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작업일지
자그르르 자그르르 조약돌이 파도에 부서지는 바닷가, 소풍을 나온 모녀.
자갈 바다 앞에 앉아 곱게 한복을 입은 할머니와 고양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는 그간의 시간들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들과 그 두 사람을 향한 한없는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번에 주문을 받은 그림은 따님이 엄마와 할머니의 가족 그림을 의뢰했다. 고향 바다에 앉아있는 그림 속 두 모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따님이 바라보는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는 엄마의 엄마와 한그림 속 같은 공간에 새롭게 존재하는 엄마는 그림을 보시곤 어떤 마음이실지... 반가움과 고마움보다도 그리움이 먼저 일까?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 그리움까지도...”라는 문장으로 소개되어있는 나의 작업공간은 누군가가 절대 이룰 수 없는 소원들을 그림으로나마 이루어준다. 살아오는 시간 동안 함께했던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과 지금 옆에 있는 반려동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풍을 즐기고 있는 그림. 미처 찍지 못한 가족사진 속 익숙하게 자리 잡은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가족, 혹은 반려동물들. 이미 예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이제는 누군가의 신부가 될 웨딩드레스를 입은 따님 결혼사진 그림. 이런 그리움을 담는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 보면, 주문을 하기까지 그전에 그리움이 가득 차기까지의 시간들과 그림을 의뢰하고 사진을 고르고 기다리는 시간들, 그리고 받고 나서 내가 상상만 해오던 그런 가족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그 모든 시간들을 생각한다.
시작은 나 역시도 그랬기에.
엄마가 아닌 다른 나는 사막에 모래가 되어 흩어져 버린 것 같았던 그때.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은커녕 6개월이 겨우 넘은 아이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것조차 버거웠던 기간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조금만 더 크면 내 아이와 내 강아지가 함께 놀고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날들을 간간히 기대하던 그때. 돌사진은 꼭 아이들 다 모아서 함께 찍어줘야지 하며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돌이 되기 전에 친정접에서 살던 반려견 하나는 교통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매일 밤 나를 반겨주던 내 동생을 잃은 슬픔조차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아이는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 어느 정도 나 스스로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게 되자. 그제야 밀려오는 그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슬픔은 무엇이라도 그려야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던 돌사진을 그리게 되었다. 내 강아지 같은 아기와 4마리의 강아지들. 그중 무지개다리를 건넌 하나는 정면에 렌즈를 넘어 나를 바라보는 나머지 아이들과 달리 다른 곳에 시선을 두게 그려졌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결혼하고 바로 생긴 아이를 보느라 자주 보러 가지 못해 소홀했던 것만 같았던 애정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응시하는 시선을 그릴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하나는 그런 미안함이나 죄책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언제고 어디서고 나를 바라보고 안아주겠지만.
이 그림이 시작이었고, 비슷한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주기 시작했다. 시작은 반려동물이었지만 종종 가족 그림도 의뢰가 들어온다.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과 다시 한 공간에 단 한 번이라도 있고 싶은 그리움은 동물이건 사람이건 다 마찬가지의 그리움.
의뢰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이 사람들이 이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사랑했는지 그대로 보이는 얼굴에 보고 또 봐도 행복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한 줌도 빠짐없이 모두 담길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그리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이 그리움이 가득한 마음에 닿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