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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zakka May 28. 2024

푸른 녹음과 자연을 벗 삼은 곳

등억꽃향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도착한 장소 주변은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개발이 되지 않는 비어진 땅으로 서로의 땅임을 주장하는 펜스와 그 자리가 원래의 보금자리 마냥 자랐던 풀덩어리들이 말라 시간의 흔적만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땅 위로 앞쪽으로는 들판과 뒤쪽으로는 산등성이를 마주한 채 그 사이 오래전부터 뿌리내려 자리 잡은 건물이 보였다. 콘크리트로 둘러싼 건물은 꼭 성벽의 모습을 닮아 있다. 



대지보다 높은 경사에 위치한 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 입구 앞에 섰다. 건물의 규모와는 달리 입구는 마치 홀케이크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고 한 조각을 빼낸 부분을 남겨둔 것처럼 비워져 있다. 막힌 듯 뚫려 있는 천장 아래로 적막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빈 땅에 내려앉은 작은 성



산의 능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고자 한 이곳 '등억꽃향'. 30여 년간 울산 지역민의 사랑을 받아온 '이성호 과자점'이 지난해 11월 푸른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 새롭게 리뉴얼한 공간으로 선보이는 이곳은 30년 넘는 경력의 제빵사가 만든 베이커리와 커피 등과 함께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잔뜩 긴장한 몸을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들어간 건물 내부는 건물의 외관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곡면의 테마를 중심으로 미술관 같은 느낌의 동선을 그리며 왼쪽으로는 다양한 베이커리들이 즐비하게 준비되어 있고 동선을 따라 쭈욱 걸어가면 함께 즐길 수 있는 식음료들을 주문할 수 있는 커피바가 자리 잡고 있다. 성벽의 느낌을 주기 위해 사용된 콘크리트 마감재는 내부에 들어오면 단단한 느낌과는 또 다른 감각을 전달한다. 높은 층고와 간접 조명 아래 거친 표면의 질감은 더욱 드러나지만 덕분에 인위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연출을 의도한다. 그리고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조명 덕분인지 은은한 베이지 톤으로 덮인 공간 분위기는 웅크렸던 몸의 긴장감을 서서히 이완시키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을 돕는다.

 


1층이 주로 접객 및 판매공간이라면 2, 3층은 모두 고객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보면 철저히 층별로 분리한 것처럼 보이나 등억꽃향은 계단 일부를 활용해 전시품을 진열함으로써 계단이 유도하는 구획과 이동성을 느슨하게 만들어 방문객들이 베이커리의 제품과 브랜드 이미지를 경험하고 다양하게 체험하게끔 한다.



계단을 타고 올라오면 라운딩 된 공간이 연출되고, 중정 공원으로 나갈 수 있게 연결된다. 방문객은 둥글둥글한 성벽 끝자락에서 들어와 실내 곡면을 따라 배치된 가구를 따라가고 계단을 타고 올라와 외부의 등고선이 그리는 부드러운 시선을 바라보며 자리를 잡는다. 지금 말하는 일련의 과정이 카페가 보여주고 싶은 행위 그 자체다. 의도된 동선을 따르면서 오감을 일깨우는 것을 물론, 넓은 창으로 유입되는 햇살과 자연을 바라보며 식음을 즐기는 기본 목적을 부합한다. 내부 동선에 맞춰 외부의 형태를 그대로 따른 가구들은 방문객들의 행동에 방해하지 않고 세심하게 디자인되어있다. 마치 건물과 한 몸인 것처럼. 



주변의 아름다운 산과 자연의 동선의 모습을 옮겨 놓은 내부를 따라 중정 공원으로 나가면 뻥 뚫린 포인트 공간이 나온다. 외부에 잘 알려진 사자바위 뷰를 포인트로 잡은 공간은 1층과 같은 폼으로 2층을 올려졌고 외부에 계단 스탠드에서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액자형 프레임으로 산이 보이도록 연출했다.



내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작은 갤러리를 연상케 했다면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마주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성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도달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양쪽으로 우뚝 지탱하고 있는 벽은 고압살수로 치핑(금속, 콘크리트, 돌 등과 같은 물체의 표면을 깎아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거나 구멍을 뚫는 것)을 통해 자갈의 모습을 연출했는데 그 과정 자체는 인위적이지만 자연스러운 연출을 보여준다.



다시 밖으로 나와 외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창을 최소한으로 줄여 둥근 모습의 외향을 살린 모습은 곡면 유리와 함께 외부의 풍경을 감싸 안듯 품는다. 견고한 성벽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창을 이보다 더 최소화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건축주에게 특히 식음을 전개로 하는 공간은 창문의 유무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외부의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며 만들어지는 공간 요소, 무엇보다 자연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창문 없는 곳에서 공간을 즐기라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니까. 건축주 입장에서는 아무리 컨셉이 중요하다 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창은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세로로 길게 뻗게 해 자연을 있는 힘껏 끌어들였다. 그리고 정면 뷰 위에 ㄷ자로 살짝 띄워 빛이 유입되도록 하고 상부의 작은 창문을 두어 건물의 전체적인 둥근 형태와 분리시켜 채광을 내부로 들어오게끔 하여 공간을 유쾌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30여 년 동안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앞으로도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전시와 함께 새롭게 선보일 레스토랑 등 풍부한 브랜드 체험과 문화 향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선보일 예정이다. 푸른 녹음과 자연을 벗 삼는 이곳에 오랜 시간 준비를 거쳐 준비한 공간이 일상에 어떻게 스며들지 기대된다.






- 영업시간

매일 10:00 - 20:00


- 내부 주차장 이용


글, 사진 | yoonza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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