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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Sep 26. 2024

48시간의 해프닝

나의 불안정애착에 대하여

브런치에 실린 글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짐작하기에는 그렇다.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고, 그래서 깊이 뉘우치고 후회하고 있는 사람? 지나치게 자책하고 있을 만큼 아내를 넘치게 사랑했던 사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짐작해 보기에는 그렇다. 실제로도 나는 좀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내 취향도 글에 일정 부분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가끔씩은 솔직하게 나의 모순된 면에 대해 드러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그조차도 내 입장이었겠지만. 아내는 이 브런치를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겠지만, 만약 아내가 이 브런치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혀를 끌끌 차지 않을까 싶다.


아내와 별거를 시작하면서 성당 성가대에 들어갔다. 무언가 새로운 전환점이 될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예전부터 클래식이나 합창에 관심이 있었던 까닭에 성가대를 선택하긴 했지만 솔직하게 성가대에서 새로운 이성을 만났으면 하는 기대도 아예 없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꽤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혼과정에서 아내와 두 번 만나서 성가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었다. 우리 성가대는 특이하게도 절대적인 남초집단이긴 하지만(내가 가는 곳이 어디든 항상 남자가 많다), 아마 아내도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알았을 것이다. '이 자식, 여자 만나고 싶어서 성가대 들어갔구나.' 나에게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상처를 받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했던 그 말은 맞는 말이어서 항상 기억에 남아 있다. '연애를 많이 안 해 봐서 결혼하기 전에 연애할 때도 자기를 그렇게 힘들게 하더니, 이별도 별로 겪어 보지 못해서 헤어질 때도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제로 나는 별로 연애를 많이 해 보지 못했다. 모태솔로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못 해 보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나마 여자사람친구는 많은 편이라서 이성을 대하는 게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여자사람친구와 여자친구는 아예 다르다. 솔직하게 나는 마흔두 살이지만 그만큼의 경험치나 여자를 대하는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고 보아야 옳다. 그동안 다행히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구설수에 오르내릴까 늘 조심했던 덕분이었다. 물론 그랬던 까닭에 아쉽게도 놓친 연애 기회도 몇 번 있지만.


이제는 성가대에 들어온지도 반년 가까이 지났다. 노래를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꽤 익숙해져서, 예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박자는 그래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자신한다고 쓰려다가 고쳤다.) 다만 성가대가 아닐 때는 늘 소프라노 악보에 기반해서 성가를 부르다가 이제 베이스로 성가를 부르려니 그 점은 아직도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음정은 그래서 많이 틀릴 것이다. 노래는 그렇고. 나는 이 성가대에 들어왔을 때부터 최고령자였다. 그나마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가 한 명 있어서 조금 위화감을 덜어준다. 대체로 30대 초중반 아이들이 가장 많고, 나와 동갑내기 친구 다음으로 어린 아이는 3살 아래, 5살 아래다. 20대도 있다. 아마 나와는 거의 스무 살 차이는 나지 않을까 싶다. 군대에 갔을 때 장교는 처음에 부대에 가면 어항 속의 금붕어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항상 사람들이 관찰하고 지켜보는 대상이라고. 그때의 이야기를 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젠 사회인이기 때문에 성가대에 와서는 더욱 조심을 했다. 이성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뒤늦은 나이에 여자나 만나려고 들어온 사람처럼 비치면 안 되니까. 다행히(?) 이 성가대는 특이해서 그럴 여지가 거의 없기도 했다. 성가대는 온통 커플이다. 부부도 많고 부부가 아닌 경우에는 대개가 커플이다. 그것도 이 안에서 그런 구성원이 절반이 넘는 것 같다. 내가 무언가 실수하고, 오해받을 만한 여지가 아예 없었던 듯도 싶다. 그렇게 반년을 무사히 보냈다.




