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물 (Forever & Water)
모든 일상이 한 점을 향해
공백 작가가 쓴 책 '휴식의 말들'에서 한 문장이 크게 와닿았다.
좋아하는 것에 그늘 없는 마음으로 몰두하는 기쁨. 나의 모든 일상이 한 점을 향해 전차같이 달려가는 상태. 불같은 몰입의 순간을 느껴 본 사람의 삶은 분명히 찬란하겠지.
'그늘 없는 마음', '모든 일상이 한 점을 향해', '불같은 몰입의 순간'이라는 표현들이 주옥처럼 느껴졌다. 마음 한 편에서는 신호를 보내왔다. 제발 머리가 아닌 마음을 따라가라고. 대서양의 넓은 품에서 만난 A처럼.
포르투갈을 떠나기 전, 'Madeira(마데이라)'섬을 짧게 들렸다. 이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남해와 같이 곳곳에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고 보니, 포르투갈 여행의 시작과 끝은 '물'이었다. 그동안 나의 일상이 모두 물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마데이라를 알게 된 건, A가 SNS에 올린 사진과 영상 덕분이었다. 사진 속 모습은 육지의 풍경이 아닌, 바닷속을 담고 있었다. 크로마키 배경을 인위적으로 합성한 것처럼, 바다의 진한 파란색을 배경으로 수영인들과 바다 생명체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인상 깊던 사진 속 기억 하나만으로, 나에겐 마데이라 섬을 가볼 이유는 충분했다.
섬에 도착한 지, 24시간 채 되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역시 자연의 시간과 함께 나아가기 위해선 부지런해야 하고말고. 전날 밤 먹은 봉지라면 탓인지, 퉁퉁 부은 얼굴로 잠도 덜 깬 채 수영복부터 입기 시작했다. 밤에 미리 준비해 뒀던 수영 가방을 하나 메고, 비몽사몽 한 채로 길을 나섰다. 섬이었던 탓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현지에서 소통이 되지 않고, 복잡하고 드문 버스 시간표를 시험 문제 풀 듯 해석하며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설레는 마음의 부피는 커져만 갔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보이는 바다를 볼 때면 더더욱. 그날은 지난번에도 함께했던 포르투갈 최초의 바다 수영 그룹, 'Swimtogether' 가이드와 동행하였다. 섬의 중간 지점에서 만난 M과 'PR 8' 트레일 코스에 두 발을 옮기는 것으로 하루의 놀라운 여정이 시작됐다. 사실, M을 만나자마자 해변에서 바다로 풍덩할 줄 알았던 내겐 다소 예상치 못했던 왕복 6KM 등산이었다. 그러나 이날을 정점으로 해서 '그늘 없는 마음으로 몰두해, 불같은 몰입의 순간' 속에서 사는 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등산을 적지 않게 해 봤음에도 PR8 등산길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도 만났다.
대부분 현무암 기반 화산 지형인 트레일 코스는 '저 먼 곳에도 사람들이 점이 되어 움직이고 있어.'를 끊임없이 말할 정도로 구불구불, 경사진 길이 이어졌다. 그동안 산에서 꽃과 나무를 봤던 것과 달리, 이곳은 산이지만 나무가 없어 더 탄성을 자아냈다. 거대한 갈색이 펼쳐진 땅 위에서 잠시 빼꼼한 옅은 녹색을 곁들이며 산을 오르고 내리락했다. 인근 유럽 국가에서 여행 온 무리들 속에 녹아 뚜벅뚜벅. 자연이 주는 웅장함에 압도당하며, 문득 전차같이 달려와 이곳에 다다랐을 안드레가 떠올랐다. 오픈워터 수영 그룹을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지금을 이끈 그는 바다와 수영만을 바라보고 달려왔을 테다. 현지인이라도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넘어와 구불구불 산길 운전을 성공하여, 여기까지 발견하기에 많은 고군분투가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늘 없는 마음으로 줄곧 따라갔던 것이다. 또래인 나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기였음을 잘 알기에, 머리보다 마음을 따라 향했던 그가 존경스럽다. 여행 중엔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물, 수영을 좇아 가지만, 직업으로 승화시켜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는 필자를 볼 때면 더욱. 사무실 같은 한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앎에도.
그렇기에 또래인 그가 한없이 단단해 보인다. 전차같이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이곳에 다다랐을 안드레, 정신을 차려보니 같은 전차에 타고 있는 나. 머리가 아닌 마음을 따라간 그처럼, 나도 불씨가 완전히 꺼지기 전에 머리보다 마음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길. 그날의 순간처럼,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하루를 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삶 속에서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길 바라본다.
아무튼, 이성을 뒤로하고 마음을 따라갔던 이번 여름휴가. 모든 일상이 물을 향하고 있던 나날들. 덧붙일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 찬란했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