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문 순대곱창
종종 인내심이 많아 보인다는 얘길 들으면 속으로 조소하곤 했다.(물론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행동이 차분해 보이거나 말의 호흡이 더디다는 이유만으로 인내심을 평가하는 것은 비약이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은 절대적인 측면으로 봐도 참을성이 있는 편은 아니다.
맘에 든 물건을 가격 비교 없이 덜컥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한다. 심지어 기다리는 게 싫어 웃돈을 주는 경우도 빈번하다.(월 말에 잔고를 보곤 이내 후회하지만)
유럽여행이 2주나 남은 시점에서 구매한 사람만 한 크기의 그림이 증거다. 발송을 해주겠다고도 했지만 기다림이 싫어 꾸역꾸역 여행 내내 들고 다녔던 미련함의 전력이 있다.
그 외에도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식당도 예약 없이 웨이팅을 해야 하는 경우엔 눈물을 머금고 리스트에서 삭제하거나 아예 오픈 시간이나 브레이크 타임 직전에 가곤 했다.
하지만 이곳은 처음부터 달랐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날, 초 저녁부터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것 마냥 나래비로 서 있었지만
이곳을 둘러싼 좁은 골목,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
가게 비닐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음식의 향과 온기,
함께 했던 사람과의 즐거운 대화 덕분인지 오기가 생겨 마냥 기다리게 됐다.(사실 기다림을 기다림으로 느껴지지 않게 한 대화가 큰 요인이었으리라)
긴 기다림 끝에 에스코트를 받으며 입장한
레스토랑 내부는 츤데레를 핑계 삼아 불친절한 여느 노포들과 달리 이모의 상냥한 말씨와 실내 가득한 곱창전골의 향은 1시간 남짓한 기다림마저
헤드 셰프 이경문 님에 대한 확신으로 둔갑시켰다.
이후 맛 본 곱창전골 국물 한 숟가락의 힘은 셌다.
뼛속부터 시리게 하던 냉기를 어느새 따스함으로 녹아내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아무리 양식을 좋아하더라도 겨울에 들어설 때쯤부턴 환절기 감기 마냥 한식이 당기는 증상이 생긴다. 그게 노포라면 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어쩌면 한국에서 나이가 든다는 건 나이에 비례해 마늘의 양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서로 등이 닿을 만한 테이블 간 거리,
공간을 가득 채우는 취기 오른 빨간 목소리들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에 맞춰
달큰해지거나 쌉싸름해지는 실험실 알코올의 맛
한 병, 두 병 차곡차곡 쌓게 만들던 전골은
처음의 개운함은 사라진 채 곱이 우러나
취기 오른 대화만큼이나 찐득해지며
가게 안의 대화들과 닮아 갔다.
우릴 닮은 이 찐득한 맛이 좋다.
아뮤즈 부쉬의 겨울 초저녁 추위
에피타이저의 개운한 국물과 솜사탕을 거쳐
대화의 점도에 맞춰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메인 디쉬를 맞이했다.
온도에 공간, 호흡마저 코스 요리로 내는
이경문이라는 셰프에 경의를 표한다.
*그날의 분위기와 비슷한
Bruno Major의 Old Fasioned란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