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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롭게 싫어하는 사람

-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을 읽고

by 박수종

엄지혜 작가의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책이 있다. 이 작가는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을 까다롭고 관찰하고 알아봐 주는 섬세한 사람일 것이다. 읽은 지 꽤 시간이 지나서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이 제목만은 자주 생각나는 걸 보니 아주 잘 지은 거 같다.


어릴 땐 좋아하는 사람을 까다롭게 고르지 않았다. 다가오는 사람과는 거의 다 친하게 지냈고 착하지만 지루한 사람보다는 좀 별나도 재밌는 사람을 좋아했다. 같이 놀 때 재밌으면 됐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불편함도 잘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어 좀 이상한데?’ ‘좀 쎄한데“ 하면서도 그냥 넘기곤 했다. 그렇게 이상함과 불편함이 감지돼도 최소 20년 이상을 두고 보는 편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 그 불편함이 한계치까지 차오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될 때까지 안일하게 대처했다. 아니 대처랄 것도 없이 혼자 속을 끓이고 스트레스받는 게 다였다.


그래선지 그 책과 반대로 ‘까다롭게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자꾸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제는 내가 참을 수 없는 사람의 특징을 한 번 까다롭게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처음에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이면 이상한 말이나 행동도 그냥 ‘사정이 있겠지,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기게 된다.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며칠씩 불편했는데도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거나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참 예민하고 열등감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고 자책하곤 했었다.


그렇게 자신을 반성하고 맞춰보려 해도 해결되지 않는 불편함에 힘겨워 심리학책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나름대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굳이 감정적 어려움을 드려내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 만큼 지혜롭거나 그냥 무시하고 넘길 만큼 자신을 잘 아는 강한 사람이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는 과감하게 거리를 둘 줄 아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불편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정리가 되면서 이제는 내 바운더리에 사람을 들일 때는 좀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편함이 감지됐을 때 바로 그 지점에서 내가 왜 불편한지 깊이 있게 성찰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잘못된 편견이 있었다면 그걸 바로 잡거나 열등감이나 오래된 인정 욕구 같은 것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사람이라면 한동안 거리를 두면서 그 마음을 시간을 들여 잘 돌보기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특히 나를 힘들게 하는 싫은 사람을 까다롭게 생각해 보게 됐다. 그는 고칠 수 없으니 내가 왜 그 지점이 불편하고 싫은지 많은 생각을 했다. 공통적인 것이 도출됐다.


첫 번째로 싫어하는 사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감정을 손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척, 고상한 척, 착한 척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마음속에는 치사함, 옹졸함, 질투심, 열등감 같은 감정이 하나도 없는 듯 좋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참기 어렵다. 친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인간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할 때 갑자기 한 단계 올라서 있는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그런 감정 같은 건 한 번도 느껴본 적도 없는 척, 착한 척하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거 같은 누구는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닌 감정처리법을 이야기한다.


부모님을 모시면서 생기는 이중적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자신은 실제로 부모님을 모신적도 없으면서 ‘늙은 부모님이 안 됐지 ‘라고 하면서 그런 따뜻한 마음만 품는 자신의 모습이 감격에 겨운 듯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그러려니 이해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감정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 앞에서 갑자기 선을 긋고 뒤로 물러나 자신은 그런 저급한 감정 따위는 초월한 대단한 도덕적 사람인 양, 성인군자인 척하는 사람들과는 이야기할수록 마음이 멀어져 간다.


남 앞에서 얼마든지 극복한 척하고 좋은 말만 할 수도 있는데 난 그런 사람을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당신도 좀 솔직해져 보라고 속으로 외치고. 때로는 그러는 게 보기 싫어 일부러 감정을 더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 의기양양해하며 방어막을 치고 한 발 뒤로 물러나 고상한 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도발한 게 문제면서 그런 대화를 하고 돌아오면 기분이 저 바닥으로 처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나도 그런 사람인척 하면 된다. 그러면 더 편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근본적으로 그런 척을 못하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길 원하는 사람이다. 그런 것만이 진짜 관계라고 생각했다.


남 앞에서 얼마든지 극복한 척 좋은 말만 할 수 있는데 난 그러지 못한 채 나의 그림자를 자주 드러낸다. 그런 것을 빨리 파악했더라면 적당히 그들이 원하는 말들을 해주고 그냥 그런 얕은 관계를 유지하면 되는 거였다. 안 그런 쳑 좋은 말만 늘어놓을 때 받은 칭찬의 단물을 빨아들이는 일에 중독된 그들을 이해하며 그냥 그렇게 지내면 되는 거였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또 다른 큰 특징은 누군가 괴로워하는 지점에 빗대어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이다.


자식 때문에 힘든 사람 앞에서 자식 자랑을 하고 남편과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친구 앞에서 자신의 금슬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자주 이사해야 하는 전세살이에 지친 사람 앞에서 자신은 그런 일 한 번 없이 전세 한 번 살다 바로 집을 샀다고 말간 얼굴로 이야기하는 그는 나를 위로하는 건지 그러지 않은 자신이 다행이라는 건지 헷갈렸었다.


사실은 그 모든 게 다 너와는 다르게 내가 잘나서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이야기하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바로 말끝에 그러는 건 아니라 빨리 파악하지 못했을 때는 자랑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을까 생각했는데 사실은 대화의 모든 것이 자랑이었다.


그러는 게 꼴 보기 싫어 전세살이의 힘든 점을 더 강조해서 이야기하고 자기 자식은 뭐도 선물해 주고 이렇게 저렇게 해준다고 하면 사실 내 자식도 그 정도는 하는데도 더 무심하고 철부지인 거처럼 이야기하고, 남편 자랑을 하면 내 남편의 이상한 점을 크게 이야기하는 나도 많이 삐뚤어진 사람인 거 같다.


내가 누구에게나 그러는 건 아니다. 정말 좋은 일 앞에서 순수하게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나도 믿을만한 사람들 앞에서는 좋은 일이 생기면 소식을 알리고 축하를 받는다. 유난히 방어적으로 자랑 질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러는 거다. 유난히 두껍고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들을 참지 못한다.


이렇게 까다롭게 싫어하는 이유를 쓰다 보니 내 속에도 그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도덕적이고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다 있는데 죽어도 남을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좋은 점만 보이고 감추는 가식적인 사람들이 싫은 거였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그런 면을 깨달을 기회가 계속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걸 알아차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그의 인생 과제일 것이다. 나도 남을 탓하고 고쳐주고 싶은 마음을 멈춰야 한다. 그들을 통해 알게 된 내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집중해야 한다. 그들을 가볍게 스쳐지나 칠 수 있는 내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나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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