 발길을 재빠르게 돌렸다. 관광명소로 유명한 오줌 싸는 동상이 두 눈에 보이고 나서야 불안한 마음을 한시름 놓았다. 다른 날엔 많이 기대했던 '포르투갈 리스본'에 첫 발자국을 찍었다. 넓고 쾌적한 공항과 달리,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과 용산역쯤 되는 'Oriente(오리엔트)'역의 지하통로는 퀴퀴한 냄새와 다른 세계에 들어온 착각을 하게 만든다. 사방에 둘러싼 노숙자 행렬에 애써 시야를 앞만 응시하려고 해도, 양옆의 시야를 뚫고 들어오는 어두움 때문에 한순간에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기 쉽다.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를 끌며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결국은 후다닥 출구를 찾아 밖으로 탈출했고, 화장실도 못 가고, 우회하여 급하게 버스를 탔던 아픈 추억도 있다. 이처럼 꽤 알려진 여행지조차도 치안이 불안정한데, 기존에 치안이 안 좋기로 소문난 곳은 오죽하였을까. 발칸 반도를 장기여행 중이던 때, 육로 이동을 위해서 꼭 들를 수밖에 없던 '알바니아'에 잠시 머물렀다. 소문이 안 좋았던 곳이라 조심하며 다니려 했지만, 한밤중에 배가 고픈 건 못 참고 결국 버거킹을 찾아갔다. 프랜차이즈 기업이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며 합리화하며. 그러나, 버거킹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한 도로 위 구걸 중인 어린이, 햄버거를 먹는 중 갑자기 옆에 등장해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아이의 모습은 피할 수 없었다. 이처럼 다양한 나라, 도시에서 어두운 상황을 반복해서 만나다 보니 어느 때는 밤낮 구분 없이 술과 마약에 취한 사람을 보는 게 낯설지 않아지기까지했다. 마약에 취해 급하게 119로 실려가는 사람을 목격했을 땐 제외하고 말이다.
여행을 다닐수록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 나라, 지역, 동네에서 맡는 공기의 향을 인지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불쾌하고 겁이 나는 공기 속에서 숨쉬는 거 같다면, 본인의 감각을 따라서 그곳에선 오래 머물지 않는 결단도 필요하다. 여행의 초심자 시절 때는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안전한 환경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곳의 치안과 마을 사람들의 성격, 분위기 등이 안전하고 친절하고 정이 있는 상태일수록 마음 편히 여행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반대로, 찾아간 곳의 환경이 거칠고, 낯설고, 어지럽다면 아무리 조심한다고 노력해도 노력으로 되지 않는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자신의 직감을 믿고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 다른 도시로 얼른 옮겨가자. 또, 필자처럼 무모한 여행지 선정도 웬만하면 굳이 하지 않길.
이처럼,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는 공공장소에서 불안을 느끼고, 하루빨리 빠져가고 싶은 곳을 만날 때면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 영웅의 나라처럼 떠오른다. 그동안 ‘대한민국’이라는 땅이 참으로 안전한 곳이었다는 것을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마저 생겨난다. 아직은 말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구걸하며 다니는 어린이, 마약에 취해 밤낮 구분 없이 시끄러운 길거리, 총기 난사 등의 모습은 흔히 발견할 수 없다. 있어도, 대단하신 경찰들이 빠르게 해결해주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무차별적인 길거리 칼부림, 허위 사실 및 불법 사진 유포, 성범죄, 무책임한 운전자들의 교통사고로 인해 치안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안전한 나라에 태어나고 자란 복을 잃은 후, '안전했었지.'하며 잃어버린 복을 잊지 않기 위해 아쉬운 입맛만 다시고 싶지 않다. 부디 우리나라도, 전세계적으로도 살기에 안전한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