세상이 바뀌었다. 얼마나 재밌고 신나는 게 많은가. 그렇다 보니 성가대에서 신입부원을 받기 위해 정말 열심히 홍보활동을 하고 있지만 떠올려 보면 지난 반년 사이에 새로 들어온 남자 신입부원은 나뿐이다. 여자 신입부원은 몇 명이 들어오긴 했는데 아예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한 달에 세 번 이상 나오는 부원은 역시 한 명뿐인 것 같다. 그 친구는 지난달 중순쯤부터 나왔다. 성당이 대체로 지역별로 있기 때문에 아주 멀리 사는 경우 자체가 많지 않겠지만, 이 친구는 특히 또 나와 가까이 산다. 지금도 거실 창문을 통해서 보면 그 친구가 사는 아파트가 보인다. 직선거리로는 100m 정도나 되려나. 그러다 보니 처음 성가대에 들어왔을 때도 집 쪽으로 같이 걸어왔고, 두 번째로 나왔던 날도 같은 방향이어서 같이 걸어왔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친구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다행이다. 혼자 걸어갔으면 심심했을텐데'.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나도 아저씨가 다 되었다. 정말 혼자 걸어갔으면 심심했을테니 그렇게 말한 것일텐데, '뭐지?' 하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올해에 들어온 유일한 신입부원이어서 그랬을텐데 식당에 가면 항상 내 옆에 앉았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치료받으러 멀리 지방 병원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실은 이게 다다. 나는 그 친구의 이름, 세례명, 어느 아파트에 살고 나이가 몇인지 정도는 알지만 전화번호도 모른다. 대화도 많이 해 보지 못했고(소개팅 한 번만 나가도 이것보단 많은 대화를 했을 것이다.) 주고받은 카톡도 손에 꼽을 정도다. 사람을 좋아하고 관심을 가질 만큼 상대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물론 외모는 알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호감은 없진 않긴 했다. 그래서 차차 조금씩 친해지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바로 이런 생각이 문제였다.


지난 일요일에도 졸졸 따라다니며 말을 잘하길래 조금씩 가까워진 줄 알았다. 그래서 화요일에 한 번 메시지를 보내 보았다. 특별한 건 아니었고 무료티콘 하나를 보내 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몇 시간이 지나도 카톡을 확인을 하질 않았다. 무료티콘 하나 보낸 것이라 받지 못했으면 답장이야 안 할 수도 있지만 아예 확인을 안 한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그날 저녁부터는 내내 그 생각만 한 것 같다. 여기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어제는 의문문으로 카톡을 하나 보내 보았다. 지난 일요일에 다른 성가대원에게 그 친구의 어머니가 식당을 하시며 몇몇 사람들은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혹시, 어머니 식당하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다음에야 이 정도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게 웬일. 이 카톡 또한 내내 확인하지 않았다. 이제는 주책인데 저녁에 상담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는 보이스톡을 한 번 걸어 보았다. 그런데 그것도 받지 않았다.


사실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읽고 답장하지 않는 건 괜찮지만 아예 확인조차 하지 않으니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지 않으시려고 지방 병원을 갔다 온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오지랖이겠지만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동갑내기 여자애에게 네가 한 번 연락해 보라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싶다고 연락을 건넸다. 그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오늘 오전에 연락을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친구도 오전에 내내 답장이 없다고 내게 말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찰나에 점심시간이 되자 그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확인을 못했어요 답장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하고. 그 뒤로도 내가 답장을 보냈지만 여전히 답장은 오지 않고 있다. 친구 말로는 요즘 새로 취업을 해서 정신이 없어서 답장이 늦었나 보다라고 했다. 난 새로 취업했는 줄도 몰랐네.




애착형 검사를 해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난 불안정애착형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이야기를 들었지만 성장과정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집에서도 큰애였고, 가정으로는 두루 친척과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대개는 그게 한 스무 살 정도에서 그치는데 난 대학에 가서도 교수님들께 예쁨받는 편이었고, 군대도 장교로 다녀온 데다가, 취업한 회사의 부서에서는 처음으로 들어온 공채 출신이었다. 서른 살이 되도록 늘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첫 회사에서 다른 직원이 내게 해 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honset 씨는 이 정도 회사에 있긴 아깝긴 한데, 다른 데 가서도 이렇게까지 honest 씨를 아껴 주는 부장님이나 팀장님을 만나기는 힘들 거야'. 맞는 말이다. 덕분에 그래서 난 그 부장님과 팀장님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14년 전의 그 팀장님과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면서 왔다.


그래서 그런가. 이성관계에서도 나는 대체로 사랑을 갈구하는 쪽이었던 것 같다. 연애를 하면 통화시간이 늘어난다는데 돌이켜 보면 난 한 번도 발신통화가 그렇게 길었던 적이 없다. 대체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쪽이었어서 늘 수신전화가 많았다. 이건 이성관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서 지금도 나는 한 달에 2천 분의 무료통화를 제공받지만 실제로 1시간도 잘 쓰지 않는다. 그조차도 거의 집에 전화하는 것으로 쓰고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전화를 받는 일이다. 발신통화와 비교하면 수신통화는 엄청나게 많다.


