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까지는 아니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깊이 있게 가본 사람의 인생은 멋져 보인다. 늘 겉만 살짝 스칠 뿐인 내 인생은 너무 공허했다.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해보면 별거 아니라 시시할까 봐 시도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자리를 나쁜 습관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어제 못 자서 피곤하니 빨리 저녁이 되어 맛있는 거랑 맥주 한잔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난 구제불능인가?
예전에 아역배우로 유명했던 사람이 거의 노숙자처럼 생활하다 심각한 병에 걸려 입원 중인 모습을 찍은 영상을 봤다. 그런 병중에도 의사 몰래 라면을 먹으며 너무 좋아하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신장에 관련된 병이라 특히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러진 않을 텐데 생각하겠지만 난 너무 이해가 된다. 그 삶도 이해가 된다.
한때 전성기가 있었지만 어떤 이유인지 나락으로 떨어지고 죽음의 목전에서도 그 습관과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생. 그 정도로 극단적이진 않지만 얼마나 쉽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돼서 내 머릿속에 그 영상이 박히고 말았다.
반면 스코트 니어링이나 인간극장에서 본 93세에도 요양병원에서 일하시던 의사 할머니, 그 밖에 많은 책에 등장하는 자신의 삶을 찾아 절제하고 몰입하면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개미만 한 흔적을 그리며 희미하게 나아가고는 있다.
완전히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삶의 모습은 사실 종잇장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아슬아슬하게 양 극단을 오가며 희미하게 살아가고 있다.
내 삶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모르겠다. 중독자처럼 순식간에 음식과 술로 달려가는 사람이면서 몇 달간은 좋은 음식을 먹고 스무디를 마시고 나쁜 습관을 다 고친 것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한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며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책을 보며 몇 달 쫓아하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된 양 점잖게 친구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다 몸이 피곤하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집은 다시 엉망진창이 되고 냉장고의 음식이 썩어나간다.
두 개의 세계를 진자의 추처럼 끝없이 왕복하는 삶이다. 나쁜 습관으로 되돌아가다 다시 고치려 노력하고 또 어느새 그 습관으로 돌아가 있다. 때론 그게 삶이지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다 눈에 거슬리는 아이들의 나쁜 습관을 볼 때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 충고한다. 아이가 술을 많이 마시거나 옷을 좋아하고 쇼핑을 많이 하는 모습은 아직도 고치지 못한 내 모습이라는 깨달음에 화들짝 놀란다. 두 아이가 각각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 두 가지를 나는 다 갖고 있었다니.
내가 지금까지 시도한 나쁜 습관 고치기 시도에는 술 끊기, 밀가루 끊기, 탄수화물 줄이기, 소비 줄이기다. 텔레비전과 핸드폰 보는 시간 줄이기는 사실 시도하지도 않았다. 요즘 자주 나가서 걷거나 글을 쓰면서 많이 줄이긴 했다. 현대인이라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내 주변에는 크게 의식하지 않고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해나가는 태평한 사람 천지다. 남편도 맛집 투어를 좋아하지만 소화시킬 정도로 먹고 즐겁게 생활하는데 난 꼭 탈이 나야 그만둔다.
나는 중독에 취약한 사람인 것 같다. 뭐든지 하면 극단으로 간다. 술을 한 번에 많이는 못 마시지만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자주 먹게 되고 단 음식도 한 번 경계가 풀어지면 너무 많이 먹는다. 결국 속에 탈이 날 때까지 먹는다. 젊을 때 내 인생 신조가 all or nothing이었다. 그런데 그게 신조가 아니라 그런 극단적인 성격인 거였다. 편안하게 중도를 지키며 하는 일을 잘 못한다.
그래서 절제를 위한 시도도 많이 하지만 극단적으로 해서 결국 실패하기를 반복한다. 뭔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생활해 나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렇게 정서적으로 안정된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삶이 훨씬 편안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난 저탄고지 한다고 부산을 떨고 음식을 싹 바꾸고 식단에 맞는 음식과 소스를 산더미같이 사들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살도 안 빠지고 또 저탄고지의 문제점을 보게 되고 다른 식단을 시도한다. 이런 식이다. 지금은 속이 안 좋아 그냥 속이 편한 음식 위주로 조금씩 먹을 수밖에 없게 됐다.
미니멀라이프를 한다고 부산을 떨고 졸업앨범과 국민학교 때부터 썼던 일기장, 친구들의 편지를 다 버리고 얼마나 많이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때는 정말 다 필요 없다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아 버렸는데 요즘 시간이 많아지자 그때의 기록들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집은 다시 물건들이 쌓이고 있다.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온 지 1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미니멀라이프를 잘 유지하는 집처럼 보였지만 나의 나쁜 습관이 다시 돌아왔고 수납장마다 물건들이 쌓이고 있다. 자신의 습관하나 못 고치는 사람이다. 자식들에게 잔소리할 자격이 안 된다. 죽기 전엔 고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