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부다페스트 여행, 마지막 날 #1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마지막 날'이 존재한다는 건 모든 여행자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그날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에 따른 태도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여행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아쉬운 마음에, 괜히 질척거렸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과거의 여행하던 순간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여행의 짙은 향수에 머물렀다. 여행지와의 작별도 작별이지만 난 유독, 그 순간에 함께한 사람들과 보낸 시간, 그 사람들과의 헤어져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베이식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노래 제목처럼.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었으니깐!' 하며 나름 강한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헤어지는 순간이 오면 누구보다 서럽게 펑펑 운다. 그리고 이번 여행, 헝가리에서 보낸 일주일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아, 나 또 떠날 때 버스에서 혼자 질질 우는 거 아니야..?' 그런데 웬일이었을까, 점점 어린 나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있던 걸까, 쉬운 만남처럼 헤어짐도 쉽게 깔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찾아왔던 걸까, 처음으로 울지 않았다. 눈물 대신, 스스로도 놀라게 만들었던 강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떠나는 날, 그동안 부다페스트에서 좋아했던 장소들을 하나씩 혼자 다시 가보는 시간 속에서 말이다.
가는 곳마다 날씨가 좋은 날씨 요정과는 거리가 먼 '우마왕'인 나는 하도 비와 바람을 몰고 다녀서, 여행지의 날씨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부다페스트는 7일 내내 맑음이었다. 맑은 날씨의 익숙함에 속아 부다페스트 날씨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 채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맑았기 때문에 '오늘의 날씨'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태껏 날씨가 나의 여행을 돕고 있다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던 거다. 이 고마움을 깨달았던 건 떠나기 전 날이었다. 오랜만에 날씨를 확인했는데 떠나는 내일, 금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눈과 비가 온다는 예보가 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여태까지 날씨에게 고마움을 못 느끼고 있었다니.' 뒤늦게라도 표현하고 싶다. "매일 맑은 하늘만 보여줘서 고마워, 부다페스트!"
날씨 예보대로 떠나는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중충한 하늘 아래 흩날리는 비가 뿌려졌다. 그 순간이 약간 낯설게 느껴졌다. 늘 숙소에서 나오면, 쨍한 하늘 아래 노란 트램이 지나가고, 활기차고 따뜻한 느낌을 안겨주던 부다의 모습이 차분하며 조용한 분위기로 순식간에 변했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도 내가 떠나는 걸 붙잡는 걸까?' 잠시 이런 생각도 해보며, '내가 좋아했던 곳, 생각나는 곳'을 한정된 시간을 쪼개어 하나씩 차근차근 들렸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늘 나의 아침을 열어주었던 'fekete' 브런치 카페였다. 그곳에서 아직도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모를 헝가리 음식을 먹었다. 다시 내일 와서 지금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 같은 기분 때문이었을까,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약간의 허한 마음을 가지고 아늑한 초록색 공간의 식당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바로, 도나우 강을 건너 부다 지구로 발길을 향했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부다 지구와 페스트 지구로 나뉜다.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어부의 요새가 부다 지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다소 흥겨운 여행자들의 발길이 밤새 끊이지 않는 곳은 페스트 지구이다.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는 사실도 당연히 부다페스트에 와서 알게 되었다. 또, 이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며 '나는 어떤 지구를 좋아하는지' 성향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밤의 문화가 아주 활발한 골목길에 위치한 숙소 덕분에 늘 흥겨운 밤 분위기를 즐겼다. 여행자이니까, 잠시 머물다 가는 나였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지, 만약 '부다페스트에 산다면?' 당연히 부다 지구에 살 것이고, 살고 싶다. 처음 부다 지구에 갔을 때, 북적거리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포근함, 어두운데 안전하게 느껴지는 그 분위기, 조용하게 줄지어진 대부분의 가정 집들이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 순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찾아갔던 거다. 처음에 느낀 분위기가 고스란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때 확신했다.
'나중에 말이야, 다시 여기 와서 집을 구한다면 부다 지구에 있는 집을 구할래.'
비가 내려 축축해진 땅 위를 혼자 여유롭게 걸어 다니며 발길이 향하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면, 내가 다시 가고 싶어 했던 카페가 나오겠지 하면서. 그날 내가 탔던 버스가 언덕 중간까지만 가는 거였던 걸까, 중간에 잘못 내린 걸까, 아무튼 꽤 경사진 언덕을 오르게 되었지만 더 좋았다. 비록, 언덕을 오르며 본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에 꼽지만 말이다. 비가 와서 그런지, 24일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날씨 때문에 축 처져있는 그날, 사람들이 만드는 활기찬 분위기도 사라지다 보니 아주 조용했다. 사색하기 참 좋았다. 한없이 걷다 보니 다행히 어부의 요새가 보였고, 사람들은 잘 모르는 카페에 들어가서 저번에 앉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저번에 시켰던 플랫화이트를 마시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흘러 보냈다. 직원 분께서 날 기억했던 걸까? 아니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주셨던 걸까, 아무튼 플랫화이트만큼이나 맛있었던 쿠키를 하나 더 받아 행복에 젖어, 차분하게 마지막 날을 정리했다. 한국에서 받은 동생의 크리스마스 편지를 열어보면서, '나만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