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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28. 2024

당신의 레푸기움은?  저는 '헝가리'입니다.

나와 환경 'M.E (Me+Environment)'

당신의 레푸기움은? 저는 '헝가리'입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책에서 류시화 작가는

'라틴어에서 레푸기움은 피난처, 휴식처의 의미이다. 원래 레푸기움은 빙하기 등 여러 생물종이 멸종하는 환경에서 동식물이 살아남는 장소를 말한다. 빙하기 때 살아남은 생물들처럼 자신의 존재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레푸기움인 것이다. •••• 내가 피상적으로 존재하거나 이방인처럼 느껴지지 않는 곳, 그래서 무슨 의식을 행하듯 종종 찾아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자신의 레푸기움을 발견한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나에겐 언제나 기대고 싶은 레푸기움이 두 군데 있다. 그중에 한 곳이 글의 제목에 언급하였듯이, 최소 열 시간 이상은 비행하고 가야 마주할 수 있는 동유럽의 '헝가리'이다. 3년 전, 헝가리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단순히 근교 '오스트리아'를 여행하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종종 가고 싶은 나라가 생기면 구글 지도에 저장부터 해둔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여행 계획을 세우기 전까지 저장조차도 되어 있지 않던 나라였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시 머물다 가려했다. 하지만, 한 번 발을 들인 부다페스트에서 뜻밖의 애정이 가는 장소들을 발견했고, 순수하고 사려 깊은 현지인들과의 재미있는 만남도 이어졌다. 이를 통해, 헝가리와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깊은 정이 들었다. 결국 오스트리아를 가기 전 날, 기차표를 취소했고 헝가리에 더 머물렀던 것이 헝가리와 나의 첫 인연이 남겨준 결과였다.


오래 지내온 동네여도 마음은 불편할 수 있는데 성인이 되어 늦게 찾은 이곳, 헝가리는 왜인지 모르게 필자가 이방인처럼 느껴지지 않고, 누군가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틈을 내어 찾아가게 된다.  이곳이 바로 나의 레푸기움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셀 수 없이 꾸준히 만나는 부다페스트에서의 시간은 매번 한아 하다. 제법 추억들이 많이 쌓인 덕분에, 좋아하는 장소, 음식, 사람들 등 나의 일상생활이 구석구석에 묻어져 있다. 에너지 충전소가 곳곳에 있는 셈이다. 덕분에 부다페스트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날 기분에 따라 좋아하는 장소를 하나 고르는 재미가 있다. 이제는 흘러넘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버거울 정도라, 혼자여도 심심할 틈이 없다. 나의 레푸기움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좋아하는 장소 리스트를 아래에 조금 정리해 보았다. 이 글을 읽은 독자가 우연히 헝가리로 발을 디디게 됐다면, 끌리는 곳이 있다면, 한 번 방문해 보길 추천하는 마음으로. 혹시 모르지 않을까, 나의 레푸기움이 독자들의 레푸기움이 될 수도.


1. Margit sziget

'머리깃섬' 또는 '머르깃 공원'이라고 부른다. 첫 만남 땐, 발목을 다쳐서 아쉽게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다음엔 원 없이 뛰어보자고 약속을 기약하고 떠났던 추억의 공간이다. 약속은 2년 뒤 이루어졌고, 뛰기보단 원 없이 걸었던 애정의 공원이다. 이곳에선 에너지를 내려두기도, 쌓아오기도 한다.


Margit sziget

2. Duna arena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수영장이다. 부다페스트에 있을 때면, 매일의 하루를 여는 첫 단추의 공간이다. 부다페스트의 삶 중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던 수영장, 덧붙일 말이 없다.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Duna arena

3. Nyugati 기차역 근처 LIDL, 국회의사당 근처 SPAR

친구 집 놀러 가듯 편하게 드나들던 마트이다. 거북이보다도 느린 듯한 계산 시스템은 아직도 답답하지만, 그곳의 직원들, 긴 줄에 오래 서 있는 현지인을 구경하던 순간이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일상의 공간이다.

In the market


4. 15번 버스와 4, 6번 트램 정류장들

자주 타던 하늘색 버스와 노란 트램 번호이다. 아래는 수없이 들었던 정류장 이름이다.

아침마다 걸음을 재촉하며 허겁지겁 향하는 'Marko utac'

Duna Arena 바로 앞에서 자리 잡고 있는 'Dagaly utac'

듣기만 해도 편안한 'Margit sziget'

안 들어도 이미 외워버린, 정확히 따라 할 수 있는' Nyugati palyaudvar'

"어꾸베께주 메갈로 뉴가띠파이오우드버 메트로알로마쉬, 비갈로마쉬

(이번 역은 뉴가티역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On the road

5. Buzakovasz kezmuves pekseg

한 동네의 숨겨진 빵집이다. 수영을 끝내고, 밖에서 더 머물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 찾아가서 카푸치노와 카카오 달팽이 모양의 빵을 먹고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커다란 통밀빵 'rozso'를 사 들고 빵냄새와 함께 두 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갔다.


Buzakovasz kezmuves pekseg

6. Massolit book cafe

머릿속을 헤집는 생각들을 비우고 싶을 때면 찾아가는 북카페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쌀쌀하던 3월에 첫 방문을 했을 때, 느꼈던 아늑한 분위기를 한여름에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Massolit book cafe

7. Lehel market 안에 있는 쌀국숫집

시장 안 쌀국숫집이다. 추운 겨울에 맛본 뜨끈한 쌀국수와 현지 분위기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그 순간이 그리울 때면 혼자 가서 쌀국수 한 그릇 거하게 먹고 온다. 폭염인 뜨거운 여름에도 쌀국수가 먹고 싶으면 이곳에 찾아간다. 기어코. (선풍기만 있다. 진정한 이열치열을 경험할 수 있다.)


Lehel market 안에 있는 쌀국숫집

8. Life 1 뉴가티역지점

부다페스트에 오래 머무는 운동인이라면 추천하는 헬스장이다. 지점이 여러 개라 선택해서 다니면 된다. 필자의 이런저런 추억이 담긴 곳이다.


Life 1

9. Szentendre

'센텐드레', 부다페스트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자의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찾아가는 마을이다. 고유한 아기자기함을 가지고 있는 부다 근교의 귀여운 마을이다. 돌아오는 길에 젤라토 두 스쿱은 덤.


Szentendre


10.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그녀의 집

홍길동처럼 이곳저곳 수많은 집을 드나들며 깨달았다. 부다에서 그녀의 집만큼이나 자유롭고, 편안하고, 따뜻하고, 시원하고, 행복한 공간이 없다는 걸. S의 집은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고, 이방인처럼 느껴지지 않게끔 이곳에 잘 녹아들게끔 해주었다.


Cozy home


온전한 욕심인 걸 잘 알면서도, 위 장소들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떠날 때면 속으로 바란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모든 공간이 한결같이 기다려 주고 있었으면 좋겠다.' 매번 욕심을 품고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날 부르는 레푸기움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당신의 레푸기움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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