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이대로 시간만 흘러 보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뭔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세 시대인데 지금이라도 새로운 직업이나 일을 찾아야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방송통신대학에 들어가서 정말 해보고 싶던 공부를 해볼까, 전혀 새로운 직업을 찾아 전문대학이라도 다시 입학해 볼까, 박사학위를 따볼까 등등 친구들과 만나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다가도 현실적으로 그 과정이 끝났을 때의 나이를 생각하면 선뜻 발을 들이기가 망설여진다.
지금 그런 어중간한 나이가 오십 대 중반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후를 보내기에는 젊고 뭔가 시작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나이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6, 70대 분들은 망설이지 말고 시작하라고 하시겠지만.
나는 먼 미래는 생각하지 말고 매일 내가 할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뭐가 되겠다는 어떤 형식적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해 나간다는 마음이다. 글을 쓰는 일도 책을 출판한다거나 강연을 한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글을 모은다는 생각이다.
매일 책을 읽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정리하고 필사하는 일 자체도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이다. 하루에 2~3시간 때로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글까지 쓰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돈은 못 버는 일이지만 굉장히 뿌듯하다. 그렇게 정리된 생각을 계속 쓰다 보면 어느 한 주제가 찾아지고 제법 괜찮은 콘텐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게 됐다는 게 좋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꾸려 나가는 힘을 길러야겠다. 자식들에게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도록, 사람들과 함께 해야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나만의 꽉 찬 생활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뭔가를 이루겠다는 마음보다는 현재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게 글쓰기든, 책 읽기든, 건강을 위해 하는 매일의 루틴이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 때 활력이 넘치는 할머니가 될 것 같다.
다른 한 가지는 젊은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들어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경험해 봤다고 자꾸 조언하고 옳은 말을 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들어보는 연습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생일선물로 아들이 목도리를 사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길어서 어떻게 매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딸과 아들이 요즘은 얇게 세로로 접어서 매는 게 유행이라면서 이런저런 방법을 알려준다. 처음엔 내가 매는 방법이 별로고 촌스럽다고 해서 살짝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다시 밀어 넣고 일단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지켜보니 과연 더 멋지고 예뻤다.
젊은이들 심지어 더 어린아이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 오히려 더 참신하고 새로운 생각은 어린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다. 나이가 비슷한 동년배들은 나와 같이 공감하고 척하면 착 알아듣는 편함이 있지만 매일 같은 범주의 생활과 이야기만을 공유한다.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기도 한다.
다행히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내 주장만 고집하고 옳은 말만 해댔다면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을 거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열 번 하고 싶은걸 한 번만 하려고 입술을 깨문다. 그래도 아이들은 잔소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일들은 내가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다 이미 성인인 아이들이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을 바꾼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잔소리도 해봤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고 관계만 멀어졌다. 내가 말을 하는 대신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설 연휴에 스타벅스에 갔다. 혼자 글을 쓰려고 앉아 있었는데 대가족이 들어왔다. 내 뒷자리에 할머니와 그 자녀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한 8명 정도의 가족이 앉았다. 거의 한 시간 동안 할머니 한 분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본인을 데리고 여행 가자는 자식이 한 명도 없다는 불평으로 시작해서 손녀에게 “아빠 돈을 그렇게 써 대서되겠냐. 지방에 100만 원이라도 주면 취업하러 가라”는 이야기, “친구 만나서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건 다 쓸데없는 짓이다. 그 시간에 책이라도 한자 읽어라”라는 다양한 훈계가 이어졌다. 다른 식구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쩌렁쩌렁 울리는 할머니의 옳은 말 대잔치가 1시간 내내 들려왔다.
할머니의 말씀이 틀린 건 없었다. 그래도 그건 명절날 만나서 할 대화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손자, 손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듣는 게 더 재밌고 좋지 않을까? 아마도 본인은 자녀들 잘되라고 나라도 한마디 해야 옳은 길로 갈 것 같아 하시는 말씀이었겠지만 생판 모르는 나도 짜증이 올라왔다. 더 이상 못 참겠어서 나가려는 순간 다행히 그 가족들이 일어나 나갔다.
그날 다시 한번 결심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말자. 먼저 듣자.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명언을 실감했다. 지금부터라도 돈을 아껴서 손주들에게 용돈을 풍족하게 주는 밝은 미소를 건네는 할머니, 손주들이 와서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싶은 할머니가 되려면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