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자신감이 떨어지는 시기와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자신감이 채워지는 날이 있다. 오늘은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날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는 시간 자체의 충족감으로 다 됐다고 생각하는 날이 많지만 오늘처럼 다 부질없게 느껴지는 날이 찾아오면 난 뭘 해야 할까?
그래도 계속 쌓아나가야겠지?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배우고자 한 일이니까. 이렇게 쌓아나가면 뭐가 될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늦었지만 해보고 싶다. 나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뭐가 될지 궁금하다.
평생 어떤 일을 정성을 들여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의 시도로 포기하고 만 일들은 너무 많다. 아니 거의 모든 일을 그렇게 놔버렸다. 피아노 배우는 일, 기타를 배우고 싶어 사놓고 한두 번 해보고 그만둔 일, 그림을 그리다 색칠에서 망치고 난 후 두 번 다시 물감을 꺼내지 않은 일, 글을 써보다 내 글에 혐오감이 생겨 그만둔 일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렇게 꾸준히 3년 넘게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리고 1년 넘게 매주 그림을 그린 일은 내 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한 겹 한 겹 즐겁게 쌓아나가다가도 그 얇은 한 겹이 너무 하찮아 보이고 가벼워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을 마주하곤 한다. 그것들이 쌓여서 어느 날 아우라를 갖게 될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먹구름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한다.
그럴 땐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집들, 골목길을 생각한다. 남들 눈엔 하찮아 보이고 그저 낡아빠진 재개발해야 하는 동네처럼 보여도 그곳에 쌓인 세월과 거기에 살아온 사람들의 희로애락의 결이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가치가 생겨난다는 걸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그렇게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해 낸다.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것들은 그런 사물만이 아닐 것이다. 뭔가에 정성을 들이고 그만큼 시간을 쓰고 애정을 쏟는다면 반드시 그것만의 가치가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을 붙잡아야 한다.
허무감에 빠져 텅 빈 마음으로 손쉬운 놀이와 감각적 쾌락에 빠져드는 일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렇게 계속 원점으로 돌아가는 삶은 후회뿐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얇은 한 겹을 쌓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그림을 그리고부터 영화나 애니메이션 만드는 사람들이 디테일에 들이는 집착에 가까운 정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단 몇 분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 수백 수 천 장의 그림과 장면이 필요하고 가장 최상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쌓는 한 올 한 올의 붓 터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카페에 앉아있다 보면 가끔 노트북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곤 하는데 내가 2~3시간 만에 글 한편을 쓰는 동안 내가 보기에는 이미 완성된 거 같은 똑같은 그림을 여전히 바라보며 다듬고 있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사람들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정성과 혼신의 에너지가 쌓여갈 때 비로소 뭔가가 시작되는 거 같다. 끝내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는 만족감과 기쁨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의 대답을 듣지 못한다면 많이 힘들 거 같다. 나처럼 늦은 나이에 취미로 하는 사람도 가끔 이런 기분에 빠져드는데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대단한 용기고 그 일에 대한 믿음 없이는 힘든 일이다.
성공한 누군가의 모습만을 봤을 때는 세상의 찬사와 인정으로 얼마나 쉽게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전 세기를 살았던 화가치고는 장수한 몇몇 예술가의 생을 찾아봤다. 앙리 마티스의 자유로워 보이는 강렬한 색채의 그림을 좋아한다. 자유롭게 색을 쓰면서도 인정받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작품을 남긴 걸 보면 얼마나 편안하게 작품 활동을 한 걸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1990년에 한 미술사학자가 그의 고향인 프랑스 북부의 시골 마을에서 그를 여전히 세 번 실패한 패배자라고 불렀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를 기억하는 고향의 노인들은 아직도 그를 아버지 가게도 물려받지 못했고 공부에도 실패했고 화가가 돼서도 실패한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티스는 신동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이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몸이 허약해 1년간 병원에서 요양하던 시절에 어머니가 선물한 미술 도구 상자로 그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20대 내내 별로 주목받지 못했고 작품도 잘 팔리지 않았다. 화가의 길에 대한 용기가 사라지고 의심과 자기혐오가 마티스를 좀먹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뭔가에 열중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법이라 그 빛을 알아보고 돕는 사람도 많았다.
그의 아내 아멜리에를 만나면서 자신만의 색을 찾게 되었다. 이후 우리가 아는 야수파의 대표자가 되면서 승승장구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72세 때에는 장루를 단 채 누워서 지내야 했다. 몸이 힘들다 보니 붓을 잡기 힘들어 이때부터 가위를 들고 종이를 오려 붙이는 작품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어린아이 같은 작품의 배경에 그런 이유가 있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84세에 세상을 떠난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가위와 색종이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다 보면 지금 나의 징징거림과 성급함은 참 하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처럼 재능도 없으면서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좌절하는 조급함에서 그 차이가 생겨나는 거 같다.
타고난 재능과 사람들 눈에 일찍 띄어서 성공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그 안에 보이지 않게 쌓아온 인고의 시간에는 관심이 없다. 달콤한 결실에만 눈이 멀어 쉽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환경을 비관한다.
이런 글이라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 회의감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기는 힘들다. 사람 사는 일은 참 비슷한 거 같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의 삶 속에도 우리는 다 알지 못하는 굴곡이 있었고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다는 걸 자주 잊는다.
그 사실을 기억하면 나의 현실에 쉽게 절망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을 수 있게 되는 거 같다. 오늘도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정성껏 살아나가는 데에만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해 본다.
* 마티스 이야기는 성수영의 arte칼럼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