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약한 인간이다.

by 박수종

한수희의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이 책은 읽은 지 조금 지난 책인데 간단하게 필사하고 메모해 놓은 것을 최근에 다시 보았다.


“ <종이달>을 읽으면서 나는 남의 돈에 손을 대면 안 되겠다 거나 젊은 남자에게 빠졌다가 인생을 종 칠 수도 있다거나 하는 교훈 같은 건 얻지 못했다. 리카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이 슬픈 파멸은 어떻게 이다지도 인간적인가 하고 생각을 했다. 리카가 저지른 일들에 심판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중략 내게는 그 몸부림이 오히려 눈물겨웠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인간성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추잡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우리를 검은 수렁으로 끌어당길 무서운 힘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부정한 채 살아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까지 맛보지 않고서 끌어안지 않고서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다.”


이런 글들이 맘에 든다. 언젠가 헤밍웨이의 손자가 벌거벗고 하이힐만 신고 돌아다녔다는 기사를 보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내 상황도 답답하고 분노에 가득 차고 무기력해져 있을 때였다. 나도 조금만 더 내몰리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저런 파멸에 가 닿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고 3인 때에도 그런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2020년 코로나로 학교도 안 가고 일타강사가 하는 대형 학원에도 못 다닌 채 하루종이 집에서 밥만 4~5끼를 먹으며 잠만 자고 내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아이 잘못도 아니었기에 화를 내지도 못하고 그저 아이가 의욕을 내주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시험이 가까워오는 10월 말쯤 학원비 다 내놓은 논술학원조차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들에게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논술학원뿐 아니라 다른 학원도 밥 먹듯이 빠지고 있어 모든 학원 다 끊으라고 소리치고 화를 냈다.


아이는 그 길로 집을 나갔고 몇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아 불안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전화를 하고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우는 아이와 통화하면서 평화로웠던 행복한 시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게 몸서리 쳐지게 느껴졌다. 다행히 아이는 곧 돌아왔고 그 이후 수능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지켜볼 수밖에었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지 않으면 몇 번의 잘못된 선택만으로도 인생이 진흙탕에 처박힐 수 있다는 걸 이런저런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걸 손에 다 쥐고서 한 번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이나 다른 생활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엄격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남을 손쉽게 비난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하고 고립되고 이런저런 안 좋은 상황에 처한다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신념들을 지킬 수 있을까? 돈에 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장 수입이 0이라면 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돈 몇 백 원에 시장에서 악다구니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양손에 떡을 다 쥐고서 너그러운 척 욕심 없는 척은 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갖고 있는 신념과 도덕관이라는 게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느낀다. 아이가 그런대로 잘 자라고 큰 사고를 치지 않았기에 나쁜 엄마가 안 될 수 있었고 내가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해나갈 수 있게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 남편 덕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으로 그럭저럭 살아간다. 내가 대단한 신념을 갖고 있고 훌륭한 도덕 군자라 서가 아니다.


편안하고 행복할 때 나의 신념을 지켜내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다. 남에게 너그러울 수 있고, 친절할 수 있다. 위기의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에서도 지켜낼 수 있을 때 진짜 나의 신념이고 도덕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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