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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Nov 24. 2021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가기

나의 두 번째 이름 짓기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이상은/ 언젠가는)


나의 일상이 단조롭거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가끔 마음속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매일 아침 운동하러 가는 학원에서 선생님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아~ 옛날이여~ 지난시절 다시 돌아올 수 없나~"

조용한 공간에서 목청껏 내지르는 이선희 노래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 아침부터 너무 슬픈 거 아니에요?"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생전에 아빠가 아주 많이 아프셨다.

몸은 마비였고 정신은 치매에 가까워

세상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잊힐 즈음이었던 것 같다.

조용한 방안 병상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아프시기 전에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셨던 아빠였다. 

갑자기 얻은 병으로 10년 동안 꼼짝없이 침대에만 계셨다가 돌아가셨으니.

정신이 온전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세월들이 얼마나 야속했으면

그 노래가 나왔을까 싶었다.

그 구슬픈 노래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베인 듯 아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아녔을까?


문득  그토록 그리던 아빠의 그 청춘의 하루가 내가 보낸,

아니 지금도 보내고 있는 그 하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귀한 하루 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틈틈이 내 나약함을 발견해 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나약함의 리스트는 아주 아주 많지만

생각나는 몇 개만이라도 적어 보자면

모든 일에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하는 감성적인 성격과  

지난 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끊임없이 뒤를 되돌아보는 쿨하지 못한 성격이다.

잘못된 일도, 때론 잘된 일도

이미 지나가버려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인데도 곱씹고

또 곱씹어 시시때때과거를 현재 이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나의 주특기이다)


일상생활 잘하다가도 노크하고

슬플 때도 노크하고

화날 때도 노크하고

사건사고가 터질 때 혹은 예상될 때도 노크하고

심지어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조차도

나의 과거의 기억들에게 노크를 한다.

그러니 내 삶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아빠가 가지고 싶어 했었던 그 청춘의 기쁨을 온전하게 즐길 새가 없다.

나의 불행은 내가 놓지 못하고 즐기지 못해서 자초한 일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내 모습에 나도 내가 참 답답하다 생각한다.


"즐거움도 암기과목이라네. 외우지 않으면 즐길 수가 없어.

가슴 벅찬 순간이 오거든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그 순간 속에 머무르면서 그 느낌을 몸에 붙여야 해.

외워질 때까지 기쁨 속에서 나오지 말고 머물게.

(너를 어쩌면 좋을까/ 곽세라/ 쌤 앤 파커스)  


내 나약함이 해소되지 않고 켜켜이 쌓여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를 들춰 현재를 괴롭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다 보니

나의 나약함은 연습부족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겪어보지 못했거나.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는 당황하고

이미 겪어 본일은 아는 맛이라 무시하거나 때론 도망쳤기 때문일 거라고. 

그러니 내가 피하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게 맞서 싸웠던 일들만이 오롯이 지금의 내 것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인생은 경험치라 하지 않았던가.


나의 삶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테니

그 삶들을 견디려면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화가 날 때 내 모습은 어떤지, 

기쁠 때는 어떻게 하는지. 슬플 때 내 모습은 어떤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내 기분이 다시 좋아지는지..'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연습해 나가보려 한다.


나이가 들면서 나를 잃지 않으면서 받아들일 것은 잘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 싫은 것은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

어렵겠지만 그 노력을 통해 '청춘'이라는 단어에

섭섭함이 묻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려는 연습을 하려다 보니

과거의 글을 읽으며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그때의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닌데

매번 애써 그 어린 시절의 문을 열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은 슬픔 속에 빠뜨려 헤엄치게 만들지 않았었나.

애써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괜한 소리를 했나 싶다가도

그 글들을 통해 지금의 마음을 가진 내가 있게 되었고

내 내면의 상처들이 오히려 치유되지 않았나 싶어 그것은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보기로 했다. 


이제는 그 상황들은 내가 겪을 수밖에 없는

내 운명이었음을 기억하고 똑같은 상황도 스스로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야 지금을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때의 어리고 여린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 살고 있지 않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어린 내가 아니니까.

그 어린아이의 손을 이제는 놓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일 테다.

그래야 현재를 살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현재에 집중하며 소박한 삶을 꿈꾸다 찾게 된 유튜브 채널이 있다.

"단순한 진심"이라는 채널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현우와 수수의 이야기인데

나보다 한참을 어린 친구들이 이름처럼 단순하지만 진심을 담아

세상과 함께 천천히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덕분에 오락가락했던 나의 삶의 방향성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내가 나에게 지어준 두 번째 이름'이라는 영상 한편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했다.

그 영상 속에서 주인공인 수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진짜 이름은 과거의 소중한 기억들이 담겨 있는 오래된 사진집 같고

두 번째 이름에는 '과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렇게 된다면 내 과거를 들추어내는 일을 조금이라도 멈추게 되지 않을까?

과거의 희생자로서의 내가 아닌 현재의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아침 산책을 간 김에 벤치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도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튀고 관심받고 사랑받으려 애쓰던 내 예전 모습을 지우려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로 아무개 씨로 하려다가 (웃음) 

뭐든 나약한 내 마음과는 다른  "단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려는 나의 노력과 어울리는 단어. 단단.

그리곤 더 이상 나약한 내 과거를 떠올리는 내가 아닌

지금의 현재 "단단" 씨로 살아보고자 마음먹었다.


뭐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덕분에

지금부터라도 내 마음속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지내며 삶을 가꾸어 나가다 보면

'과거보다는 조금 홀가분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뭔지 모를 기대감이 마음 한구석에 싹텄다.

오늘부터라도

새로운 이름을 통해 현재를 사는 연습을 해나 가봐야겠다 싶다.


지금부터 잘 지내봅시다. "단단"씨



문득 제철을 더 잘 챙기며 살 수 있기를

지금 나에게 허락된 행복을 더 누리며 살 수 있기를.

허겁지겁 주어지는 대로 살지 말고,

내가 먼저 앞장서 계절을 마중 나가는 삶을 살고 싶어 졌다.


(안녕한,가/ 무과수/ 위즈덤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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