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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9. 2024

'물'로 엮인 사이

영원히, 물 (Forever & Water)

'물'로 엮인 사이

포르투갈 '베나길 동굴'로 향하기 전날, 우리 넷은 처음 만났다. 겉보기에 공통점 하나 없던 우리는 '물'로 엮였고, '물속'에서 서로에게 흡수되었다. 물가에서 만난 우리는 물살을 따라 스몰토크와 웃음을 흘렸고, 파도와 놀며 헤엄치는 수영 버디가 되었다.


포르투갈 남부의 '베나길 동굴 투어'는 한국 사람은 물론이며 전 세계에서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이곳은 아치형의 동굴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누군가 동굴 꼭대기에 구멍을 뻥 뚫어놓은 듯한 동굴로 입소문을 탔다. 하늘이 배경인 구멍 사이로 내려오는 빛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나 또한 그 빛에 유혹당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꼭 들려보고자 했다. 가능하다면 누군가와 함께. 이곳만큼은. 왜인지, 외국 친구들을 사귀어 여행하면 재미가 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때마침 물과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에서 마음이 맞는 외국 친구들을 만났다. 초면이던 우리는 국적도, 쓰는 언어도 달랐지만 '물'을 따라 포르투갈 남부까지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넷은 물을 통해 엮였고, 온종일 물과 가까이하는 날을 보내며 서로에게 은은히 흡수되었다.


사진만큼 아름다웠던 베나길 동굴은 그만의 매력이 있었지만, 붐비는 관광객과 좁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부딪히는 카약들, 다소 위험하게 지나가던 보트를 피하느라 체력 소모가 컸다. 그래서였을까. 모두에게 베나길이 가장 기대되는 장소였음에도, 베나길 근교의 한 프라이빗한 해변가를 더 마음에 담았던 것이. 넷은 이곳에 오자마자 동시에 푹 빠져들어 몸을 재빨리 움직였다. 물이 이끄는 곳으로. 햇빛에 바랜 듯한 연한 갈색의 돌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갈 때마다, 선명해지는 바다의 모습에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둥글게 바다를 감싸고 있는 듯한 절벽 아래, 흘러들어오는 바닷물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감탄을 그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껏 수없이 뛰어든 지중해, 홍해, 아드리아해 등 다양한 바다를 누비었음에도, 바다는 한결같이 설렘을 안겨주었다. 그날의 바다도 빼놓을 수 없고말고. 지금까지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포르투갈에서 본 바다의 색깔은 진하고 어두운 청색에 가까웠다. 하지만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인 4시 이후에 도착한 만큼 ‘Praia de Albandeira’ 해변은 푸르른 지중해의 모습을 연상시켜 주었다. 진한 청색물에 하얀색이 섞여 풀어진 듯, 연해진 푸르스름한 바닷물이 나의 두 발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파스텔 색상의 바다, 아치형 절벽의 품에서 느껴지는 포근함, 해가 서서히 내려오며 느껴지는 따뜻함, 뚜렷해지는 물살의 흐름, 끊임없이 일렁거리는 윤슬. 그리고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나와 세 명의 친구까지. 그날의 모든 순간은 찬란했던 이번 여름휴가를 장식하는 하이라이트였다.


해변에 비치타월을 넓게 펼쳐두고, 몸이 가벼워진 우리는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Let's go"를 외치며 물속으로 물장구를 내며 달려들었다. 연한 하늘색에서 진한 청색을 향해 유영하던 우리 중 S는 흥미로운 제안을 건넸다. 해변으로 내려오는 길에 발견했던 반대편 아치형의 절벽까지 수영해 보자는 것이다. 넷은 호기롭게 아치형을 향해 수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도가 점점 더 넘실거리는 동시에 체력이 고갈되는 신호를 감지한 나는 그들을 먼저 보내고 해변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꽤 거리가 멀었는지, 한참을 돌아오지 않던 셋을 기다리며 바다와 해변을 유유자적 즐기는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러다, '나는 왜 유독 외국 해변에서 편안해할까?'에 대한 이유를 찾았다. 유럽의 해안가에서는 어디에서든,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버디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온 이상, ‘너 수영할 수 있어?’라고 묻는 대신, ‘레츠고!’를 외친다.

‘발까지만 담가볼까?’라고 말하는 대신, 목표물을 세우고 수영하자며 제안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수영을 두려워하거나, 수영은 할 수 있지만 바닷속은 무서워하는 주변 사람들 속에서 혼자 물을 즐기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단순히 거듭되는 우연인지, 이것이 일상인지 외국 여행을 할 때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함께 바다 수영을 즐기며 자유로이 헤엄치는 모습을 봐왔다. 한국에선 친구들이 수달처럼 또는 인어공주처럼 물에서 해방을 느끼는 나를 보며 놀란다면, 필자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각양각색인 바다 친화력을 보며 놀란다. 그것도 많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카약을 타고 해변을 벗어나 바다 한가운데 다다랐을 때,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구명조끼를 벗고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친구, 파도가 쉬지 않고 웨이브 치는 바다에서 거침없이 수영하는 친구, 절벽만 보면 올라가 신나게 다이빙하는 친구들을 본다.


물을 좋아하고 수영을 즐기는 사람은 훗날 전 세계의 수영인들과 물속에서의 우정을 약속하고 있는 걸까. 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편안하고, 꾸밈없이, 빠르게 라포가 형성되는 걸 보면.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S, 스페인에 사는 S, 프랑스인 C, 토종 한국인 H인 나의 조합은 한참 전에 만난 듯, 서로에게 거리낌 없었고, 웃음이 되어주었고, 재미있는 쉼의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


그날 해가 진 밤하늘 아래, 넷이 둥글게 앉아 피자 한 판씩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중, 고백했다. 몇 번을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말이지만, 낯부끄러워 연신 삼키기만 하다가 맥주의 기운을 얻어 입 밖으로 꺼내었다.


"나 정말. 오늘. 너희 덕분에 행복했어. 고마워"


2024.08. In Albandeira beach.
2024.08. In Benagil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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