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zakka Jun 18. 2024

신선의 자취를 따라 간 풍경의 건축

선유도원



집 밖을 나서는 순간 하루종일 사람들과 마주하고, 해야 할 일은 쌓여가고, 자꾸만 늘어나는 고민은 끝이 없다. 그래서 쉬는 날이 되면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드라이브를 가보기도 하고, 휴가를 써서 여행을 가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 번쯤 지금 서 있는 곳을 떠나서 유유자적 발길 닿는 대로 살고 싶은 갈증을 해소하려고 한다. 오늘 하루만큼은 신선처럼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사람도 구름도 산새도 쉬어 가는 곳, 아무리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쉴 곳이 필요하다. 신선이 정말로 있다면 그들은 어디서 거닐었고 어떻게 생겼을까? 그 주변에는 뭐가 있을까? 이런 상상이 모여 하나의 건축물로 구체화된 곳. 바로 '선유도원'이다.



보이지 않는 몽환적인 존재, 신선이 살던 동네


부산 금정구 외곽을 따라 나오는 자연으로 형성된 상현마을은 구전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이웃 마을에 거주한 현인(賢人)이 신선이 되었다고 하여 현리라 불렀으며, 현리 위에 있어 상현(上賢)이 되었다고 전한다. 옛 원형을 거의 그래도 유지하고 있어 기와집 몇 채가 남아 있고, 산의 줄기를 따라 수영강 쪽으로 들어오면 오륜대 수원지(회동 수원지) 서쪽 기슭에 위치해 물안개가 끼는 아침이 되면 몽환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건물은 물성을 강조한 현대적 느낌의 금속 강판 소재와 외부의 노출 콘크리트 마감으로 맞배지붕을 가진 평범함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함은 본래 상현마을이 가지고 있는 동네의 정취와 닮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입구 측면으로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추운 겨울이라 가지만 남은 박태기나무다. 고대부터 신선들은 불로장생을 위해 복숭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복숭아나무를 심어야 하는 게 더 맞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성호 건축가는 너무 뻔하다는 생각에 대체할만한 꽃으로 박태기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박태기나무는 복숭아나무와 달리 벌레가 꼬이지 않고 꽃과 색이 유사하다고 하던데 관리적인 부분과 외형을 보기에도 복숭아나무 보다 더 잘 어울려 보인다.


 

선유도원은 삼각형 모양의 박공지붕 두 동, 묻혀있는 듯한 평지붕 건물 한 동 총 세 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이사이 꽃이 피는 정원과 팽나무와 이끼가 있는 정원, 돌만 깔아 둔 돌정원 등 총 5개의 정원이 자리한다. 그리고 건물은 각각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동재와 서재, 그리고 동천이다.


조선 중기 문신 고산 윤선도는 신선 같은 삶을 살고자 보길도에 그가 꿈꾸는 삶을 담아 원림이 조성했다. 선유도원은 그 원림의 콘셉트가 되었다. 신선 같은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욕망이 현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원림의 '세연정'이라는 정자와 군무를 추는 '동대'와 '서대'라는 거대한 넓적 바위, 돌로 지은 석실은 이 장소의 집이라는 성격에 맞춰 '동재'와 '서재'로, 남은 한 개의 건물은 윤선도가 차를 마시고 시를 읊었던 '동천석실'에서 따와 '동천'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차경


상현마을은 회동 수원지라는 훌륭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건축은 이 훌륭한 풍경을 어떻게 끌어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집이라는 성격을 이용해 차경(借景)을 반영했다. 과거 한옥이나 서당 같은 고택을 살펴보면 바깥의 풍경을 바라볼 때 툇마루에 앉아 마당이 보이고 그다음 담을 넘어 풍경을 바라본다. 담을 경계로 담 안쪽은 근경이 되고, 바깥은 중경과 원경이 된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다.



원림의 차를 마시고 시를 읊었던 동천석실은 '하늘로 통하는 동굴'이라는 의미다.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세상으로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자리한다. 이곳 역시 동천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하늘로 통하는 동굴'이라는 의미를 닮은 것처럼 건물 진입부이자 복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계단을 올가가 마주하는 장면은 마을 가장 높은 곳에서 회동수원지와 주변 멀리 마을 경관의 원경을 담는다.



세 개의 동은 각각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으며 브릿지를 통해 조화의 관계를 맺는다. 방문객은 이 브릿지를 통해 건물을 왕래하는 것만으로도 선유동원이 전하는 풍경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브릿지 위를 걸으며 건물 사이의 조성된 정원을 바라보는 것은 물론, 햇살에 반사되는 금속 강판의 물성은 차가운 건물에 온기를 담는다.



건물 중앙 오른쪽에 자리한 서재는 지형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땅에서 가장 낮고, 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근경의 풍경을 끌어들이는 건물은 전면으로 회동 수원지를, 배면으로 돌정원이 실내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근경을 좋아하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원경을 좋아한다고 한다. 실제로 방문객 중 비교적 젊은 고객층이 서재에 자리 잡는 것을 볼 수 있다. 실내 또한 콘크리트 질감을 드러내 단조로우면서 차가운 느낌이 나지만 에너지가 느껴지고 가구 배치 역시 동적인 느낌이 강해 전체적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띤다.



마지막으로 서재와 동천 사이에 자리 잡은 동재는 중경의 풍경을 그린다. 서재와 달리 목재와 색이 들어간 가구 배치, 정적인 가구들로 구성되어 있어 따뜻하면서 안락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선유도원에서는 각 동마다 건축의 의미와 의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활용해 풍경의 이야기를 전달해 다채로운 건축 경험을 전달한다.



잠시나마 신선처럼 거닐다 가고 싶다면



지난겨울에 방문한 선유도원은 무채색의 한적함과 함께 조용히 치유를 경험했다. 봄에 온다면 박태기나무의 꽃과 함께 봄날의 햇살을 마주하며 안식을 경험할 수 있고, 여름에 오면 푸른 녹음과 시원한 물소리에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오늘도 신선 같은 삶을 꿈꾸며 선유도원에 다시 방문하는 날을 기다려본다.





- 영업시간

매일 10:00 - 22:00

- 내부 주차장 이용


글, 사진 | yoonzakka

매거진의 이전글 부산의 격동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