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쯤 우연히 자기 계발서 한 권을 읽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책 읽기를 좋아했고 많이 읽지는 못해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던 사람이라는 거를 기억해 냈다. 예전엔 세계 명작 소설 위주로 읽었다면 다시 독서를 시작하면서는 심리학책과 자기 계발서, 영성도서로 범위를 넓혔다.
실용적이고 직접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을 그동안 몰랐다는 게 안타까웠다. 20대에 이런 내용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심리학책과 영성도서는 나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것 같은 효과를 주었다. 스스로 문제점을 찾도록 도와주었고 치료해 나갈 수 있었다. 나의 문제점들과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잘못된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훌륭한 스승을 몇백 명 만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책 읽기에 무작정 빠져들어 읽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런데 읽고 난 다음날 기억나는 게 없었다. 분명히 읽을 때는 너무 좋다 하면서 읽었는데 나중에 생각나지 않았다. 명확한 언어로 다시 내 마음에 새기고 싶었는데 물거품처럼 사라진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책을 읽는 양에 비해 남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은 방법이 필사였다.
처음 읽을 때 마음에 남는 구절에 줄을 치거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 경우엔 마크를 붙여놓는다. 다음날 줄 친 부분을 필사했다. 필사를 하면서 어떤 부분은 내가 왜 줄을 쳐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너무 좋아서 그 아래에 나의 감상을 간단하게 적기도 했다. 그렇게 기록을 남긴 책의 내용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느낌이었다. 요즘 글을 쓸 때 나도 모르게 어떤 내용이 써질 때가 있는데 필사했던 내용이었던 적이 많다. 그 내용이 나의 생각과 경험과 섞이면서 나만의 깨달음으로 표현됐다.
필사한 노트를 심심할 때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다. 별로 읽을 책이 없거나 책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필사 노트를 보면 그 당시 나의 생각까지 다시 볼 수 있어 어떤 책 보다 재미있다. 그땐 이런 고민이 있어서 이런 구절이 마음에 남았구나, 이걸 읽고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구나 하며 나의 성장담을 보는 것 같아 웃기고 재밌다.
내가 필사한 노트 사진을 올릴까 말까 고민을 했다. 너무 악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같이 대충이라도 필사를 하는 게 좋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 올리기로 결심했다. 필사는 내가 갖고 있는 가장 재밌고 좋은 취미 중 하나다.
보고 싶었던 책을 수시로 모으고 메모해 놨다가 도서관에 2주에 한 번씩 빌리러 간다. 잔뜩 빌려온 책을 자기 전에 2~3시간 정도 읽다 잔다. 어떨 땐 너무 재밌어서 새벽까지 읽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전날 저녁에 읽은 부분을 필사한다. 필사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메모를 하거나 모닝 페이지를 쓴다. 정말 재밌는 놀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에는 인풋이 많았다. 요즘은 쓰는 일의 비중이 조금 높아졌다. 그동안 모아놓은 필사노트가 많아 그것만 뒤져봐도 쓸거리가 생기기도 한다. 오래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갑자기 떠올라 글감이 되기도 한다.
필사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어떤 시시한 책에서도 필사할 거리가 한 두 줄은 나온다는 거다. 책 한 권을 출판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배울게 한 줄이라도 있었다. 정말 한 줄도 없는 책이 가끔 있기는 했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비평가의 자세보다는 한 줄이라도 필사할 거리를 찾겠다는 자세로 보니 보였다. 나같이 아직 부족한 사람한테는 도움이 됐다.
내가 읽는 책들을 보고 아이들이 이상한 책을 읽느냐고 잔소리하기도 한다. 특히 제임스의 알렌의 <인생 연금술>이라는 책은 제목 때문에 그런 억울한 오해를 받았다. 예전에 시부모님 병간호하며 마음이 힘들 때 읽기 시작했는데 단순하게 반복되는 인생의 진리를 읽으며 마음이 편해지고 현실의 문제를 다르게 보는 방식을 배웠다.
돈에 대한 나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류의 책들도 많이 읽었고, 미신이라고 치부한 운에 대한 생각들을 쓴 책들도 호기심에 빌려 읽었는데 의외로 심리학적 이론으로 무장된 좋은 내용도 많았다. 유치한 제목 때문에 내용이 별로일 거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지만 좋은 내용도 많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예 집어 들지도 않았을 영역의 책이었다. 도스토옙스키와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던 젊은 시절에는 그런 책을 읽을 생각은 못 했다. 난 가장 기본적인 인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심리적 문제, 돈과 경제에 관한 문제, 세상 돌아가는 아주 기본적인 이치도 몰라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책을 읽고 배운다. 관심 분야는 그때그때 나의 문젯거리나 관심분야에 따라 달라지지만 늘 많은 것을 배우고 배우는 것이 좋다.
편견을 버리고 호기심 나는 책을 들춰 본다. 도서관이 그래서 좋다. 몇 장 펼쳐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반납하면 된다. 돈도 들지 않는다. 나같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분들은 다양한 책을 편견 없이 읽어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