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미 Sep 29. 2024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이유

호기심과 도전 (Curious & Challenge)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이유

'여행'이라는 단어가 삶으로 스며든 후로부터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생겼다. ‘정말 용감하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이 대단해.’, ‘겁이 없다.’, ‘안 무서워?’ 등. 흔히 들었던 이 말들을 막상 글로 풀어보니 엄청난 걸 이뤄낸 사람처럼 비친다. 하지만 나는 그저 여행을 잘 즐길 줄 아는 평범한 여행자일 뿐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선 홀로 여러 대륙을 사방팔방 다니는 모습, 특히 물을 좋아하는 성향 덕분에 바다를 쫓아다니는 반인어의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듯하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 중 하나가 빠져있는 게 있다.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다. 사실, 나는 해보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선 두려움과 겁을 느끼는 사람이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들과 똑같이 불확실함 앞에서 겁을 느낀다.


혼자 배낭을 짊어지고 5개월 간의 장기 여행을 계획하고 떠날 때,

국경을 넘어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할 때,

낯선 도시에서 그곳만의 대중교통과 문화에 익숙해져야 할 때,

심지어 마트에서 장을 봐야 할 때,

처음으로 바다에 뛰어들 때,

그리고 하늘에서 땅으로 뛰어내릴 때,

외국인들과 프리토킹을 해야 할 때조차도.

즉, 여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크기만 다를 뿐 마음속엔 두려움이 상시 대기 중이다.


그럼에도, 내면의 겁을 이겨내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큰 이유는 ‘호기심’이다. 호기심이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뜻한다. 필자는 현재까지의 삶에선 두려움이 호기심에 지는 편이었다. 호기심이 이겨준 덕분에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여행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수 있듯이, 여행을 떠나면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뜻밖의 발생하는 변수들은 더더욱 길 위에서 멍하니 있어야 하는 순간들을 불어나게 한다. 다행히도, 나는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방에 보이는 신기한 표지판, 길거리에 우뚝 서 있는 나무와 싱그러운 꽃, 지나다니는 다양한 인종과 들려오는 외국어에 모든 감각이 살아남을 느낀다. 낯선 향은 호기심이 움직이도록 시동 걸어준다. 길 위를 달리다 보면 두려움과 겁이 주춤해지고, 어느새 새로운 환경에 푹 빠져있는 본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하루는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고 있었다. 남부 지역은 지역 내 이동보다, 지역 간 이동이 잦은 탓에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이동이 보편적이고, 그래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가 있었다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만 검색하고 직진하면 된다. 그러나 뚜벅이 여행자는 현지인 또는 관광안내소를 먼저 찾아가 목적지로 가는 길을 우회해야 한다. 그곳의 버스 운영 시스템을 재빨리 파악하는 눈치를 장착한 후, 버스 시간표를 받아야 한다. 핸드폰 어플의 힘으로 기댈 수 없는 프랑스 남부 및 작은 도시들은 아직도 버스 노선, 시간표가 나와 있는 종이 시간표에 기대고 있다. 한국의 빠른 안내에 익숙해진 한국인은 종이 시간표를 받을 때마다 한없이 낯설다. 외국어로 어지럽게 쓰여 있는 시간표를 해석하기도 버거운 판에, 버스 내부에선 정류장 이름을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혹여나 정류장을 놓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수시로 버스 시간과 목적지가 적힌 종이를 접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정차할 때마다 보이는 정류장 표지판을 보고, 현재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며 예상 도착 시간을 계산하는 것 또한.


가만히 앉아 있지만 눈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야만 하는 버스 안에서, 버스를 감싸는 유리 창문을 통해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와, 이곳에 사람이 산다고?’, ‘여기에 버스 정류장이 있네’, ‘숨겨진 자전거 도로가 있네’, ‘이곳에서 사람이 많이 내리는 거 보니 유명한 곳이구나.’ 등. 현지의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길 위, 특히 버스 안에서 순간들을 좋아한다. 이처럼 낯선 타국을 즐기기 위해서는 긴장감, 두려움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성가신 과정으로 여길 수 있고, 어떤 이는 모든 과정이 도전과 성취감, 재미로 느껴질 수 있다. 필자는 후자에 속하여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을 일로 생각하거나 버리는 시간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까지 여행을 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다.


오늘도 나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길 위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버리며 뚜벅뚜벅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종이 시간표로 운영되는 버스 시스템
길 위에서


이전 21화 당신의 레푸기움은?  저는 '헝가리'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