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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09. 2022

미니멀 라이프 나도 해봐야겠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난 깔끔하게 정리정돈되고 청소된 방에서 개운하게 세탁된 커튼이 살살 날리는 안방에서 낮잠 자는 엄마, 아빠와 누워서 참 좋다, 개운하다 이런 기분을 느끼던 날들을 기억한다. 또 깨끗하게 시쳐진 요와 이불을 덮고 고소한 햇빛 냄새를 맡으며 무척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아름다운 기억의 파편 위로 덮인 대부분의 기억은 청소하고 정리하느라 화가 나서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던 엄마의 무서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이제 치매로 우리 집에 전처럼 자주 드나들지 못하게 된 최근에야 멈추게 되었다. 그 무서운 엄마의 목소리는 거의 최근까지 내가 40대 중반까지 계속되었고 더 심해져왔다.


깨끗하게 정리되고 치워진 공간의 아름다움과 쾌적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하도록 강요되고 비난의 말을 들어왔던 나는 오히려 집을 엉망으로 만듦으로써 소심한 반항을 계속해왔다. 40대 중반까지 내가 결혼을 하고 내 집을 갖고 내 가정을 꾸리면서 비로소 자유라고 생각했고 내가 치우고 싶을 때 치우고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어지르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 반항심이 날 가득 채우고 있어서 규모 있게 물건을 사고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대한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난 끝도 없이 내 옷과 아이들 옷을 사들였고, 끝도 없이 아이들 책과 장난감으로 그 좁은 집을 가득 채웠다. 첫째를 낳고 대전에서 20평대 사택에서 살 때 두 개의 방중 하나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가득 채워져서 그 방은 그냥 창고로 사용하고 좁은 거실도 아이의 물건으로 가득 차서 늘 청소하고 정리하느라 지쳤던 기억이 난다. 다시 서울로 이사 와서 30평대 집에 살 때도 물건은 더 늘어나서 집에만 있어도 지치고 나 자신의 공간이 하나도 없어 나를 들여다볼 기력도 없이 지쳐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대충 치우고 맥주 한잔과 야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고 그냥 그 시간을 위해 하루하루를 참아내고 있었던 날들이었다. 힘든 나를 위해 그 정도의 보상은 필요하다고 합리화를 하고 대부분의 저녁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낮에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백화점이나 여러 쇼핑몰을 전전하며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아이들 물건과 옷들을 사러 다녔고 밤에는 술과 야식으로 내 몸과 집을 가득가득 채우는 삶을 20년 동안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반대로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자유와 시간을 빼앗는 존재라는 의식이 있었던 거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빨리 잠들기를 바랐고 그렇게 힘들게 확보한 혼자만의 시간을 술과 쇼핑으로 탕진하는 삶이었다. 나의 황금 같은 30대와 40대의 시간들을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아니 28세로 그대로 머무른 채 이 힘들고 정신없는 육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꺼나봐야지 하고 내 자신을 어딘가에 처박아 두고 현재에 내가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청소력>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어디서 소개를 받았는지 우연히 사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보게 되었고 그 책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어린 시절 깨끗한 커튼 사이로 하늘거리며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 내 마음속에서 일기 시작했다. 그 책을 시작으로 미니멀 라이프, 정리정돈에 관한 책을 미친 듯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니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이 샘솟았다. 늘 피곤하고 무기력했는데 책을 읽는 뒤에 알 수 없는 괴력이 생겨나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우선 읽지 않는 아이들 책을 처분했다. 누나랑 5살이나 차이가 나 언젠가 보겠지 하면서 쌓아둔 책, 둘째의 흥미에 맞춰 새로 구입한 책으로 우리 집은 흡사 헌 책방과 같은 모습이었다. 먼지로 뒤 덮이고 책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대부분의 책을 팔고 버리고 나눔을 하자 책의 무게만큼 내 마음의 무게가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무거운 책의 무게만큼 거실과 방들은 늘 힘들고 답답한 느낌이었다. 책이나 물건을 찾기 위해서는 무거운 책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생활하고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도서관을 이용하고 구입하더라도 2~3달 동안 다시 볼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서면 바로바로 되팔거나 버린다.


그때 읽었던 미니멀 라이프 책 중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책은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이다. 그 책은 공간에 대한 미니멀뿐 아니라 생활과 내 마음에 대한 미니멀에 대한 통찰의 말들로 가득 차 있어서 지금도 가끔 집이 다시 채워지는 느낌을 들 때 다시 읽고 자극을 받고 있다.

