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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Feb 21. 2024

평화로운 가정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업적(?) 인정하기

내가 자주 생각하지만 꺼내지 못한 것들을 책에서 발견할 때 그것도 아주 유려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표현한 내용을 보면 어지럽게 뭉쳐있던 생각들이 쫙 풀리면서 공감의 끄덕임이 쉴 새  없이 나온다. 또 한편으로는 진작 잘 풀어서 내가 써볼걸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은유의 <해방의 밤>이라는 책에서 “ ‘고작’ 전화 한 통, ‘겨우’ 문자 하나 같이 말하기도 치사하고 엄살로도 인정받기 어려운 일, 애매하고 자잘하고 느닷없는 일이라서 나누어질 수 없는 짐이 있었습니다. 그게 자동으로 엄마에게 부과된 거죠” 이런 문장을 읽을 때도 그랬다.


내가 늘 아이들 문제나 집안의 자잘한 일들을 해나가면서 느꼈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었다. 남편이나 주변에 구구절절 얘기하기도 애매한, 그렇지만 나를 쉴 수 없게 만드는 만 가지 일들이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부터 생겨났다. 이 일은 퇴근도 없고 휴가도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24시간 나를 괴롭힌다. 남편에게 분담할 수 있도 있지만 그 히스토리를 설명하느니 그냥 내가 하는 게 나을 만큼 사소하고 급박한 일투성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 학원 일정 조정이라던가, 아이가 학교에 늦어졌을 때 담임께 전화드리는 일, 아이들 어릴 때는 친구들과 노는 일까지 엄마들과 연락해 정하는 등 예전 부모님은 하지 않았을 일까지 그 범위가 넓다.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의식주에 관한 일은 제쳐두고 하자고 들면 아이 관련 일은 무한대로 많아질 수 있다. 집에서 아이들 공부나 책육아, 영어 학습까지 시킨다면 매일매일 아이의 정서 상태에 따라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한 초기 노력 등 따로 글을 써도 모자랄 일들이 있다.


그걸 남편에게 정확히 분담하기도 애매하고 그 과정과 방법을 설명하기도 귀찮아 내가 다 떠맡다 보니 일이라기엔 모호한 만 가지 일들이 주어졌다. 10년 넘게 주말 부부를 했기에 더 그랬다.


남편은 돈 버는 일 하나로 퉁 치는 일을 집에서 때로는 일하면서도 해결했다. 그런 일은 아이들 키우고 한 집안을 감당하는 일뿐만 아니라 부모님 간병하는 일에서도 발생한다.


병원일 같은 경우 한 두 번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하다 보면 부모님의 건강상태나 치료의 진행방향을 잘 알게 되다 보니 저절로 부모님의 주 보호자가 된다. 나중에는 병원 모시고 가는 일뿐만 아니라 부모님 현 건강상태를 가족 모두에게 공유해야 하는 일까지 더해진다.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는 형제자매들에게 답을 하고 분담하자고 말하기 어려운 사소한 일들이 쌓인다.


나는 무남독녀라 당연히 혼자 다 했지만 주변에 보면 좋은 마음으로 부모님 일을 보살펴드리다가 주 보호자가 되어 혼자서 모든 일을 떠맡게 되어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일을 다 하고 참다 참다 화를 내면 그 사람만 이상하게 되는 답답한 일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살림과 육아, 간병 일은 정확하게 분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이나 부모님과의 정서적 친밀도와 평상시 습관, 생활 방식 등 세심하게 알고 있는 부분들을 다 공유하기 어렵다. 아이들과 연로하신 부모님은 루틴이 생겨 반복적으로 생활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그걸 또 다른 사람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맡겨보아도 아이나 부모님이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상황을 보면 괜한 죄책감이 생기기도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일을 처리하다 보니 굉장히 유능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요리하기, 아이들 양육과 학습문제, 부모님 병간호를 하면서 병원일 처리하는 법, 시부모님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하고, 요양병원과 요양원 알아보기, 엄마의 경우 등급을 받고 복지 혜택 받는 법등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엔 다 어렵게 느껴지고 시행착오도 겪고 마음 졸이고 힘들었지만 해내고 나니 이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사 다니면서 전세 계약할 때 살펴봐야 할 부분, 집 구입할 때 고려하고 살펴봐야 할 것, 세금 문제 등 이제는 혼자서 다 할 수 있다. 남편이 동행해 주긴 했지만 하나하나 알아보고 조사하고 마지막 점검까지 혼자서 다 했다. 남편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는 유능할지 모르지만 이런 일들에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고 잘 몰라서 하는 질문들이 나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어서 차라리 혼자 처리하는 게 편하다.


아이들에게 어떤 문제가 보일 때 같이 대화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 또한 내가 주로 했다. 물론 아빠가 동참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친구관계부터 학습적인 면, 아이의 얼굴만 봐도 무슨 일이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나와의 대화와는 달랐다.


남편은 피상적으로 이야기하고 해결책에만 몰입해서 자꾸 답을 내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세심하게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일은 힘들고 결국 본인이 원하는 답을 부드러운 말로 강요하는 형상이 되는 때가 많았다. 대부분 아이가 힘든 것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본인도 알고 있는 그 답대로 행동하기가 어렵고 싫은 마음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별 거 아니지만 그러한 감정적 보살핌과 가족 간의 정서적 접착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어느 날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아무도 나의 마음은 알아주는 이는 없는데 난 늘 가족의 감정을 살피다 보니 힘이 든다. 그래도 그렇게 노력했기에 가정이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네가 예민해서 그렇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딴에는 노력을 했고 그래서 가족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하다고 생각한다.


한 집안이 평범하고 아무 일 없이 굴러가기 위해선 누군가가 그 아래를 힘겹게 떠받치고 있다는 걸 서로 알았으면 좋겠다. 남편이 경제적인 면을 전적으로 책임져주고 있기에 이 평화가 가능하다는 걸 안다. 한 가정의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제 나이도 들어 힘들어 하는게 보이는데 변함없는 성실함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거 같아 자랑스럽다.


겉에서 얇게 감싸고 있는 남편의 성실함과 나의 사랑에서 나온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육체노동과 식구들 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위한 노력이 ‘평화로운 가정’이라는 보답으로 주어졌음을 안다.


주위에 그런 보이지 않는 정서적 노동과 주보호자 역할로 지친 어머니, 아버지, 누나, 형, 동생, 아들, 딸들을 한 번씩 둘러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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