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성격이 급한 편이다. 그래서 뭐든지 빠르긴 하다. 빠르게 여러 일을 처리해 내지만 늘 완성도는 떨어졌다. 책임감 강한 모범생 기질이 있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 그 일들을 빨리 해버리는 습관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삶이 숙제처럼 느껴지고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늘 지쳐있었다.
때마다 생겨나는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처리하느라 인생을 즐기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는 매일 해야 하는 숙제와 공부를 대충이라도 해 놔야 마음이 편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 키우고 살림에 일까지 하다 보니 매일 해야 할 숙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강의준비와 식사준비, 아이들 씻기고 챙기는 일, 청소와 매주 해야 하는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 등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더미 같은 '해야 하는 일 리스트'를 해결하느라 삶이 통째로 희미하게 날아가 버린 느낌이다.
겨우 겨우 그 일들을 하며 살아왔지만 그 순간에 정성을 들이고 자세히 바라보며 즐기지는 못했다. 책임감과 의무감으로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삶의 방식으로는 그저 할 일을 했다는 개운함 외에 남는 것이 없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기억나는 일들이 별로 없다. 지금에서야 중요한 게 빠졌다는 걸 알게 됐다.
워킹 맘의 하루가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사실 그렇게라도 해낸 것도 대견하다 할 수 있지만 마음을 조금만 더 열어놨다면 빛나는 순간들을 더 많이 캐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이 보석같이 빛나던 그 시절의 기억이 훨씬 더 많았을 테고, 그 여행들이 더 행복했을 텐데, 지나고 보니 너무도 젊고 빛났던 3, 40대의 나를 너무나 함부로 대했던 거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해내는 일들은 나를 소진시켰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은 메말라갔다. 남는 시간엔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거나 사람들 만나 술 마시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상황을 자세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없었다는 거다. 스스로 짊어진 의무감과 책임감의 굴레가 너무 무겁다 보니 그저 해내는 데에만 의미를 두었다. 나를 삶 속에 깊이 침투시키지 못했고 그저 일을 완수하는 로봇처럼 살았다.
삶의 순간순간에 나를 연결시키지 못했고 내 진짜 삶은 어디 저 멀리 다른 세상에 잠시 두고 온 거처럼 살았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돌아갈 아주 먼 곳에. 그런 자세로 살다 보니 세상을 디테일하게 보지 못했다
젊었을 때 저 나이에도 재밌는 게 있을까라고 생각한 50대인 지금 가장 빛나고 행복감과 감사함으로 가득 찬 느낌이 든다. 내 삶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걸 깨닫고 작은 것들을 정성껏 볼 수 있게 되고 삶의 모든 순간에 디테일을 더할 수 있게 되고부터인 거 같다.
김하나 작가의 <금빛 종소리>라는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됐다. '금빛 종소리'라는 책의 제목을 선택한 이유를 알려주는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구절이 나에게도 크게 와닿았다.
“다시 출발하기 전 우리는 오랫동안 풀밭에 앉아 과일과 빵과 초콜릿을 먹었는데, 우리가 앉아 있는 풀밭까지 약하기는 하지만 조밀한 금속성 생틸레스 종소리가 수평으로 들려왔다. 종소리는 공기 속을 오래 지나왔는데도 공기에 섞이지 않고, 그 모든 연속적인 울림으로 골이 진채, 우리 발아래 꽃들을 스칠 듯 지나가며 파르르 떨었다”라는 구절이다.
작가는 고전 속 이야기들이 금빛 종소리 같은 역할을 하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와닿는다는 의미로 이 구절을 소개한 거 같은데 나는 저 묘사의 디테일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2권까지 읽었지만 저 구절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줄거리 따라가기 바빴고 자세한 묘사와 긴 상황 설명을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겨우겨우 읽다 포기했었는데 김하나 작가님 덕분에 그 구절을 다시 한번 음미할 기회를 선물 받고 디테일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었다.
