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미 Jul 15. 2022

살고 싶은 나라를 찾는 게
꿈이었는데

이번 헝가리에서 이뤘다, 마지막 날 #2

비록 같은 여행지일지라도


길쭉한 창 사이로 국회의사당의 돔이 보이는 자리에서 일기장을 끄적끄적거리다 보니, 몇시간이 훌쩍 흘렀다. 하루를 부지런하게 시작했음에도 시간은 정직했고,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에 부다 지구 주민이 된다면 이 카페의 단골손님이 되어야지.' 하는 꿈과 함께 허한 마음으로 카페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오늘만큼은 차분한 페스트 지구로 넘어갔다.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 전에 그동안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고, 알려준 S언니와 첫날 만났던 때 헝가리 음식이 아닌 멕시코 음식으로 만남을 시작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터키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 밥을 다 먹을 즈음, 언니는 귀여운 빨간 포장지를 건네줬다. 그 안에는 귀여운 빨간 모자 트롤 인형과 오스트리아에서 건너온 달다구리 한 초콜릿, 언니의 소중한 크리스마스 편지가 담겨있었다. '볼독 코라쵸이! (메리 크리스마스!)' 헝가리에 입국할 때는 스스로 반기며 나홀로 환영했지만, 떠날 때는 누군가의 배웅이 있던 따뜻한 여행이 되었다, 언니 덕분에. 우린 5년 후의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며 잠시 헤어졌다. 


역시나 양이 많은 음식과 언니의 따뜻한 크리스마스 선물

이날, 유독 버스가 안 왔다. 버스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비가 와서였는지, 늘 자주 오던 버스가 그날따라 지연돼서 여유로웠던 시간이 촉박해졌다. 이러다간 곧 버스를 놓칠 거 같아서, '이번 버스도 또 지연되면 택시 타자.' 하며 택시 탈 각오를 하고 있었다. 택시를 잡으려고 할 찰나에, 다행히도 날 태워갈 파란 버스가 왔다. 부랴부랴 움직여 몸과 커다란 캐리어를 무사히 싣고, 하염없이 창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이 묻어져 있던 추억들을 하나씩 반추하고 있던 중, 멀리서 봐도 알아챌 수 있는 한국인 한 명이 버스에 탔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인을 거의 보지 못해서 속으로 반가워했다. 속으로 '저분은 좋겠다, 부다페스트에 남아있어서.'라고 생각할 찰나에, 전화기를 대고 한없이 푸념하는 통화소리가 들렸다. 버스 안에 사람이 별로 없던 탓에, 제일 잘 알아듣는 한국어 효과때문에, 공교롭게도 통화하는 소리를 듣을 수 밖에 없었다. 그분은 약간의 짜증이 섞인 어조로 부다페스트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여기 왔는데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문도 다 닫고, 갈 데도 없고, 비도 오고.... 진짜 별로야.'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곳이 아닌데..' 


주변 유럽국가들과 비슷하게, 헝가리는 한국과 달리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날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일찍 닫거나 운영을 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고 계셨던 걸까, 아무튼 원하던 모습을 못 보게 되어서 굉장히 저기압이셨다. 하지만 내가 느낀 부다페스트는 그게 아닌데 말이다. 정겨운 사람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이곳, 예쁜 야경과 골목의 따뜻함 등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게 넘치는 곳임을 대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신선했다. 같은 여행이더라도, 여행을 하는 시기에 따라서, 여행자의 성향에 따라서, '동일한 여행지'에 대한 인상이 이렇게 확연히 다를 수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 분의 통화를 통해, 적절한 시기에 나를 불러주고, 살고 싶은 나라를 찾아주고, 매력을 보여준 부다페스트에게 또 한 번 고마움을 느꼈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부다페스트! 곧 또 봐."



다음 여행지로 넘어가는 버스에서 쓴 일기

부다페스트라는 작은 도시에서 7일을 머물렀다. 야경으로 유명한 나라라는 사실만 안 채로, 잠깐 들렸던 곳이다. 그런데 하루가 지날수록 계속 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가는 곳마다 나의 마음에 들었던 걸까, 다시 한번 아니, 여러 번 가서 나의 아지트로 만들고 싶은 장소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결국, 부다를 잠깐 떠나야 할 마지막 날에 다음 여행지인 오스트리아행 기차를 취소했고, 더 머물러 7일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진짜로 다음 여행지로 가야 한다. 근데 엄청 아쉽지 않은 건 '여긴 꼭 다시 와서 진득하게 살 곳'이라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어서 였을까? 이번 여행은 흘러가는 대로, 현지인이 추천해 주는 대로, 기분 따라, 헝가리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나의 여행을 즐겼다. 관광 명소만 둘러보고 가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상을 놓치지 않으며 여행을 해서 인지 유독 더 편안하고 정겹고, 좋았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도시'를 찾는 게 꿈이었는데 이번 헝가리 여행에서 이뤘다. 


-부다페스트에서의 행복한 일상 여행, 잠시 마무리-


메리 크리스마스!


부다페스트 안녕, 캐시넴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