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과 나누었다.

by 박수종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가끔 와인이나 맥주를 같이 마시기도 한다. 술이 들어가면 큰 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스타워즈 1 편을 보러 갔을 때 너무 좋았고 그 일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말을 했을 때 너무 의외라 놀랐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이라 의무적으로 보러 갔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실망했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사실 내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당시에 딸아이도 별 이야기가 없었고 시큰둥한 표정이었기에 잊고 있었다. 그 영화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가 그렇게 좋았다니. 아이들의 깊은 인상이 포착되는 순간은 정말 어른의 생각과는 다른가 보다. 영화 자체를 기대했다기보다 스타워즈의 프리퀄이니 보러 가자 그렇게 엄마와 둘이 덕후처럼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좋았던 거 같다. 난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해리포터 보러 갔던 일이나 놀이동산에 간 일들이 훨씬 더 인상 깊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아이의 마음속에 싹을 키워냈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그냥 평상시에 좋아서 해오던 일들 - 음악이나 영화, 책에 집중하고 정말 좋아서 즐겼던 일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취향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해주니 좋았다.


아이 둘 다 80~90년대 팝송을 잘 알고 특히 딸아이는 90년대 노래들을 좋아해서 혹시 90년대 사람이 환생한 거 아니냐는 말을 농담처럼 자주 했었다.


큰 애가 어릴 때 남편과 내가 다녔던 대학 캠퍼스에도 자주 데리고 갔었는데 그것도 좋았다고 한다. 나와 남편은 대학원까지 8년 이상을 학교에 다니다 보니 우리에게도 중요한 장소였다. 우리 인생 2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던 캠퍼스가 자주 생각났었다. 추억의 음식들이 먹고 싶어서 또 계절이 바뀔 때의 학교가 얼마나 예쁜지 알기에 데리고 갔었는데 그게 참 좋았다고 한다. 엄마 아빠의 젊은 분위기가 좋았다고.


아이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상처도 주고 잘못한 것도 많았지만 좋은 것도 주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이 일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영화, 음악,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런 것들로 내 인생을 채우는 일이 일상이었다. 늘 가까이하며 즐겼는데 아이들도 같이 행복해졌다니 한량 같은 내 인생의 취미생활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내가 무척 좋아했던 리버 피닉스에 대해서도 외모에 대한 찬양부터 그가 히피족의 아들이라 이름이 리버고 호아킨 피닉스의 형이라는 잘 알려진 이야기부터 <스탠바이미>, <허공에의 질주> 등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허공에의 질주>에서 리버 피닉스가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하는 장면, 마지막에 가족들과 이별할 때의 아름다운 장면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여주면서 흥분해서 이야기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이야기니 해도 해도 재밌었다.

리버 피닉스


둘째 아이도 최근에 리버 피닉스의 영화를 거의 다 찾아봤다고 한다. 같이 감상을 이야기하니 좋았다. 사실 나와 취향이 비슷해서 이런 영화나 음악이야기를 할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고 있는 LP나 CD를 같이 들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밀리 바닐리가 사실은 외모만 그럴듯한 사기꾼이었다. 목소리는 다른 가수였다 립싱크한 거였다는 둥 그래도 “I’m gonna miss you” 는 내 인생노래다 등등. 그렇게 퀸, 비틀즈, 시니드 오코너 등 내 컬렉션에 있는 뮤지선들의 노래에 얽힌 내 추억과 감상을 늘 들려줬다.


90년대 당시 큰 인기는 없었지만 내가 좋아해서 지금까지 가끔 듣는 가수인 닥터레게 이야기도 했다. 닥터레게의 래퍼가 바비 킴이었다. 그때는 그의 진가를 사람들이 잘 몰랐을 텐데 내가 알아봤다 해가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했다. 닥터레게의 <어려워 정말>, <아픔 속의 그대>를 정말 좋아해서 지금까지도 듣는다. <아픔 속의 그대>를 큰 애를 가졌을때 많이 들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아이가 많이 움직였어서 그 이야기도 해주면 재밌어한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곡보다 이 노래를 더 좋아했다고.


최근에 읽고 좋았던 책 이야기들도 주절주절 한다. 최근에 읽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아이의 흥미를 끌만한 간단한 이야기와 마지막 반전은 네가 직접 읽어봐야 한다고 막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하니 한 번 읽어보겠다고 가져갔다. 어릴 때부터 어려운 책도 그런 식으로 맛보기처럼 이야기로 들려주면 흥미를 갖고 즐겨보곤 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즐거워서 흘러넘친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 가 닿는 것 같다.


그 많은 스토리들을 아이들이 안 듣는 줄 알았는데 다 듣고 있고 영향을 미쳤나 보다. 다행히 그게 좋다고 한다. 나처럼 나와 한 몸 같은 노래와 영화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아이들을 이렇게 저렇게 하려고 잔소리하고 권했을 때보다 내가 사는 모습, 내가 좋아서 한 행동들이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아이 입을 통해 들어서 기쁘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반대의 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글을 쓰게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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