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환경 'M.E (Me & Environment)'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던 우리 할머니
사랑하는 친할머니를 둘러싼 환경이 달랐다면 지금의 우리 할머니 모습이 아닐 수도 있었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애정하는 섬 '남해'를 세 번째 방문하였다. 경기도 북부에서부터 경상남도로 내려가 남해대교를 건너 보물섬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 그럼에도, 남해는 긴 여정을 극복해 내서라도 또 오게끔 만드는 확실한 매력이 곳곳에 묻어져 있다. 대체로 고령인구가 많이 밀집된 남해에서는 읍을 벗어나면 어린이들을 만나기 어렵다. 세 번째 만나는 남해이지만, 뜨거운 여름의 남해는 처음이었다. '이 날씨에 어르신들은 다들 어디 가셨을까?' 아름다운 바다가 사방에 둘러싸여 있는데 넓디넓은 해변에서 어르신들을 보기 어려웠다. 에어컨 바람 아래 시원하게 쉴 수 있는 카페에서조차도. 대신에, 작은 마을 안을 차 타고 지날 때면 집 앞 계단 혹은 마을 입구의 정자에서 쉼을 누리고 계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계절 내내 즐길 거리가 풍부한 아름다운 남해에서 한적한 집 안 바닥에 멍하니 앉아 계시거나 누워계실 한국 어르신의 모습이 그려지며,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나라도 여름이 찾아오면 수영복을 입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파라솔을 들고 해변으로 나와 햇볕을 즐기거나,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서 차 한 잔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재미를 안다면 좋을 텐데' 무엇 하나 막히지 않은 남해의 광활한 바다를 보며, 막혀있는 한국 어르신들의 문화에 대한 아쉬운 입맛을 연신 다시었다.
그 찰나, 문득 재미있는 상상 하나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만약 '남해'라는 섬이 지중해 또는 발칸 해, 대서양 속에 살짝 끼어져 있었더라면,
눈앞에 있는 남해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있을까?
알록달록한 비키니를 입고, 파라솔 아래에서 태닝을 즐기는
햇볕에 그을려 달궈진 몸을 물속에 과감히 풍덩 맡기곤 헤엄치는
연령별 장벽을 찾아볼 수 없는 해변에서 맥주 한 잔 홀짝, 책 한 권 뚝딱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친구들과 해변가에서 커피 또는 술을 마시며 바다가 주는 여유로움에 스며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때마침, 9월 15일에 방영된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 5회에서 기안 84는 텍사스 바에서 춤을 추시는 77세 할머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 어른들도 노인정 가지 말고,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걸 만들어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는 게 아니었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있다."라는 깨우침을 속 시원하게 말하였다. 늘 혼잣말로 답답하게 중얼거린 말을 유명인이 방송에서 소리 내어주니 속이 개운해졌다. 동시에 하루빨리 '노 시니어존'이 불거지는 것이 아니라, 기안 84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남으로써 나이 든 덕분에 더 즐겁게 세상을 만끽하는 어르신들의 열린 문화가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부풀어졌다.
만약, 사랑하는 우리 친할머니도 텍사스 바에서 춤추던 77세 할머님과 어울릴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유럽의 한 해안가에서 자라셨다면 어땠을까라고 감히 할머니의 숙명을 바꿔보는 상상도 해본다. 우리 할머니는 유년 시절부터 유복하지 않던 농촌에서의 삶으로 논밭에서 평생 농사일을 하셔야 했다. 이 탓에, 무릎과 허리는 펴질 틈이 없었고, 결국 무릎은 인공 관절로 바뀌어 양쪽 무릎에 큰 흉터가 나란히 남아있다. 할머님은 한 번도 수영복을 입어보지 못한 채, 곧 팔순을 바라보고 계신다. 평상시에도 살색 피부가 혹여나 많이 보이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할머니에게 비키니는 너무 큰 바람이다. 할머니는 평생 가볍고 온전한 휴식을 즐겨본 적 없이 살아오셨고, 남은 생도 크게 다르지 않은 여생을 보낼 예정이시다. 한국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할머니의 숙명은 그러하다.
공백 작가는 [휴식의 말들]에서 '왜 그들의 휴식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어야 하는가. 그 알 수 없는 경계선 속에서 정말로 민망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말하였다.
나는 휴식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서, '시선과 의식'을 꼽는다. 우리는 타인에게 시선을 줄 때도 있고, 받기도 한다. 시선은 눈동자가 무의식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의지대로 통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식은 선택할 수 있다. 의식은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사물이나 일에 대한 개인적 또는 집단적 감정이나 견해나 사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회에선 의식을 손쉽게 형성하고, 타인에게 서슴없이 전달하고, 한 번 만들어진 의식을 의심 없이 믿으며 심지어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알 수 없는 의식의 시작점을 믿고 우르르 따라가는 사회 속에서 머물러 있어도 되는 걸까. 시선과 의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진정한 휴식이 이루어질 텐데. 먼 훗날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어떠한 시선도 의식도 느껴지지 않는 해변가에서 가벼운 수영복 차림으로 바다가 선사하는 매력을 누리는 문화가 형성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