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 베어 물면 특정 상황이 그려지는 음식들이 있다. 피카츄 돈까스나 컵볶이 같이 과거의 추억을 토대로 회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파리를 가보지 않고도 ‘파리에 온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구체적인 모습이 떠오르거나 기존에 선입견에 상상력을 한 두 방울을 첨가한 것과 같다.(이를 위해 어느 정도 압축이 된 상상력은 기본 재료다.)
가게 명은 소금집 델리이다.
안국과 망원, 두 지점 중 이곳의 맛은 망원동이 더 적합하다. 많은 메뉴가 있고 다 맛보지도 않았지만 메뉴 중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샌드위치다. 그중에서도 지극히 편파적인 파리에 대한 애정을 제외하더라도 잠봉 뵈르가 으뜸이다.
바게트 + 잠봉(햄) + 버터 햄 버터빵
= *(아래와 같은 맛)
5월의 어느 맑은 날 아침에 따릉이 타고 기분 좋아지는 햇빛과 하늘을 마주한다.
사람이 많은 합정역에선 페달에 붙어있던 발을 떼 종종걸음으로 내딛는다. 두 어번의 건널목을 지나 양화대교에 오르면 환영하듯 한강은 웰컴 기프트로 살짝 달궈진 열기를 식혀줄 약풍 정도의 바람을 내어준다. 반대 편 보행자와 몇 번의 맞닥뜨림 이후 바람이 성가셔질 때쯤 선유도 공원은 어느새 옆에 와 비스듬히 서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높은 곳에서 잘게 흩뿌려지는 햇살과 마음을 청량하게 할 목적으로 조형된 푸르른 하늘을 감상한다. 햇살과 하늘 모두 쨍한 색감을 썼지만 여운을 위해 파스텔로 잔영이 덧칠해져 있다.
눈이 부시거나 고개가 뻐근해 지려 할 땐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새로 물결 위에 얹혀진 Ver2의 햇살과 하늘을 바라보면 시간은 저 멀리 동떨어지고 순간에 잠기게 된다.
그런 맛이다. 이곳의 잠봉 뵈르는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수상한 구석이 있다.(사장님께는 미리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이곳은 철제 창고 같은 건물 2층에 위치하고 공간이 넓지도 않을뿐더러 테이블 간 간격도 도미노처럼 빽빽하다. 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매장에서 먹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것으로 보인다.
잠봉 뵈르의 맛과 식당 구조를 고려했을 때 사장님의 치밀한 설계(?)가 엿보인다.
부디 긴 웨이팅과 각자의 등이 하이파이브하기 좋은 갑갑한 창고를 벗어나 5월의 어느 맑은 날엔 나들이를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메뉴와 식당은 시크릿 캠페인의 일환이 아닐까. 이를테면 서울시와 함께하는 하루 30분 일광욕 장려운동 같은.
사장님은 겨울에도 테라스를 고집하는 지독한 파리지엥이라는 건 예상이 가능하다. 학생 때부터 낮에도 커튼을 내린 채어둠의 자식이냐고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던 어느 민족의 특정 세대에게 일광욕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잠봉 뵈르를 대표 메뉴로 올린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영상은 잠봉뵈르와 잘 어울리는
이소라 - 데이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