그제와 어제 성가대원에게 보냈던 메시지 사건을 돌이켜 보면서 나의 불안정애착은 사랑을 갈구하는 면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내가 애착을 줄 대상을 끊임없이 찾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나와 헤어질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네가 외로운 게 싫은 거야.'라고. '내가 외로운 게 싫다'라는 아내의 말이 너무 맞는 말이라서 그 순간 정말 얼음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게 아니라고 아내에게 매달리면서도 실제로는 '아내는 나를 정말 잘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성가대원의 아버지가 편찮으시긴 하지만 누가 봐도 나의 행동이 정상적이진 않다. 누가 보면 스토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그래도 봐 주세요. 스토커라기엔 카카오톡 메시지 2개, 보이스톡 1번 한 게 전부입니다...) 실은 나와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이다. 심지어 그렇게 이성적으로 엄청 호감을 가지고 '잘해 봐야지'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지도 못했었는데도 그렇다. 물론 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사람이라서 동아리나 다른 모임에서도 아예 배제되어 있는 사람도 나는 연락을 계속 이어 가고 있는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변명하기엔 이 친구는 알고 지낸 시간도 너무 짧지 않은가.


모든 글이 기승전아내로 흐르는 것 같기도 한데...


아내와의 관계 마지막에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롭다', '홀로 있다' 이런 느낌이었다. 돌이켜 떠올려 봐도 신혼 초에는 아내가 정말 많은 사랑을 주었고 그래서 늘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항상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비로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내는 끝없이 노력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내가 밑 빠진 독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퍼주고, 또 퍼주어도 계속해서 부족하다고 갈구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마침내 아내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점심 산책이 끝나고 돌아와서 일하다 말고는 모니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리고 나 자신이 너무 괴물 같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꼭 애착을 가져야 할 사람이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말하기엔 실은 나는 가족이나 주변 친구, 선배, 후배들로부터 정말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데. 물론 이성관계는 또 다른 측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내게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는 수많은 여자사람친구들도 있다.(물론 우정과 사랑은 다르지만)


어제 상담에서 상담사 선생님은 자신은 안정형애착 검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고 말씀하셨다.(어디까지나 개인의견이었습니다.) 정말 안정형인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이며, 불안정한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게 아니겠냐고. 뭐,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지만 나는 스스로 홀로 설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만나도 안정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고, 불안정한 나를 안정적인 사람이 일방적으로 사랑해 주길 바라는 것 또한 정상이 아니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내일은 병원을 가는 날이다. 매번 병원을 갈 때마다 용량이든 약이든 하나씩 줄여 왔다. 지금 내가 하루에 12정을 투약하게 되어 있어서 내일도 가면 약을 하나라도 줄여야지 생각했고, 실제로도 약을 덜 먹어도 괜찮을 만큼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48시간의 해프닝을 겪으면서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과의 메시지 몇 개에도 내가 이렇게까지 쉽게 불안정해질 정도로 나는 여전히 괜찮지 않았다. 아무런 자극도 없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 당연히 나는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날을 오래 보내 왔고. 그런데 이렇게 아주 사소한 자극 하나만 있어도 내 마음은 무척 격렬하게 반응한다. 특히 최근에는 친구의 이혼 건이 겹쳐 있어서 친구로부터 자주 연락을 받는데 그렇다 보면 심장이 더욱 빨리 뛰고 불안해지는 게 느껴진다. 어쩌면 메시지 사건은 친구의 이혼 건이 겹쳐져서 더 확대재생산되었는지도 모르겠다.(핑계대고 있네.)


동갑내기 친구에게 그 성가대원의 안부를 걱정했더니 '너 혹시 좋아해? ㅋㅋ'라는 메시지가 왔었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아버지도 편찮으시고 해서 걱정한 거라고 말은 했지만, 내가 그 친구여도 우습게 들릴 것 같다. 나는 마흔두 살이고 자칫 잘못하면 진상 아저씨가 된다. 그리고 결혼도 다녀왔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지금 내가 그렇게 떳떳하게 누군가를 대할 수 있는 상황인가. 아닐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난 매우 불안정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하긴 그러고 보면 내가 언제는 안정형이었나 싶기도 하다. 불안정형이더라도 그저 조금만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살자.


아무래도 올해 안에 병원을 끊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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