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에서 두려움을 마주쳤다.
- <장줄리앙 전시회>을 보고
최근에 아들과 전시회에 여러 번 다녀왔다. 그림을 잘 모르지만 그림 보는 것은 좋아한다. 유명한 그림보다는 그냥 나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작품을 보는 정도다. 친구들과 본 합스부르크가 의 그림들은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여름에 친구들과 시네 도슨트도 두 달 정도 들었는데 전시회에서 그림들을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른 장점이 있었다. 커다란 화면으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설명을 들으니 그림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 점도 좋았다. 그런 계기로 전시회에 좀 다녀야겠구나 생각했지만 실제로 가지지 않았는데 아들이 가자고 하기에 냉큼 따라나섰다.
나도 좋았다. 친구들과 가면 온전히 감상하기 힘들고 사실 친구들과는 수다 떠는 게 제일 좋다. 뭔가를 감상하는 일은 혼자 하거나 가족이 제일 편하다. 아이도 그런 마음인지 엄마를 찾아주었다. 전시회 티켓과 맛있는 점심과 디저트까지 해결되니 그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처음에 간 전시회는 <장 줄리앙> 전이었다. 만화 같은 화풍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좋다 길래 예매했다. 그런 마음이었는데 막상 전시회에서 그의 수첩에 빼곡히 담긴 펜화들과 수채화를 보니 내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단순해 보이는 만화 같은 화풍이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리고 시도해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본인만의 독특한 화풍과 캐릭터를 찾아낸 것이리라. 수십 권은 돼 보이는 그 수첩들을 채우면서 보냈을 그의 풍요로운 시간들이 부러웠다.
수십 점의 드로잉화, 그림책, 캐릭터가 아닌 정통 그림들, 그의 캐릭터를 활용한 생활용품들과 콜라보한 의류들 무궁무진한 작품세계가 펼쳐졌다. 전시회에 그가 와서 직접 그렸다는 그림들도 좋았다.
그의 작품 중 츄바카 같이 생긴 사람 크기의 조형물이 있었다. 나에게 제일 처음 든 감정은 사람크기의 털복숭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뭔가 사람의 영혼이 깃든 거 같고 꺼림칙했다. 근데 아들은 그 츄바카를 외로움에 지친 건지 힘든 노동에 지쳤는지는 모르지만 선풍기 앞에서 늘어져 있을 때 아무도 찾지 않아 털이 자라난 것 같다고 표현을 했다. 그리고 그 털복숭이가 좋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같은 것을 보고 이렇게나 다르게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나에게 가장 많은 감정이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많은 두려움이 내 안에 생겨난 걸까? 이 두려움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긴 세월을 살아온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포식자가 날 잡으러 올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초식동물처럼 그 순간에 몰입하며 행복할 수 있는 느낌이 많이 상실된 건 아닌지 속상하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버림>이라는 책에서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등은 에너지레벨이 낮아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식 수준이고 용기부터 시작되는 긍정적 의식 수준으로 자발성, 사랑, 기쁨 등에 대한 설명을 보았다. 그 책을 읽은 뒤 두려움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게 현실적이지 않은 습관적인 거라면 놓아버리는 연습을 많이 했다.
그 연습으로 많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뭔가 낯선 상황이나 대상을 마주할 때 여전히 두려움이 가장 먼저 드러난다. 두려움에 압도되면 다채롭고 다양한 세상을 느끼고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기회를 빼앗겨버린다.
볼비의 애착이론에 따르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은 두려움으로 주변을 탐색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필요할 때 늘 엄마가 달려온다는 것, 날 위로해주고 원하는 것을 준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형성된 안정 애착의 아이는 잠시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주변을 탐색하고 알아보려는 여유가 있다. 불안정 애착인 아이는 엄마가 가까이 있어도 엄마를 떠나지 못하고 아무리 좋고 재밌는 놀잇감이 있어도 관심을 줄 에너지가 없다. 늘 관심은 엄마에게 있다. 엄마를 안전기지로 생각하지 못하기에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세상을 탐색하지 못하고 인지발달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가 불안정 애착이었을까? 애착이론에 대해 자주 강의하면서 불안정 애착인 아이들이 참 안타깝다고만 생각했지 내가 불안정 애착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대가족속에서 자라서 할머니와 고모, 삼촌들의 첫 손주, 첫 조카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서 아닐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한 번도 불안정 애착일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유난히 불안과 두려움이 많다는 생각을 해 나가다 보니 불안정 애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무남독녀였지만 엄마는 대가족의 집안일과 자주 돌아오는 제사와 시동생, 시누이 뒷바라지를 하느라 나에게까지 관심과 애정을 줄 여유가 없었다. 늘 화가 나 있었고 힘들어하셨다. 감정기복도 심하신 편이었다. 이 나이에 모든 나쁜 감정의 원인을 엄마로 돌리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됐다.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나를 알아나가고 생각하다 보면 나의 두려움의 정체도 밝혀지고 극복되리라 기대해 본다. 내가 두려움과 불안이 많을 때 아이들에게 그걸 자꾸 전달했다는 깨달음도 나의 두려움을 꼭 극복하고 싶은 중요한 이유다. 아이들이 나처럼 두려움 속에 갇혀 한정된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