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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어도 계속되는

by 박수종

거의 이주 만에 산책 겸 글을 쓰러 나왔다. 감기에 비염까지 더해져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사이 봄은 어느새 깊숙이 와 있었다. 열도 없고 감기가 심하진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새 비염이 생겨 코가 막혀 머리가 멍해지고 전신에 힘이 빠져 외출하기가 힘들었다.


하루도 집에 못 있는 성격인데 거의 2주간 집에만 있었다. 나아지고는 있어도 집에서 그냥 쉬고 싶을 만큼 아직 힘은 없었지만 나와 보니 세상의 배경화면이 바뀌어있었다. 미세먼지는 심하고 상쾌한 봄바람이 아닌 때 이른 더위에 갑갑한 느낌은 들지만 봄은 봄이었다.


사람들의 옷 차람이 가벼워졌고 지하철 역 근처 좌판에 꽃을 옮기는 아저씨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사람들도 잠시나마 꽃에 눈길을 주며 지나간다. 산불은 잡힐 기미가 안 보이고 미세먼지는 폭탄 수준으로 매일매일 우리를 괴롭히고 나라 돌아가는 상황은 답답하지만 봄은 오고 있었다.


밖에 나오진 못했어도 꽃을 보고 싶은 마음에 작년에 찍어두었던 꽃 사진을 연달아 그렸다. 실제로 보는 것도 아닌데 색이 고운 예쁜 꽃들을 그리자 마음만은 화사해졌다. 실제 꽃 못지않게 기분이 좋았다.


전엔 몰랐던 이런 기분이 신기하기만 하다. 내 손으로 뚝딱 만들어내는 예쁜 것들이 주는 기쁨이 정말 크다. 아파도 그림은 그리고 싶어 쉬엄쉬엄 이틀에 한 장 정도 그렸다. 집에서 그림만 그리고 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게 정말 재밌다. 이런 재미를 모르고 살 뻔했는데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어디를 가도 그릴 것들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나의 마음을 건드리는 물건 하나, 꽃 한 송이, 집과 상점들, 좋아해서 계속 찾아다니고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을 꽉 붙잡아 현실에 존재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얼마 전 경동 스타벅스와 금성전파사라는 곳에 갔을 때도 그랬다. 경동 스타벅스는 극장을 개조해서 관람석의 형태를 그대도 보존해 놓은 인테리어가 멋졌다. 바로 옆에 있는 금성전파사 새로 고침이라는 곳에는 금성에서 7,80년대에 만든 어릴 때 보던 가전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걸 보자 어린 시절로 순간이동하면서 그 당시 우리 집 풍경과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올랐다.


특히 카세트플레이어를 보는 순간 국민하고 6학년부터 매일 듣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팝송과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 깔고 누워 귤 까먹으며 보던 잡지책들도 생각났다.


너무 좋아했던 잡지책들! 국민학교 때는 소년중앙이나 어깨동무를 봤고 조금 더 커서는 소녀시대, 여학생 같은 소녀 대상 잡지를 봤다. 고등학생 무렵에는 스크린이라는 영화잡지가 나왔는데 너무 좋아해서 발간하는 날이면 집 가까이에 있던 서점에 하루 종일 들락거렸다. 등교하면서 전시대에 나왔는지 쓱 보고 안 나왔으면 하교하면서 또 가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잡지책 나오는 날만 눈 빠지게 기다렸다. 드디어 그달의 잡지를 손에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맛있는 간식을 아껴먹듯 한 장 한 장 정독하고 보고 또 보곤 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개봉하지 않은 새로운 영화들에 대한 상상으로 마음이 가득 차곤 했다.


그 카세트플레이어를 보는 순간 그 시절 벅차던 마음과 장면들이 떠올라 그림으로 그렸다. 누런색 장판이 깔린 방에서 엄마가 깨끗하게 시친 이불을 덮고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꿈속에서 살던 10대 시절 그림이다.


간단히 스케치해 놓았던 것에 하나하나 신경 써서 새롭게 그렸다. 이불의 무늬와 벽지는 평소 좋아하는 퀼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롭게 그렸다. 진짜 퀼트 이불은 없었고 그냥 옛날 호청으로 시친 솜이불이나 차렵이불이었겠지만 상상을 더해 그렸다. 그 당시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는 늘 마당에 묶여있었지만 방에 데려오고 싶었던 마음을 담았다.


저번 글에서 아직 스케치만 했던 또 다른 상상화도 완성했다. 꿈에 그리는 유럽풍의 도서관이다. 상상으로 그려 뭔가 어설프고 이상하기도 하지만 어린 소녀가 좋아하는 강아지와 파랑새와 함께 멋진 도서관에 있는 장면은 오랜 상상 속 이미지다. 유럽도 아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서관에 있는 어린 내 모습을 구현해 냈다는 게 벅차다.


뭔가를 보고 그리는 것보다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오랜 시간 내 머릿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던 이미지를 이렇게라도 꺼내는 일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일이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것에 형태를 부여해 살려내는 일은 생각보다 멋졌다. 그냥 그 자체로 보상을 받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을 부러워만 했는데 작품 수준은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들이 느끼는 그 행복감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던 그 열정을 나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거 같아 기쁘다. 좋아하니까 늘 생각하고 따라 하다 보니 차츰 변해 가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랜마 모지스처럼 100세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는 열정과 유코 히구치 같이 좋아하는 것에 자신의 색을 입혀 새롭게 표현해 내는 능력을 닮고 싶었다. 불편한 신체와 상황에 대한 불평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세상에 감사하며 사랑을 표현했던 모드 루이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고 잘 못 하더라도 용기를 내 행동하다 보니 조금씩 싹을 틔우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세상에 대한 불평과 불만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하며 아름답게 살아나가고 싶은 꿈을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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