   

아이들 옷과 내 옷을 정리하면서 내 수준에 맞지 않는 비싼 옷들, 싸다고 함부로 사들였던 옷들, 어느 날 내 이미지를 이렇게 만들어야지 생각하면서 충동적으로 산 옷들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내 이미지를 만들어 가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직도 20대의 미숙한 내가 있었다. 아직도 내가 누군지 내가 원하는 모습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을 봤다. 어느 날은 미니멀하고 세련된 여자의 모습을 원하는 듯 심플한 옷들을 사고, 어느 날은 사랑받는 귀여운 공주풍의 옷들을 사서 한 명의 옷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취향도 감각도 없는 뒤죽박죽 가득 찬 옷장이었다.

   

그 연장선으로 비싸고 예쁜 옷들로 가득 찬 아이들 옷장을 보면서 남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금방 커버릴 아이들 옷에 몇십, 몇 백 만원씩 써버리면서 늘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돈이 부족한 것에만 불만을 품고 있었지 힘들게 돈을 벌고 가족을 위해 자신은 늘 뒷전인 남편의 고마움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비싸게 사놓고 몇 번 입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한 채 쌓아둔 옷더미들을 보며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그토록 겉모습에 신경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환경이 뒤죽박죽인 것처럼 내 머릿속도 뒤죽박죽이어서 냉장고에 같은 소스가 몇 병씩 나왔고 생필품이라 생각해서 슈퍼에 갈 때마다 산 물건들이 산더미 같이 쏟아져 나왔다. 늘 월급이 부족해서 적자고 돈을 모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을 정리하다 보니 줄줄 새는 돈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옷장, 싱크대, 서랍들 이런 것은 나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보이지 않게 문을 닫아 놓아두어도 어지럽혀진 장과 서랍들은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집을 정리하고 앉아있으면 어린 시절 그 집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집 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개운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비로소 나를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다. 내 마음이 왜 힘들었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생기고 아이의 달라진 표정이 보인다.

  

지금도 미니멀 라이프는 진행 중이다.

미숙한 유아기적 삶의 방식을 알아차리고 진정한 나를 찾고 나의 방식을 만드는 과정이 진짜 삶을 사는 것이다. 유아기적 삶의 방식을 알아차리는데 미니멀 라이프와 건강한 식단, 책 읽기가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고 미니멀 라이프를 알게 되고 외부로 향해있던 삶의 방향이 내부로 향하게 되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내가 살면서 느꼈던 불만, 불평, 불편함 등이 누가 나를 힘들게 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삶의 방식이 내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부과된 것을 무리하게 따라가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목표가 아니었고 이 사회가 부과하는 일괄적 목표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생활, 취향, 삶의 방식 등을 다시 찾고 만들 필요가 있다. 인생의 중반기에 그것을 알아차리고 찾지 않았다면 끝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을 것 같았다.

   

외부에서 부과하는 무리한 목표가 나의 것에 부합하지 않을 때 나는 힘들었고 그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정도의 의식은 있었다. 그래서 고 3 때 부모님이 만족할 만한 적당한 대학에 갈 정도만 해서 날 참견하지 못하게 하고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기억이 난다. 그래서 대학을 정할 때도 전공을 정할 때도 내 목소리 하나도 내지 않고 그냥 엄마가 원하는 대학과 과를 갔다. 왜냐면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고 내가 목소리를 내도 내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고 그냥 미리 포기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공부도 안 하고 소심한 일탈을 했다. 술을 마시고 시험을 엉망으로 보고 수업에 빠지고, 그건 비로소 나의 자율성을 시도하는 시작이었다. 만 2세에 시도해봐야 할 자율성의 시도를 20세가 되어서 시작했다. 에릭슨의 심리 사회성 발달에 따르면 만 2세 때 자율성을 시험해보는 시기고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자율성이 잘 발달되지 못하면 수치심과 의심이 발달하게 된다고 한다. 만 2세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싫어", 와 "내가"라는 말이다. 자율성을 실험하면서 어른들이 보기에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 시기인 것이다. 그 시기에 미쳐 자율성을 발달시키지 못한  많은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자율성을 시도하는 소심한 일탈을 하느라 얼마나 긴 시간을 탕진하는지...

   

유아교육을 전공하면서 자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고 내 인생을 돌아보고 나의 시도는 20세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50대가 다 되어서 알았다. 그때 내가 목적도 없이 수업을 빠지고 학점을 엉망으로 받고 하면서 4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거를 찾고 있었다. 친구와는 술 마시며 해적이 되고 싶네, 어쩌고 하면서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막연한 자유를 꿈꿨다. 술을 마시면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렇게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나마 안전한 일탈이 그 정도였다.  


   

아이들이 사소한 일탈을 할 때는 자신의 자발성을 시도하는 것이니 그냥 모른 척해주고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고 한다. < 엄마 심리 수업>


부모가 통제하고 자율성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을 때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아이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감지하지만 그게 뭔지 모른 채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집안의 쓰레기와 마음의 쓰레기를 모두 치우자 본질적인 것이 드러났다. 잊고 있었던 나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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