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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27. 2024

만남은 어렵고 이별은 쉬워

[Epilogue]

만남은 어렵고 이별은 쉬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추운 겨울, 제자들과 베이식의 노래를 들으며 헤어짐을 나누던 날이었다. 한 학생의 중얼거림이 이별 앞에 적적해진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의 적막을 깼다. "선생님, 가사가 반대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만남은 어렵고 이별은 쉬워로요." 


그러고 보니, 학생의 말이 일리 있었다. 그동안 만남의 소중함에 비해, 밉기만 한 이별에만 집중해 온 나에게 학생의 시선은 새로웠다. 맞다. 나를 찾아온 사람 혹은 내가 찾아간 사람, 소속으로 얽히게 된 사람까지 모두 어렵게 이어진 인연이다. 우리는 함께 공기를 공유하며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쉽지 않은 과정을 이겨낸 관계에선 연결고리가 주는 소속감, 행복, 사랑이 남는다. 야속하게도, 어렵게 든 정을 잠시 내려놓고 이별해야 하는 순간도 빈번히 찾아오지만. 어렵게 만나고 쉽게 헤어져야만 하는 것. 이것이 '인연의 쳇바퀴'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여행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무엇인지 흔히들 물어본다. '인종차별', '소매치기', '베드버그' 등을 예상하고 묻는 것도 안다. 나의 대답은 그들의 예상을 깨뜨린다. 필자는 '이별'을 꼽기 때문이다 '여행하며 어렵게 만난 마음이 맞는 여행자들과 필연적으로 이별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어요.' '특히, 정이 든 지역에서 정이 든 사람과 동시에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라면 슬픔은 배가 되죠.' 그러면 그럴 때마다 어떻게 극복하냐고 이어서 물어본다. 멋쩍게 답한다. '웁니다.' 슬픔은 눈물로 달래는 편이다. 헤어진 후,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면 엉엉 소리내 울지도 못하고,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을 손으로 대충 닦다가 수도꼭지 튼 것처럼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 수밖에. 더 이상 눈에서 물이 흐르지 않도록 휴지로 눈을 꾹꾹 누르며 끅끅거리며. 남들이 어느 패키지 회사가 나은지 고민하느라 여행을 가기도 전에 벌써 진을 빼거나, 소매치기와 인종차별을 당하면 어떡하지 두려워할 때, 이별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그럼에도 인연의 쳇바퀴를 통해, 얻은 것도 있다. 먼저,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타인과 나눈 시간은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어,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서 따스한 빛을 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때, 거기서 나와 그들은 행복했다. 그러면 됐다. 두 번째로, 헤어짐이 있다는 걸 알기에 현재에 더 몰입한다. 자주 보는 사람보다, 몇 번 여행지에서 스쳐 간 사람과 함께한 시간이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건 이 때문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인연을 흘러가게끔 두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북마케도니아 여행을 하던 중, 새로운 인연이 이어진 K 선생님께서 헤어질 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헤어지고 나서, 잘 도착했다는 문자나 안부 인사를 전하려고 연락을 이어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서로 잘 지내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아도 변함없는 관계가 있어요." 정말 괜찮으니 연락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헤어졌던 K 선생님과 나. 처음에는 선생님의 연락하지 말라는 말이 당황스러웠다. 항상 헤어질 때면, '또 보자, 연락할게.' 등의 말을 주고받아 왔기에. 최근 들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다. 굳이, 노력하여 연락을 이어가지 않아도, 다시 만났을 때 한결같이 반갑고, 어색함 없이 인연이 이어질 수 있음을 배워가는 중이다. 


헤어질 때, "안녕"을 말하는 것만큼, 새로운 또는 익숙한 만남의 자리에서 "안녕"을 말하니 너무 헤어짐 앞에서 목 놓아 울지 않기로 다짐한다. 이 글을 끝으로. 앞으로도 길 위에서 입 밖으로 수없이 꺼내게 될 "안녕". 어렵게 만나 반가워서 또는 빠르게 다가온 이별 앞에서 안녕을 내뱉으며 웃음 지을 수 여행자가 되는 그날까지 거듭해서 길 위로 나아가는 여행자의 길을 걸으려 한다. '2024년의 길 위에서 쌓인 생각' 끝.


P.S. 마지막으로, 어디든 지레 겁먹지 않아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니 만약 여행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떠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떠났는데도 마음이 불편하면 언제든 돌아오면 된다. 이후, 앞으로 멀리 안 떠나면 된다. 경계심을 풀고, 마음의 벽을 허물어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하다 보면 어느새 현지의 삶에 스며들어 편안해진 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건네고 싶다. 조심하라고 당부하기 전에, 떠나기로 한 당신의 용기와 선택을 응원한다는 말도 함께. 최대한 좋은 거 많이 보고, 듣고, 맛보는 즐거운 여행이 되길. 어쩌면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찬란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까. 떠나본 사람만 아는 거니, 다시 한번 다양한 길 위로 떠나보라고 추천하며 진짜 끝.


"You get to say hello just as often as you say goodbye. So it kind of balances out, right?"

['Netflix, heartland', Jack의 대사]


2024. 08. In Borde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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