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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도로 Apr 08. 2020

가성비와 가심비

저렴하면서도 호사스럽게

이것 저것 알아볼게 있었다. 남편과 함께 하면 좋겠지만 남편도 책작업을 준비하느라 새벽 두시까지 독일어책을 블라블라 읽는다. 뭐 늘 그려러니. 새로 이사가야 할 집을 적당히 고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전세집이라 내집처럼 끼를 부려가며 모든 전력을 다해 달릴 수가 없고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의 만족. 요즘말로 하면 가성비가 좋은 걸로 고쳐야한다. 늘 고민이다 가성비냐 가심비냐. 가성비만 따지고 살다가 가성비를 잃어버려서 후회하는 날들이 점점 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밤새 이것저것 찾아보니 동이 튼다.


남들은 서재형 거실. 책이 없는 집. 티비없는 거실 하지만 나는 사실 남편의 직업덕에 책과 씨디에 치여사느라 책과 씨디가 징글징글하다. 늘 책과 씨디에 많은 공간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번만은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남편이 내심 모자라는 책의 자리는 안방에 넣으면 어떠냐고 했을 때 절대 안된다고 했다. 내심 서운해한다. 그러면 너는 공부하는 사람이랑 결혼하지 말았어야지. 한마디 남편이 내뱉는다. 공부하는 사람이면 너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되받아치려다 꿀꺽 삼킨다. 의미 없는 말들이다. 내가 지금 너때문에 빈정이 상했다. 빈정이 상했다고 하면 스스로 속좁다 느껴져서 뭐라 멋있게 보이고 싶어 쏘아주는 말들이다. 즉 상대에게 내뱉다기보다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허상이다. 부끄러워 부리는 허세들이다. 허세는 마른뼈와 같아서  허세끼리 부딪혀봤자 끝은 좋지 않다. 꿀꺽 삼킨 말이 속을 긁는다. 뱃속과 머리속을 잡아뜯는 것 같다. 이럴때는 서로를 원망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팔자려니 하고 부드럽게 다독거려 마음과 몸에서 내보내는 수 밖에 없다.





 남편은 어제 스트레스 받아 사와 먹은 편의점 치킨 한조각이 속에서 부딪겨 힘들어했다. 내가 삼킨 말들이 저리로 갔나보다. 내가 누군가 아프면 꼭 하는 메뉴가 있다. 계란찜인데 여기에 게살을 넣는다. 맛살 말고 진짜 게살. 가끔 마트나 마켓컬리 같은 곳에서 유통기한 얼마 남지 않은 게살을 40~50% 세일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때 5~6개쯤 사서 냉동실에 쟁여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 속이 아플때 해동시켜 계란찜을 만들때 같이 넣으면 좋다. 만드는 것도 너무 간단하다, 계란 3~4개. 물은 계란보다 조금 적게. 게살 한팩 넣고 게살이 너무 크다 싶으면 가위로 자른다. 2분 렌지에 돌리고 한번 저어주고 다시 2분 돌리고 저어주고 1분 정도 돌린다. 바로 빼지 말고 그 안에서 잔열로 스스로 익게끔 하면 아주 이쁘진 않아도 먹을만한 계란찜이 나온다. 게살이 없을 때는 마법의 쯔유 혹은 참치액으로 밥숟가락 1번 반 만 넣으면 된다.  가성비 가심비 모두 만족시키는 메뉴이다. 저렴하면서도 호사스럽다. 따뜻하고 몽글몽글하다. 머리와 속이 이유없이 착해진다. 하하 호호 맛있네 그러게 맛있네 간단하고 맛있어서 좋으네. 그냥 서로 위로해주며 살아야지 그게 안될 때는 가끔 이런 가성비 가심비를 만족시키는 음식의 도움을 받아야지. 혼자든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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