저 구절을 잃는 순간 종소리마저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느낌이 들었다. 청각적 자극이 시각적으로 보이면서 내가 몰랐던 세계의 또 하나의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장면을 그려보라는 듯 현실적으로 그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더 많이 연습하고 능숙해져서 그 장면을 그리고 싶은 꿈이 생겼다.
책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런 멋진 꿈이 자주 생겨난다. 머릿속을 그 꿈들로 채우면서 매일 할 일을 늘려가는 지금의 세밀한 삶이 마음에 든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진 지금이 제대로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남의 시선에 맞춰진 것이 아닌 나만의 스케줄대로 목표와 꿈을 따라가는 지금의 생활은 더 이상 권태롭지도 허무하지도 않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일, 걱정과 죄책감 같은 것들도 이제는 내 머릿속을 오랜 시간 채우지 못한다. 잠시 그 생각들이 들어와도 이내 나의 작고 아름다운 꿈을 떠올리면 어느새 푹 빠져들어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보다야 할 일도 줄고 시간도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삶을 굴려가야 할 일상의 일들은 존재한다. 네 식구가 사는 한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일들은 있지만 그 스트레스가 나의 일들로 다 풀리기에 전처럼 텔레비전을 그렇게 많이 볼 필요도,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실 필요도, 친구를 자주 많나 수다를 떨어야 할 필요도 없다.
책 속의 아름다운 구절로 내 머릿속을 한동안 채울 수 있고, 언제가 본 아름다운 장면에 대한 생각을 이리저리 해보면서 어떻게 그려볼까, 어떤 글을 써볼까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되고 먹고 치우고 새로운 책을 읽다 보석 같은 문구를 발견하다 잠이 든다.
아침이 돼 다시 그 구절을 옮겨 적으며 마음 가득 행복감이 차오르고 빛나는 봄날의 햇살을 보며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궁리한다. 어제도 날씨가 너무 좋아 얼리버드로 예매해 둔 <알폰스 무하> 전시회를 보고 왔다.
순정만화 주인공들 같기도 하고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 같은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으로 유명한 무하의 전시회라 기대가 컸다. 그림들을 보니 이 작가도 디테일에 목숨 건 사람 같았다. 전 같으며 전체적인 모습만 보고 ‘아 예쁘다, 아름답다’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림을 그리고부터는 구석의 작은 장식까지 자세히 보게 된다. 눈을 어떻게 그렸는지 내가 어려워하는 손과 몸선을 어떻게 그렸는지 배경의 장식은 어떤 것들인지 자세히 보게 된다.
그림 전시를 보고 근처 백화점에서 예쁜 옷도 실컷 구경하고 카렌다쉬 필기구 매장에도 갔다. 사고 싶지만 너무 비싸 섣불리 사기 꺼려진 수성 크레용을 체험해보고 싶어서였다. 수성크레용이라 붓에 물을 묻혀 칠하면 수채화처럼 표현되는 제품이다. 크레용으로 되어있어 색칠하기는 편한데 수채화 느낌까지 낼 수 있어 궁금했는데 체험해 보니 생각보다 좋아서 당장 샀다.
오늘은 어제 카페에서 메모한 내용으로 글을 쓰러 나왔다. 매일매일 선명해진 눈으로 보는 세상의 즐거움을 알게 된 지금의 생활이 좋다. 이런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기쁘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향에 맞는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는 즐거움, 예쁜 잔과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행복감, 취향에 맞게 꾸며진 집에서 보내는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는 하루, 좋아하는 전시회나 영화를 보러 가는 가벼운 산책길, 멋진 문장을 수집하는 즐거움, 그 문장을 음미할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을 때의 희열, 멋진 장면을 그릴 준비를 하며 분주해진 머릿속과 드디어 그릴 때의 몰입감은 내 삶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 형태를 만들어주고 여러 겹의 다채로움으로 두께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