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과대포장

팔마

by 최석원

여름은 참 싫다.

더위를 잘 타는 나로선

'더움’ 하나 만으로 여름의 모든 것들이 싫다.


시원한 빙수를 먹거나

여름휴가를 가고

위로 올려다보면 청량한 하늘

누군가는 푸릇하면서도 은밀한 여름밤을 떠올리며

여름을 옹호할 순 있지만 그건 아마 미디어를 통해 정교하게 심어진 환상일 뿐이다.


대부분의 위와 같은 상황에서

우린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더위로 인해 찡그린 표정으로 조난당한 사람이 S0S 신호를 보내듯 연신 손부채를 흔들거나 가슴팍 위의 옷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며 바람을 넣는다.


에어컨 덕분에 숨통은 좀 트이지만 이 역시도 출근길 머리 위, 터진 유전마냥 흘러나온 땀을 막지는 못하고 끈적하게 말려만 줄 뿐이다.


이 기간 동안 당연시되는 찝찝한 끈적임은

가을을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고 더움이 걷힌 뒤에야 하늘의 풍경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며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래도 더러 여름이라는 환상을

꽤나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들도 있다.

(종종 나조차도 깜빡 속아 넘어갈 뻔한다.)


이태리 남부의 화창하면서도 유쾌해지는 풍경

애정 하는 사람과의 밤 산책,

그 속에서 나눠지는 아련한 대화들

그리고 서촌에 있는 팔마


팔마의 메뉴와 파란 간판은

여름의 환상을 잘 담아낸다.


개인적으로 서촌이란 동네는 가을을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서촌의 여러 골목 중 가장 좋아하는 골목으로 향하는 초입에 위치한 것만 보면 여름과 가을이 중첩되는 지점, 여름을 미워하던 감정마저 익숙함으로 뭉뚝해질 때쯤의 그 자리에 팔마는 위치한다.


이곳의 구운 양배추와 스리라차 마요

가리비 숯불구이, 돼지갈비 바르바코아에

얼린 듯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머금으면

도통 좋아질 구석이 없던 여름도

나쁘지 만은 않은 구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 마지막 영상은 서촌 팔마와 어울리는

Marrakech의 Taste라는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