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아이돌 팬의 이야기
- 영화 <성덕>의 기사를 본 후
어느 성공한 덕후가 영화감독이 되어 <성덕>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봤다. 그런데 그냥 팬이 아니라 누구의 팬이라 말하기 힘들어진 범죄자로 추락한 연예인 팬의 마음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한다. 영화는 비록 보지 못했지만 그 마음이라면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라 반가워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 감독은 정준영의 팬이었다.
내가 누구의 팬이었냐면 밝히기가 꺼려진다. 누구보다 잘 나갈 때는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는데 사실 40이 넘은 나이에 하는 아이돌 팬질이라 자랑스럽지는 않았지만 팬심이 넘쳐나서 숨길수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박유천의 흔한 아줌마 팬이었다. 2010년 우연히 <성균관 스캔들>을 봤다. 1회도 아니었고 10회였나 우연히 한 장면을 봤는데 갓을 쓴 박유천이 분한 이선준에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원래 사극을 잘 못 보는데 그때부터 같은 회를 반복해서 보고 재방송하면 또 보는 지경이 되었다. 지금은 팔리지도 않아 분리수거 때 다 갖다 버렸지만 DVD까지 구입했었다.
그렇게 빠져들었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그냥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박유천이 속해 있던 동방신기, JYJ의 멤버로 이루어놓은 어마어마한 결과물들은 날 잠 못 들게 했고 25세밖에 되지 않은 청년의 창작물은 몇 달을 밤을 새고 파고 파도 나오는 화수분이었다.
또 그의 인생 서사는 어떤가? 전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텔레비전에 한 번 나오지 못하는 부당한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팬들은 “당신의 청춘을 응원한다”며 모금을 해서 버스에 응원문구를 달고 그들의 힘이 되어 주었다. 그 그룹이 내놓은 노래들은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단숨에 없애주었다.
난 공일오비나 들국화, 동물원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아이돌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냥 잘생긴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그들의 무대를 끝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공연은 무대예술 그 자체였다. 합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군무는 너무 멋졌고, 같은 곡이지만 무대마다 그 느낌의 차이까지 알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노래 중 <Love in the ice>, <Long way>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다니. 이렇게 완벽한 화음이 있다니 놀라웠다. 아이돌이라고 지금까지 무시하고 지나간 한국에서의 무대를 못 본 게 너무도 아쉬웠다.
텔레비전에서 그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그 흔했던 기회를 날려버렸다니 하며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성균관 스캔들>의 성공 이후 그들만의 팬덤에서 나 같은 일반인들까지 팬으로 불러 모으며 드라마에 캐스팅되어 계속 볼 수 있었다. TV에는 못 나왔지만 계속 콘서트도 하고 앨범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해서 팬질을 하기에 하루가 모자를 지경이었다.
아무리 얼굴이 잘 생기고 멋져도 본업을 못하는 연예인은 금방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연기도 잘하고 무대에서 가수로서의 매력이 넘쳐나서 헤어 나오기 힘든 아티스트였다. 같은 그룹의 김재중, 김준수의 매력도 어마어마해서 세 명의 드라마와 음악을 즐기며 평생 행복해할 예정이었다. 2016년에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공중파에 나오지 못하는 그가 뉴스에 나왔다. 거론하기도 싫은 죄목으로 그 이후는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추문에 추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토록 응원했는데 그토록 그가 나온 드라마와 노래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어디 가서 팬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에 그들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일본 활동 시절 앨범들, 드라마 DVD는 다 갖다 버렸다. TV 뉴스에 나오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냥 잊고 있다가 <성덕>이라는 영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다시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노래들을 다시 들어보았다. 노래는 여전히 아름답고 멋졌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고 좋아했던 시간들도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가 되고 보니 인생에서 무언가를 그토록 좋아할 수 있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덕분에 등장 배우가 나오는 영화 시사회에도 가보고, 새롭게 알게 된 일본 발매 CD를 구하기 위해 직구도 해보고, 그들의 콘서트 공연을 보기 위해 디시인사이드라는 사이트에 드나드는 일도 해 봤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세상을 넓게 보는 힘을 갖게 해 준다. 내가 갖고 있던 아이돌에 대한 편견, 아이돌 팬덤에 대한 편견을 깨 주었다. 예쁘고 잘생긴 얼굴만을 무기로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춤과 노래에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 스우파도 열심히 보게 됐고 이름도 모르는 아이돌의 무대도 관심 있게 본다. 그들이 얼마나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는지 넓어진 안목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이제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행복할지 일상의 힘듦에 얼마나 위로를 받을지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이 부럽다.
JYJ 팬들은 스스로를 불가촉천민이라고 일컫는다. 어디 가서 아이돌 팬이라고 하면 그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이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자기 연예인밖에 모르는 빠순이로 본다는 거다. 지각없이 자신의 연예인을 감싸는 극성맞는 집단이라는 인식이다. 특히 박유천이 속해있던 동방신기, JYJ 팬덤의 극성스러움에 많은 사람들이 질려했고 그런 편견들이 있었다.
내가 오랜 시간 봐온 바로는 어느 집단에나 있는 만큼의 또라이와 사생팬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세계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만으로 모인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그 하나의 공통점으로 만나자마자 나이가 어리던 많던 상관없이 이야기를 건네고 자신이 만든 기념품들을 나누며 좋아하는 모습들은 인상 깊었다. 그 순수한 마음들은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빅뱅을 좋아했던 딸도 정준영을 좋아했던 <성덕>의 감독도 박유천을 좋아했던 나도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그 마음은 훼손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