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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14. 2024

나를 찾는 소리는 없는 그곳으로

영원히, 물 (Forever & Water)

나를 찾는 소리는 없는 그곳으로
'수영장은 소리로 가득하다. 첨벙이는 물소리, 해맑은 웃음소리, 소곤대는 말소리 등 갖가지 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그중에 나를 찾는 건 없다. 그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수영장은 소리 속에 묻혀 마음껏 고요할 수 있는 장소다.' <풍덩 79쪽, 우지현>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했던 날, 사방은 소리로 가득했다. 안개 낀 하늘은 버킷리스트 장소 중 하나였던 곳에 도착하고 한참이 지나도, 몽롱함에 잠기게 했다. 그날은 신트라의 'Arribas sintra hotel' 수영장에 갑작스레 발길이 닿았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꿈꿔와서였을까, 행동으로 옮겨질 땐 큰 괴리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하는 날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들었으니. '왜 나는 여기에 와보고 싶었을까?' 떠올려 보면, 지금껏 봐온 수영장과 다른 형태인 초현실적인 곳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영장이라는 공간을 그려봤을 때, 곧바로 생각나던 장면은 수년 동안 다닌 동네의 작은 실내 수영장이었다. 네모난 벽들에 둘러싸여 있는 6개의 레인, 북적이는 사람, 창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건물, 곳곳에 낀 곰팡이까지. 하지만, 우연히 SNS를 통해 발견하게 된 저 먼 땅, 포르투갈에 있다는 한 수영장 사진은 선입견을 깨뜨렸다. 진한 노을이 펼쳐지는 하늘 아래, 100M 레인의 규모, 이 규모를 둘러싼 대서양이 펼쳐지던 장면이었다. 북대서양에서 거센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파도가 수영장 펜슬을 타고 넘어와 수영장 물을 자연적으로 넘실거리게 만들던 '해수 수영장'이었다. 게다가, 유럽에서 가장 큰 해수 수영장으로서 깊은 수심, 낮고 높은 다이빙대와 선베드까지 마련된 놀라운 놀이터라고 말할 수 있다. 직접 가보니 초현실적인 수영장이 맞았다. 처음 사진 한 장으로 접했을 때 느낀 것과 동일하게, 어쩌면 배가 되어.


언제든지 수영장으로 몸을 빠뜨릴 수 있는 앞자리의 선베드에 자리를 잡고, 수건을 펼치고 있을 무렵 다이빙대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꼬마 몇 명이 모이더니, 순식간에 무리가 형성되어 하나둘 퐁당, 철썩, 철퍼덕 각양각색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엔 그들의 다이빙을 흥미롭게 바라보았지만, 서서히 흥이 떨어져 시선을 눈앞에 펼쳐진 대서양에 멈추기도, 눈을 감기도, 일기를 쓰기도 하며 몸을 누웠다 일어났다, 뒤집었다를 반복했다. 중간중간 다이빙대에서 흘러 들어오는 신이 난 소리에 멈칫 그들을 바라보면, 아이들도 정오가 지나 점심시간이 다가와도 물에 뛰어들고 다이빙대로 올라가기를 연신 반복하고 있었다. 어찌나 다이빙을 좋아하던지. 


사방은 소리로 가득했다. 


파도와 만나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 퍼레이드처럼 연이어 동시에 뛰어들어 연주되는 물소리와 환호성, 다이빙대 위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을 위해 보내는 박수와 격려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그럼에도 소리는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즉, 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수영장 소리였다. 쉬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소리를 소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때만큼은 항시 예민하던 청각이 유독 잠잠했다. 돌이켜보니, 언제나 수영장에선 청각이 예민하지 않았다.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임에도. 왜냐하면 라이프가드가 호루라기를 불게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수영장에선 나를 찾는 소리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날을 계기로, 하루 끝이면 수영장으로 향했던 나의 발길이 이해되었다. 하루 종일 나를 찾는 소리로 가득했던 순간에서 벗어나, 소리에 뒤엉키지 않는 공간에서 푹 쉬며 피로를 풀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도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면 뚜벅뚜벅 발걸음을 재촉한다. 

소음에 엉키지 않아도 되는, 나를 찾는 소리는 없는 수영장으로. 


2024. 07. In Sintra.
2024. 07. In Sin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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