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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May 18. 2021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나의 방

나는 청소하는 엄마의 모습을 좋아한다. 누워있거나 무기력해 보이는 엄마보다 어지럽혀진 것들을 정리하고 더러워진 것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온 힘을 동원하는 엄마의 모습이 좋다. 락스로 온 화장실 구석구석을 솔로 닦으면 세면대와 변기가 반질반질 뽀얗게 윤이 난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텔레비전 다이를 닦고, 돌아다니는 잡동사니들을 새로운 소품으로 탈바꿈시킨다. 청소하는 엄마의 모습이 좋아 보였던 건, 청소할 때의 그 의지, 생활의 모든 것들을 윤이 나게 닦고,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걸레와 손으로 훔칠 때의 더 잘 살고자 하는 혹은 더 잘 살 수 있다는 건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벽지에는 수많은 롤모델의 사진들을 붙였다가 뗀 자국들이 남아있고, 엄마가 사 온 하얀 바탕에 붓글씨로 원이 그려져 있는, 그 누구의 취향일 리 없는 구식 커튼이 걸려있다. 내가 이 방을 방치한 이유는 꾸미고 윤기 나게 할수록 나이 든 이 방의 한계만 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수납장도, 장식품들도 내 돈 들인 애정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친구가 새 집으로 이사를 해서, 집에 필요한 온갖 가구와 장식품들을 함께 골라줬다. 소파와 커튼, 원목 의자와 테이블, 전자레인지 다이와 접시들까지 살 게 정말 많아 보였다. 나는 친구가 구입할 반짝반짝 빛나는 ‘새’ 가구들을 남몰래 흠모하며 바라봤다. 갑자기 어떤 욕구가 샘솟았다. 내 방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갖고 싶은 가구들과, 안락함을 안겨주는 조명들, 삶의 질을 높여 줄 것만 같은 초록 식물들과 예쁜 장식품들을 많이 보고 온 날이었다.


홱 머리가 돌아 내 통장잔고를 셈해보는 일 따위는 제쳐두고 미친 듯이 오늘의 집과 네이버를 뒤졌다. 벽지의 뭔지 모를 자국들이나 잡지 같은 것들을 붙였다 떼서 지저분해진 부분을 가리면 이 집이 새 집으로 탈 바꿈 할 것만 같아서 스티커 식으로 편하게 붙일 수 있는 벽지를 주문하고, 마치 저 커튼만 달면 내가 저런 독립적이면서도 개성 있고 취향이 분명한 분위기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찬란한 빛깔의 커튼들을 몇 시간이고 침 흘리며 바라보다가 욕심을 접어두고 그나마 무난하게 어울릴 것 같은 광목천으로 된 작은 창 용 커튼도 주문했다.

그리고는 온 집안의 수납박스들- 손바닥만 한 것부터 시작해서 책 대여섯 권은 들어갈 크기의 플라스틱 박스들을 방바닥에 탈탈 털었다. 온갖 먼지와, 아! 이게 여기 있었네 하는 잡동사니들이 쏟아져 나온다. 물티슈로 박스들을 꼼꼼하게 닦고 먼지 쌓인 물건도 하나하나 꼼꼼히 닦는다. 물티슈에 묻어 나오는 먼지에 희열을 느꼈다.


그런 다음에는 버릴 것들을 쌓는다. 오래된 서류들, 영화관에서 가져온 영화 책자들, 다 쓴 펜이나 노트들. 왜 이것들을 집에 쌓아놔서 내 공간을 방해하게 내버려 뒀을까 생각하며 가차 없이 집어던진다. 버리는 것이 쌓일수록 묵은 때를 벗기듯 마음이 후련해진다. 내 공간이 더욱 넓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 1년 이상 안 입은 옷들도 아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패대기친다.


드디어, 스티커 벽지와 커튼이 도착했다. 벽지는 벽의 길이를 직접 재단하고, 칼로 예쁘게 잘라야 하고 삐뚤지 않게 붙여야 한다.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했다가 괜한 조바심에 ‘아 엄마 안돼 아아 망치면 안 돼’ 소리를 지르다 서로 감정만 상할 뻔했다. ‘엄마. 혼자 해볼게요.’ 하고 고독하게 길이를 재기 시작했다. 혼자 하니 더 불안해졌다. 커터칼로 슥슥 큰 노트 같은 것을 대고 자르는데 스티커 위에 부착된 비닐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진다. ‘어!’ ‘아악!’ 나의 비명이 난무하고 미간은 자꾸만 찌푸려지고 나의 꿈, 나의 소망 스티커 벽지도 점점 난도질이 되어 간다.


그러나 아직 하이라이트, 붙이는 일이 남아 있었다. 약간 얼기설기 잘랐어도 붙이면 티가 안 날 것만 같다며 정신을 부여잡는다. 천장에 대고 뒤에 붙은 스티커를 떨리는 손으로 슥슥 벗긴다. 한 번 벗기고 나니 힘이 붙어서 가차 없이 뜯게 된다. 그러다 원인 모를 자신감이 올라와 ‘뭐야? 이거 생각보다 쉽잖아. 엄마 없이 혼자서도 잘할 수 있잖아’ 하고 망설임 없이 스윽 붙여 버린다. 전문가가 된 듯한 기분도 들고, 누구의 도움 없이 내 방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뿌듯함이 올라 올 찰나 비뚤게 붙여진 옆선이 보인다. 몹시 불안해지고, 모든 걸 망쳐버릴 것 같은 초조함에 지금이라도 엄마를 불러야 할까 고민하지만 남은 벽지들을 그 비뚤어진 선에 맞게 붙이면 괜찮을 거라는 돌이킬 수 없는 합리화를 한다. 스티커 벽지와 몇 시간 씨름을 하고 보니, 중간에 벌어진 틈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남은 조각들을 난도질해서 얼기설기 붙여본다. 아직 절망하기엔 이르다.


엄마가 사 온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커튼의 핀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속이 정말 시원하다. 그래, 벽지는 그렇다 쳐도 커튼이야 말로 집안의 분위기를 좌우하지. 떼어낸 커튼을 당장이라도 내 방에서 없애버리려는 듯 달려 나가 거실로 패대기친다. 그리고 주름져 왔지만 새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빛나는 무지의 커튼의 핀을 하나하나 단다.


마지막으로, 온 방을 뒤져 나온 예쁜 엽서와 영화 포스터를 방안 곳곳에 예쁘게 붙인다. 이 날을 위해 사놓은 푸른 빛깔 종이테이프를 떼어서 정성스레 붙인다. 종이테이프라 힘이 약해서, 위에 스카치테이프로 덧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맥이 풀리게도 다 꾸며진 방은, 내가 꿈꿨던 것만큼 예쁘지 않았다. 그래도 근 몇 주 동안 내 방에 얼른 들어오고 싶게 만들어 줄 만큼은 아늑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벽지의 어설프게 들뜬 부분이 눈에 띄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방 문에 커다랗게 붙여 놓은 게 어쩐지 아쉬운 내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나는 내 공간을 쓸고 닦고 붙이고 어루만진 게 꼭 내 생활, 혹은 나 자체를 그렇게 한 것처럼 느껴졌다. 주름진 커튼처럼, 울퉁불퉁하게 잘라낸 포인트 벽지처럼 내가 가진 것들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아직 얼기설기하고 모나 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을 온전히 안아주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되는 방이 되었다.


벽지를 자르고, 커튼을 새로 달고 온갖 물건들을 닦는 내 모습은 청소를 할 때의 엄마처럼 더 잘 살고자 하는 혹은 더 잘 살 수 있다는 에너지로 빛났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 모습을 엄마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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