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마음 달래보기

- 김영민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고

by 박수종

날씨가 추워지고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될 예정이라 그런지 자주 우울하다. 사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알고 애써 좋은 점을 찾고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주 우울해진다.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것만이 진실임이 더욱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지만 누구에게나 묵직하게 들어있는 질문일 것이다. 그걸 굳이 입에서 꺼내 표현하지 않을 뿐.


이 메마른 느낌들이 요즘 부쩍 나를 쫓아다닌다. 애써 책을 읽고 좋은 말들을 폭포수 퍼붓듯이 퍼부어도 마음이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다. 내가 세속적 성공을 하고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으면 나아질까?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만 나아질까?


이제 어른이고 충분히 삶을 세워나갈 수 있다고,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나아간다. 그러다가도 잠들기 전, 아침에 깨어날 때 서글픈 감정과 가슴을 죄어오는 느낌이 든다. 그때가 잠재의식에 좋은 생각을 새겨 넣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라던데 애쓰지 않으면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그런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은 날카로운 마음이다.


그건 심리학적인 결론일까? 어릴 때부터 충만한 사랑을 받고 아무 상처 없이 결핍 없이 자랐다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거였을까? 아니면 생리학적 결론일까? 갱년기의 부족한 에스트로겐 때문일까?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50대 중반의 삶도 쉽지 않다. 좀 지혜로워졌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이럴 때 어쩔 수 없이 또 책에 기대게 된다. 나만 그런 마음이 아니 구나라는 공감, 즉각적인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선택한 책 김영민의 <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제목과는 다르게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라는 예술가를 소개하면서 “ 실생활에 필요한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공들인 노력, 그리하여 일상의 디테일이 깃든 작은 예술과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의 노동을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든다. 구원은 비천하고 무의미한 노동을 즐길 만한 노동으로 만드는 데서 올 것이다”라는 말들이 내 주변에서 의미를 찾을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윌리엄 모리스의 벽지 그림을 찾아봤다.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늘 접하는 것이 무의미한 삶을 구한다는 메시지에 조금 숨이 쉬어진다. 검색해보니 윌리엄 모리스 컬러링 북도 있었다. 아름다운 문양들을 색칠할 기대감으로 가슴이 조금 설렌다.

가니콩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윌리엄 모리스 작품


“보고 나면 더 이상 보기 전 마음이 아니게끔 만드는 영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퍼스트 카우>의 느림의 미학을 소개한다. 이 영화 감독인 켈리 라이카트의 영화를 보는 일은 “ 끝없이 독촉해대는 생활의 속도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몸짓이다. 구체성을 무시한 난폭한 일반화에 저항하는 훈련이다.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구체적인 양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 그것은 신산한 삶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레시피이기도 하다.”라는 이야기가 거친 마음에 물을 주고 다시 작은 싹이 돋아나는 느낌을 만들어 준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허무를 느끼고 인식하면서도 자기 방식대로 인생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처럼 나도 예쁜 꽃들과 잘 다듬어진 나무들로 가득 찬 정원 같은 내면을 갖고 싶다. 언제나 들어가면 따먹을 수 있는 잘 익은 열매들이 있고 계절마다 그 시절의 꽃들이 만개해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싶다. 나의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해 노력해본다. 내면 아이 치유에 관한 책, 수치심의 치유라는 책, 잠재의식에 긍정적 생각을 새기라는 책들을 계속 사서 본다. 그러면 나의 내면에도 작은 싹이 피어날 수 있을까 해서.


어둡고 싫은 이 마음들이 사라진 뒤쪽에 그런 정원이 숨어있으리라는 기대로 노력해본다. 마음껏 퍼 올릴 수 있는 우물이 있고 새들과 작은 동물들이 놀러오는 풍요로운 정원을 만나고 싶다. 나는 아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늘 뭔가 어설프다고 느꼈는데 나에게도 어설프지만 그것대로 가치 있고 예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피어나기도 한다.


훌륭한 작가들이 쓴 군더더기 없는 글들도 읽어본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들에서 나온 진실된 글을 좋아한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담백하지만 힘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꾼다. 내 인생의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글을 쓰면서 단단하게 모아지고 빛이 비추는 느낌이다. 정말 중요한 조각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데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조각을 찾게 될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그때가 되면 마음이 조금 채워질까?


갱년기라는 핑계로 속 좁은 불평불만도 허무주의에 빠진 제2의 사춘기 같은 마음도 막 드러내고 징징대고 싶다. 이렇게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도 친구들 만나면 깔깔거리고 웃고 맛있는 음식과 맥주만 있으면 잠깐 마음이 풀리기도 하니 아직은 다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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